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부탁합니다. 남편을 엄벌에 처해주십시오. 신용카드건과 통장 훔친 사건, 우리 딸아이 얼굴에 흉지게 하고 깜깜한 밤에 와서 눈동자도 못 움직이게 찌르고, 이혼하자고 하면 나가라고 윽박지르고…. 지칠 대로 지쳤고 저런 행동을 지켜볼 수가 없어서 자살로써 제 누명을 벗기려 합니다.”

지난 5년간 폭력과 위협 등을 벌인 남편의 처벌을 호소하며 투신자살한 이금례(38. 가명) 씨의 남편 최 모씨에 대해 재판부가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판결을 내리자 여성계가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강력한 비난에 나섰다. 

이 사건은 지난 2005년 故이금례씨가 지금의 남편 최 씨와 재혼해 최씨와의 사이에 딸(5), 아들(3)을 두고 살아오다 지난 5월 진도대교에서 딸과 함께 투신자살한 사건으로 사건 당시 정확한 자살동기가 밝혀지지 않다가 두 달 뒤인 7월 이씨의 유서가 발견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가해자 최씨는 9월 구속됐다.

23장 분량의 유서에는 남편 최 씨가 자신과 특히 전 남편의 딸(9)에 행한 욕설과 폭력, 위협, 경제적인 착취 등에 대해 낱낱이 적고 있으며 남편을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절규를 담고 있다.

이 사건 관련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은 지난 10월26일 가해자 최 씨에게 징역1년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며 故이금례씨가 자살하기 2년 전 전치 3주의 상해와 생존한 딸의 가벼운 상해만을 기소했고, 기소범위 밖에 있는 피해자의 자살은 직접적인 양형요소가 될 수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성명을 통해 “그녀가 남긴 유서가 있고, 진단서가 있고, 아버지의 폭력을 목격한 자녀들이 있는데도 이금례 씨의 죽음이 자살일 뿐 남편 최 씨의 폭력과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판단은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유서의 면면에는 이 씨의 불안함과 억울함, 책임지지 못할 것 같은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 죽음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담겨 있었다”며 “정의와 인권은 왜 여성에게는 왜‘아내’에게는 예외가 돼야 하는가”고 반문했다.

또 “도망가기 위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아내들, 극단적인 선택이 이들에게는 유일한 선택이 되는 이유는 이 사회가 가정폭력을 규범으로 용인하기 때문”이라며 “이 씨가 죽음을 통한 경고를 ‘부부싸움’이라는 가벼운 사생활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여성의전화는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멈춰라, 가정폭력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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