정신장애인 당사자주의를 내세우며 지난 3월4일‘한국정신장애인연합’이 출범했다.

그동안 전문가들에 의해 좌우돼 왔던 정신장애인 문제에 당사자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게 그 취지다.

회장으로 취임한 허진‘새로돋는집’ 원장은 “자기결정권은 무시된 채‘강제입원을 당해야 하는 당사자 입장은 참으로 참혹하다”며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입장과 관점을 세우고, 가족 및 직업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정신장애인 당사자 스스로의 패배주의와 낙인부터 깨 나가겠다는 허진 회장에게 향후 정신장애인연합의 발전방향을 들었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 회장 취임소감 및 인사

 

한국정신장애인연합의 창립에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7년 정신장애인 자조모임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당사자를 대변하는 당사자단체가 활성화돼 있겠지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정신장애인에 관한 문제에 당사자들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 생산직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신장애인에 관련된 문제에 당사자들이 의견을 내놓고 역할을 키워 가기를 바랍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작은 성취들을 계속해 낸다면 정신장애인들도 언젠가는 자신감이 생기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으로 믿습니다.

 

출범 배경은                      

 

2006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 서울지역에서의 ‘정신장애인역량강화를 위한 리더십 트레이닝’이 진행되면서 당사자 자조모임‘같이가는길’이 결성됐습니다.

‘같이가는길’은 2007년부터 2009년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재단의 지원으로 회원들에 대한 인권교육, 장애인 권리옹호에 관한 법, 체계 등에 대해 강의를 받고 주제토론을 하는 등 당사자에 의해 운영된 최초의 정신장애당사자 자조모임이었습니다.

또 2008부터 2010년까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정신장애인역량강화를 위한 리더십 트레이닝’이 진행되며 전국적으로 자조모임이 형성됐습니다.

이러한 자조모임을 모태로 당사자주의를 내걸고 한국정신장애인연합이 창립됐습니다.

2009년 7월 당사자대표들이 참여한 리더십 트레이닝 운영회의에서 당사자대표들이 단체결성을 결의했습니다.

이 회의에 격려차 방문한 김대성 한국DPI 사무총장, 서인환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이석구 한국장애인재단 사무총장의 지지를 계기로 같은 해 10월 14일 발기인대회를 갖고 지난 3월4일 80명의 당사자가 참여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통해 출범하게 됐습니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제정 과정에서 소수 장애인들의 권리 및 입장 등 반영이 미약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작은키모임, 근육장애인협회 등 개인적 질환으로 치부되기 쉽고 장애인으로서 정체성도 불분명하지만 장애인이 겪는 구조적 차별에 직면해 있는 소수 장애인들이 이제는 힘을 모아 입장을 드러내야 할 때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첫 걸음을 내딛게 됐습니다. 

 

설립취지는 

한국 땅에서 정신장애당사자에 관련된 문제와 욕구가 가족과 전문가들에 의해 대변돼 왔습니다.

지난 2009년 10월 정신장애인 가족이 지역주민의 괴롭힘에 대해 고소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한겨레 등 진보적 언론에서조차 가족과 전문가 의견만 취재했을 뿐, 정신 장애인 당사자 의견은 싣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처럼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입장, 생각 등은 철저히 무시돼 왔습니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은 정신장애당사자에 관련된 법, 체계와 욕구는 정신장애당사자에 표현돼야 함을 취지로 창립됐습니다.

 

앞으로 당사자주의와 자립생활을 기치로 활동하려고 합니다.

구체적 사업계획은

아직 출범초기여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발표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우선 정신장애인 관련 현안들에 대한 회원들의 내부입장을 정리하고 힘을 키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동안 당사자들은 전문가들의 의견에 오랫동안 기대왔기 때문에 자기 입장을 갖는데 서투른 점이 있습니다.

정신장애인 인권 및 관련법 교육, 토론 등을 꾸준히 진행해 역량을 강화하고 정신장애인의 문제에 당사자 스스로가 시각과 관점을 갖고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조금 늦게 가더라도 다질 건 다지고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장애인 역량강화를 위한 리더십 트레이닝이나 정신장애인 학교 등 개설해 당사자들 스스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행정력 등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정신장애인에 관련된 법, 체계, 현안 등에 의견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또 정신장애당사자단체로서의 공식적이고 법적인 주체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법인화가 필요하고 현재로서는 법인화가 시급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신장애인의 강제ㆍ장기입원 등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데

 

정신장애인의 인권문제는 선진국에서도 그 나라의 인권 정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합니다.

선진국이라도 정신장애인의 권익이 옹호 받고 있지 못하면 대외적으로 인권후진국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개인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신장애인 인권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점은 크게 환영하는 바입니다.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 등에 강제입원한 경우 전체 환자의 86%이며 6개월 이상 장기입원한 환자는 53%로 나타났습니다.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장기입원이 많고 강제입원의 비율이 높다고 할 수 있는데 가족에 의한 강제입원 및 장기입원이 심각합니다. 

지역사회에서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겠다고 했음에도 가족에게 강제로 입원당했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를 종종 접해왔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주위의 시선이나 자신의 안전에 대한 걱정, 부양에 따른 경제적 부담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영화된 의료자본에 의해 장기입원이 부추겨지는 면도 존재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생활하는 것이 재활의 측면에서 유리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지역사회에 정신장애인이 생활할 만한 인프라를 준비했느냐고 하면 의문스럽습니다.

앞으로 정신장애인연합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들의 힘으로 법개정운동 및 제도개선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정신장애인 자격제한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에 의해 발의된 정신장애인 자격제한 해제에 관한 내용을 보면 정신장애인은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헌법에 위배됨에도 불구, 이렇게 제한을 할 바에는 국가가 정신장애인들에게 상당한 액수의 복지급여를 제공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불현듯 듭니다.

아무리 정신장애인이라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직업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곽의원이 제출한 개정안 중 ‘기르는 어업육성법 개정안’이 ‘전문의가 직업수행여부를 판단한다’는 대안으로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전문의가 정신장애인 한 사람의 비전과 인생설계 등을 가로막게 될 수도 있어 위험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에 여러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 등을 두어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방안

 

정신장애인 뿐 만 아니라 사회의 소수자, 나와 다른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리 국민들의 자세가 편견의 원인이고 인권침해의 출발점인 것 같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인권교육이 포함돼야 합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서는 우선 정신장애인의 내외적 역량강화부터 추진해야 합니다.

오래된 관습처럼 정신장애당사자 자신들도 자신에 대해 패배주의적인 낙인을 주고 있습니다.

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에 정신장애인들의 진정건수가 많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은 정신장애인 스스로가 차별을 진정할 만큼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깨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리더쉽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힘으로 공무원이 된 정신장애인이 강사로 초빙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쌓여나간다면‘정신장애인도 단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입장과 관점을 세우고, 가족 및 직업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신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정신장애인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성공의 경험이 그다지 없지요.

이제 우리에 관한 문제는 우리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우리자신보다 우리의 마음을 잘 알겠습니까?

우리 내적으로도 변화를 시도하고 외부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소비자로서,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표시해야 됩니다.

변화가 더디더라도 미래에는 정신장애당사자가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시대를 꿈꿉시다.

앞으로 임원들만의 단체, 죽은 단체가 아닌 활성화된 단체로 성장하기 위해 여러분들의 관심과 의지, 참여가 필요합니다.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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