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일관성 요구…'선무당이 사람 잡는 일'

# 피해자는 14세로 정신지체2급이며 지능지수가 40으로 가출해 역사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피고인이 집으로 데려가 간음하기를 여섯 차례 했다는 혐의로 공소제기됐다.

(법원은) 어떤 손으로 피고인이 집으로 끌고 갔는지에 대해 피해자가 왼팔, 양손 등 상황에 따라 변경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아저씨가 무섭게 했니”라는 질문에 “아니오”라는 대답을 했으나 “싫으면 안 벗으면 될 텐데 안 벗으면 아저씨가 어떻게 할 것 같았나요”라는 질문에 “때릴 것 같았어요”라고 대답해 전후 모순되는 진술을 하고 있다고 봤으나 가해자의 화간주장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인정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또 ‘사랑해요’라고 남긴 메모가 가해자에 대한 진의일 것으로 보이며 피해자와 피고인이 여러 번 함께 식사를 하는 등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기에는 부자연스럽다고 했다. 

장애인성폭력사건을 해결하는 또 하나의 걸림돌은 바로 장애인 진술의 신빙성에 관한 문제다.

대부분의 성폭력사건은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의 증언이 범죄성립을 판단하는 중요한 증거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법원, 검찰 등 사건관계기관은 피해자에게 피해날짜 및 피해내용, 횟수, 주변정황 등에 대해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특히 진술 및 판단능력이 미약한 지적장애인은 낮은 지적수준과 인지력으로 인해 시간이나 장소개념이 희박하고 언어구사력의 부족으로 자신의 의사를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며 상대의 질문의도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채 무조건 ‘예’라고 대답을 하는 성향이 있다. 

또한 그들은 가족 안에서 자신의 장애를 이해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교육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또래집단 등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를 존중하는 친밀하고 평등한 관계, 서로의 의견충돌이나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 등을 갖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교육만을 받아 왔기에 강요와 폭력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데 매우 취약하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로 인해 작은 관심에도 쉽게 유인되며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이용당하며 폭력적으로 강제되는 성관계를 타인이 자신을 받아들여준 것, 친밀감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순종을 요구하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관계가 대부분인 그들에게 강간이 연예, 사랑과 동일한 개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비장애인의 언어와 동일하게 받아들인다면 성관계에 대한 동의가 있었다고 판단하기 쉽다.

이러한 장애특성과 여성, 장애로 중첩된 차별, 억압구조의 개인적,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비장애인 및 법정언어 중심으로 장애인들에게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진술을 요구하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운운하며 피해사실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 자체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황지성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보통 특별한 증거가 없는 성폭력사건의 특수성상 피해 진술의 명확성은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임에는 틀림없다”며 “그렇다면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장애인인 경우 그 장애특성에 맞게 진술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장애에 대한 충분한 민감성을 가져야 할 것이며 수사 환경과 방식에 있어서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상녹화, 장애인진술특성 및 증거력 확보

지난 2007년 경기도의 한 장애인재활작업장에서 지적장애여성을 수차례 성추행한 사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지적장애인은 낮은 지적수준과 인지력으로 인해 시간이나 장소개념이 희박하고 언어구사력의 부족으로 자신의 의사를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여 종종 상대의 질문의도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등의 장애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그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일반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특수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재판부나 수사관계기관에 있어 특히 지적·정신장애인의 진술은 아동의 진술과 마찬가지로 원활한 의사소통이라는 관점에서 알아듣기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적장애인 피해자 진술의 증거력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으로 김정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객원연구원은 공판과정의 증거로서 피해자조사 영상녹화의 장점을 강조한다.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26조는 성폭력 피해자가 16세 미만이거나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피해자의 진술 내용과 조사과정을 영상물 녹화장치로 촬영 보존해야 하며, 피해자 등의 진정 성립에 의해 공판과정에서 증거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정혜 연구원은 “진술녹화제도는 초동 수사시 피해자 진술을 그대로 녹화함으로써 피해자기억이 가장 생생할 때 진술을 확보하는 의미가 있다”며 “가해자나 사건이해관계인과의 접촉을 통해 진술이 번복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초동 수사시 진술은 더욱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술녹화는 진술 당시의 분위기, 질문과 답변의 상관관계, 피해자의 답변의 맥락, 어투와 행동 등을 전달해 수사기관에 의해 문자로 작성된 조서가 놓칠 수 있는 사항을 재판부에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예를 들어 질문이 어떤 것이든 수긍하는 경향이 있는 지적장애인의 영상녹화가 증거로 채택된다면 실제 질문과 답변의 상호작용이 드러나게 돼 피해자의 진술내용 자체보다는 그러한 장애특성에 맞는 진술을 이끌어낼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다.

반면 상호모순된 질문에 대해 피해자가 모두 수긍하는 답변을 한다고 하더라도 수사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조서에는 피해자의 답변내용만이 부각돼 피해자의 진술은 비일관되고 번복되며 신빙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기 쉽다.

또한 조서는 조사자와 피조사자의 대화내용의 맥락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수사관의 관심과 이해정도 등에 따라 진술내용을 생략, 축소할 수 있으며 때로는 신체언어를 놓쳐 반어적이거나 중의적인 진술을 그대로 조서에 옮김으로써 피해자의 의사를 왜곡할 수도 있다.

김 연구원은 이처럼 영상녹화가 진술의 진의를 파악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장점을 널리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4월 아동성범죄피해자의 경우 진술조서를 작성하지 않고 진술 장면을 촬영한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삼아 재판을 진행, 피해아동을 법정에 세우지 않는다는 내용의 ‘성폭력범죄사건처리지침’을 전국 18개 지방검찰청에 내린 바 있다.

대검찰청은 이 지침대상으로 성인여성, 아동·지적장애여성 등이 모두 포함되며 특히 성폭력 피해자가 16세 미만이거나 장애인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제출토록 해 피해자가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도록 공판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불가피하게 재판부의 결정으로 법정에서 증언해야 할 경우에는 중계장치에 의한 신문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성폭력상담소들은 장애인사건에 대해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하지 않는 등 경우에 재차 피해자를 불러 조서 작성 및 재판의 증인 출석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기존의 효율성 위주의 수사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육하원칙에 따른 문답방식에서 담을 수 없는 진술특성을 확보하고 보존한다는 진술녹화 의무규정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진술분석전문가, 장애인진술 보조 불충분

지난 해 4월 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성폭력피해자가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학자 등 관련전문가에게 피해자의 정신·심리 상태에 대한 진단 소견 및 진술 내용에 관한 의견을 조회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검찰청은 지난 해 5월 소아정신과의사, 임상심리학자 등 72명을 성폭력범죄담당 전문가로 위촉하고 피해아동 및 장애인의 심리상태 진단 및 진술내용 분석 업무를 실시하고 있다.

경찰청의 경우, 지난 2008년부터 2년간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 2010년 3월부터 전문가 참여 수사시스템을 실시해 왔으며 전국 18개 원스톱기동수사대에 96명의 전문가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전문가들이 주로 아동심리학자, 소아정신과의사 등 아동관련 전문가가 대부분이며 참여회수도 일회성에 그치는 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대검찰청과 여성가족부는 ‘성폭력피해아동 진술조사전문인력양성과정’을 지난 해 10월부터 운영해 왔으며 검찰관계자 9명 등 총 23명이 과정을 수료했다.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소양·전문 이론교육 100시간, 실습교육 80시간 등 총 180시간 과정이며 이 중 아동관련 교육은 ‘아동성폭력사건의 형사소송 절차’, ‘아동발달‘, ’아동·청소년기의 성폭력과 정신병리‘, ’성폭력피해아동의 특성‘ ’아동의 기억과 피암시성‘ 등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장애인은 ’성폭력피해 장애인의 특성‘ 등 2개 과정에 불과하다.   

여성부 관계자는 “아동과 지적장애인의 특성이 진술의 비일관성 등 유사하며 제도 시행 초기여서 아동, 장애인 전문가를 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은 아동에 비해 상황을 일반화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진술 비일관성이 훨씬 심각하다. 특히 장애인은 가해자를 옹호하기도 하고 아동에 비해 진술을 끌어내는 분위기, 테크닉에 잘 이끌리지 않는다”며 “아동과 장애인의 지적능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전문가가 활동해도 된다는 것은 비장애인식 사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 교수는 “같은 지적장애인이라도 개별적 장애특성이 천차만별이며 장애인 성폭력 환경과 장애인이 처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면서 “일회적으로 조사과정에 참여해 매뉴얼에 의해 진술을 분석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장애인의 진술능력을 보조하기에는 너무나 불충분하다”고 밝혔다.

‘절차보조인’ 필요성 대두

최근 장애인성폭력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 장애인 진술능력 및 수사 및 재판절차 참여를 보조하는 전문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황지성 소장은 “재판에서 영상녹화가 증거로 반영된다 해도 장애인 조사 인력이 장애인으로부터 진술을 끌어내는 전문성이 없다면 녹화, 보존한다는 것 외에 큰 의미가 없다”며 “단지 진술을 분석하는 전문가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장애인의 개별적 장애특성 및 환경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장애인의 인지·언어능력 수준에 맞게 질문·조사하고 이를 사건관계기관에 전달하는 등 상호 의사전달 및 이해를 돕는 매개자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혜 연구원은 “특히 피해자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인물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피해자를 수사·재판과정에서 배제시킬 수도 있으며 피해자가 사건관련 통지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피해자 조사에 참여해 진술능력을 보조하는 역할과 아울러 수사재판절차에서 피해자 당사자의 참여가 배제되지 않도록 돕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인과 성폭력에 대한 이해를 모두 갖춘 이른바 ‘절차보조인’은 사건 초기부터 최종판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참여해 피해자의 장애특성 이해, 피해자와의 라포형성을 통해 피해자를 변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한진 교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의사소통이나 의사표현의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이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기를 원할 경우 필요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며 “사회복지사, 장애인 성폭력상담소 관계자 등 장애인에 친숙한 전문가가 팀워크를 구성, 장애특성, 성폭력환경 등 여려 측면을 종합적으로 매개,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들 전문가들은 이번 상반기에 이 보조인의 구체적 역할과 법적·재도화 방안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이해교육 ‘맞춤형’으로

흉악아동성폭력범죄에 따라 아동 진술능력 미약함을 보조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는 등 성폭력관련제도가 대폭 개선된 점은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졌다는 측면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아동성폭력 대책에 장애인을 끼워 넣는 식의 제도운영방식은 또다시 장애인성폭력사건을 ‘수박 겉핥기’로 처리할 뿐 정책대상에 맞는 궁극적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지양해야 한다.

한편 성폭력전담재판부, 원스톱기동수사대 등 성폭력전담부들이 마련…운영되고 있지만 이들의 장애인과 성폭력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여전히 일고 있다.

장애인성폭력 관련 전문가들이 수사·사법절차 일선에서 장애인을 보조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법원과 검찰, 경찰 등 사건관계기관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개선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말할 가치도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장애이해교육이 형식적이고 천편일률적이라는 지적이 있는 만큼 교육대상에 맞는 장애이해교육의 매뉴얼 개발도 추진돼야 할 것이다.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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