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로 인해 곳곳에 주룩주룩 비가 내리던 날, 포이동 주민들에게는, 그리고 방한 칸 없이 떠도는 노숙인들에게는 그 비가 눈물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7일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빈민활동체험단이 노숙인 체험에 앞서 영등포구청 앞에서 쪽방철거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최경훈 기자>

7일 영등포구청앞에는 50여명의 대학생들과 노숙인들이 비가 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얀 우비를 입고 비를 맞으며, 영등포지역 쪽방에 대한 영등포구청장의 횡포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외침들이 메아리쳤다.

빈곤연대를 비롯한 노점상연합 등으로 구성된 빈민체험활동(빈활)이 7일째 되던 날. 7월 1일부터 8일까지 7박8일동안 진행된 빈활의 막바지에 다다른 이날 체험단원들은 마지막 관문인 노숙인 체험을 위해 모였다.

영등포 쪽방지역에서의 지역민들과 간담회 등으로 다소 일정이 늦춰진 5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영등포구청 앞. 노숙인 체험에 앞서 진행된 영등포 2가동 쪽방 철거, 보상 미해당 가구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는 최후의 주거지인 쪽방에서까지 쫓겨나는 노숙인들의 애환을 랩으로 풀어내며 힘차게 포문을 열었다.

집회에 참석한 노숙인 당사자가 울분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최경훈 기자>

이날 집회 체험단으로 참가하기 위해 월차를 내고 왔다는 동부아동상담실 김화선(29)씨는 "노숙인 문제가 심각한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인지는 생각도 못했다"며 "만약 영등포구청장도 같이 쪽방촌을 방문했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구청안의 공무원도 앉아서 구경 만하지 말고 가서 현장을 봐야 노숙인들의 참담한 현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이어진 체험단 대학생들의 퍼포먼스는 불법 강제철거를 일삼는 지역구청의 횡포와 이에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하며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는 노숙인들과의 관계를 신랄하게 그려냈다.

2시간 여 동안의 집회를 마무리하고 다음 집결지인 감리교신학대학으로 이동. 이동 후 체험단은 5명이 한조가 되어 직접 노숙인을 만나고 서울지역내 노숙인 수치 파악을 위해 나섰다.

현재 서울시가 추정하고 있는 거리노숙인 통계는 700명. 그러나 빈활 관계자는 서울시가 노숙인 집계를 펼치던 중 900명이 넘어서자 수치 파악을 중단했다는 것.

지역별 노숙인 실태 파악에 나선 체험단들이 노숙지도 그리기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체험단은 노숙인이 많다는 서울역을 비롯해 종로, 대학로, 잠실까지 인원을 배치해 실태를 파악키로 했다.

각 조에는 현장에서 직접 노숙인과 만나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는 실천가 1인과 현재 또는 예전에 노숙인이었던 한 1명, 그리고 학생 3명이 배치됐다.

기자가 포함된 조가 맡은 곳은 회현역 부근. 밤 9시경 도착한 회현역사 내에는 10여명의 노숙인들이 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시빈민선교회 김미영(22)씨는 매주 목요일 선교회에서 거리노숙인들을 찾아가 음료를 나눠주고 담소를 나누는 등 이미 회현역 노숙인들에게는 친근한 사람이었다.

그의 소개로 인사를 나눈 학생들은 노숙인이라는 편견과 거리감으로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시간이 10분 20분 경과함에 따라 서로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되었고, 노숙인들 또한 "매일 보던 사람보다 새로운 사람이 와서 더 좋다'"며 너스레를 떨 정도로 서로에게 쉽게 다가서고 있었다.

감리교신학대 이진아(22)씨는 오늘 특별한 사람을 만났다. 동아리 활동으로 1년전 노숙인 아웃리치를 나갔다 만난 박모(56)씨를 다시 만났던 것.

그의 기쁨이 배가 된 것은 박씨가 이제는 노숙인이 아닌 자활의 의지로 직장을 잡고 보증금 300에 월 20만원의 방에서 자기 생활을 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1년만에 다시 만난 그들은 10년만에 다시 만난 친구처럼 서로 반기며 부둥켜안는 모습이 적잖이 가슴을 적셨다.

"지금은 방학동 근처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데 같이 지내던 친구도 데려가서 같이 일하고 싶어 데리러 왔다"는 박씨는 "조금만 더 여력이 되면 방도 큰 곳으로 옮겨 꼭 그 친구도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아내의 도박과 자살, 사업의 실패, 빚보증으로 인한 파산 등 각기 다른 아픔을 가지고 거리로 내몰릴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게는 동전 한닢이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듯 했다.

11시 30분 감신대 학교로 집결한 체험단들은 각자 맡은 지역의 노숙인 수를 파악해 '노숙지도'를 완성하고, 거리 노숙인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서로의 감정을 다시금 확인하는는 시간을 통해 마지막 체험인 거리노숙과, 쪽방, 쉼터 등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빈활을 통해 체험단원들은 '빈곤은 누구 하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나아가 국가가 이를 책임지지 않고서는 빈곤이 악순환 될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경하 기자 lkhpress@bokjinews.com

 

이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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