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새해 벽두에 또 하나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강원도 인제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3개월 간 10대 지적장애여성을 같은 마을에 사는 비장애남성 7명이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가한 일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장애자녀부모들은 지난 6월 대전에서 16명의 비장애 고등학생들이 15세인 지적장애청소녀를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건에 분노하며 이를 계기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시켰다.

사건이 알려진 뒤 온 사회가 분노하였고, 국회 감사에서는 해당 사건을 안일하게 대처한 경찰과 검찰에 대한 질의 및 장애인 성폭력 사건 대응 방안을 담당 기관에 요구하는 등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적인 논의의 장이 마련되는 듯하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다시 국가와 사회는 마치 장애인 성폭력 사건이 모두 해결된 양 잠잠하다.

그러나 대전의 16명 집단 성폭력 사건은 여론의 관심이 사그라지자 준비된 각본처럼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장애유무를 문제제기 하며 성폭력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피해자는 사회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그리고 또 인제에서 끔찍했던 공주의 장애인 성폭력 사건이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은 일반 성폭력 사건에 비해 성폭력 사실이 은폐되거나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비율이 더 높다. 사건이 알려져 수사를 하더라도 장애특성이 적절히 고려하지 않아 가해자가 처벌되는 비율은 매우 낮다(2009년 기준 성폭력특례법위반으로 검찰에 접수된 피해 사례(강간, 성추행, 성희롱)가 239건에 이르지만 이중 기소가 된 사건은 93건(39%)에 불과함).

또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된 후 피해자에게 적절한 후속지원이 제공되지 않아 피해자가 성폭력에 의한 심신의 상처를 치료받지 못하고 또 다른 성폭력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성폭력은 장애여성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을 통째로 짓밟는 범죄이다. 이런 범죄가 점차 조직적이고 집단적이며 장기적인 성격을 갖기에, 이에 대응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와 체계를 하루빨리 갖춰야 한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으로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기초 지자체별 지원과 사례관리가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동사무소나 읍사무소에 몇 안 되는 사회복지사로 형식만 갖출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그 가족의 지원을 전담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하여 배치하여야 한다.

또한 학령기 장애학생의 자기결정능력과 위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과정이 강화되어야 하며,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에게는 학령기 이후에도 이러한 교육이 평생교육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된 이후 대응 방안 또한 구체화되어야 한다.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장애인의 환경과 상황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며, 장애특성에 대해 이해가 있는 전담수사인력이 양성되어야 한다.

특히 원스톱지원센터나 해바라기지원센터 등 성폭력 전문기관 내에는 장애 관련 전문인력이 반드시 배치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성폭력처벌에관한특례법과 형법, 민법 등 관련 법률이 피해장애여성의 장애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법 개정 역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현재 전국에 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18개소이며 보호시설은 2곳에 불과하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성폭력 사건 지원을 하는 거의 유일한 전문기관들이지만, 그나마 운영되고 있는 기관들에 대한 공적인 지원체계가 부족하여 열악한 시설과 인력난으로 성폭력피해자에게 적절한 지원을 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따라서 장애인성폭력 전문기관의 대폭 확충과 이들 기관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성폭력 사건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폭력을 조장하고 묵인하는 이 사회가 우선 변화해야 한다. 선진국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나라의 GDP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와 함께 살기 위한 문화와 체계가 바로 그 기준이다.

따라서 우리 장애자녀부모들은 장애인만이 아닌 이 사회 전체를 위해 현재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성폭력사건이 장애인의 환경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진행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정부와 국가가 나서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제도와 체계를 하루빨리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가 머뭇거리고 있는 이 순간 또 하나의 생명이 성폭력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장애인도 살고 싶다!

2011년 2월 10일

사단법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박영신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