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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립이여! 정립이여! 바로 세움이여!정외택 칼럼
정외택 기자 | 승인 2005.01.13 13:32

기억하는가.
1990년 정립회관에서 벌어졌던, 뜨겁던 여름날의 투쟁을 떠올릴 수 있는가. 붉은 머리 띠 질끈 동여매고 삼륜 오토바이에 몸을 의지한 채 '장애해방'의 깃발을 나부끼던 젊은 청년들의 당당한 모습을 기억하는가.
두 손 치켜들며 '비리척결'을 목놓아 부르던 투사들의 힘찬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가. '이건 아니다'며 울부짖던 젊은이들의 피울움이 귀전에 맴도는가.
역사는 정녕 반복하는가. 여전히 아차산 기슭에는 피울음의 호곡이 들려온다. 1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정립회관에는 '관장퇴진'의 붉은 글씨가 아로새겨 진다.

15년의 세월 뛰어 넘어 벌어진 '재판'

1990년 당시 관장은 뚜렷한 비리가 없는데도 단지 '부부'라는 이유로, '연좌제'에 걸려 물러났다. 그런데 오늘날의 정립회관 관장은 어떤가.
11년이라는 장기집권도 모자라 편법으로 2년을 더 해먹겠다고 난리다. 임기만료를 코앞에 두고 65살 정년제를 임기제로 바꾸는 것은 누가 뭐래도 속이 훤히 보이는 행태다.
정년제에서 임기제로 바꾸는 것은 진일보다. 하지만 현 관장이 거기에 승차, 2년을 더 끌고 가겠다는 것은 무리다. '비리가 없는데 꼭 물러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거나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며 밀고 나가는 그 우격다짐이 가소롭다.
그렇다면 애초 규정을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관장직은 비리가 없는 한 종신제다'라고 말이다. '절차상 하자가 없으니 상관없다'는 논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독재자라고 불리 우는 이승만부터 전두환까지 절차상 아무런 하자 없이 대통령이 됐다. 사사오입 개헌, 유신헌법, 체육관 투표 등 거칠 것은 다 거친 '합법의 선거'였다.
정립회관 관장 임기연장을 획책한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진이 주장하는 '합법의 틀을 갖춘 논의결과'와 어쩜 그리 똑같은가. 허나 지금, 우리는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을 민주주의를 역행한 독재자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소아마비협회와 정립회관장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합법의 틀을 가장한 변칙적 임기연장

그래서 장애인들이 들고일어났다. 벌써 170여일을 넘기는 장기농성투쟁이다. 얼마 전부터는 단식농성이라는 가장 극한의 투쟁방법으로 맞서고 있다. 급기야 한 농성참가자가 응급실로 실려갔다.
정립(正立), 말 그대로 '바로 선다'는 뜻이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아차산 기슭에도 '정립'이라는 푯돌이 우뚝 서 있다. 정립회관을 가르키는 말이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1975년 설립돼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아픔과 서러움을 보듬으며 이 땅의 장애인들을 그 넓은 가슴으로 품어온 자랑스런 곳이 아니던가.
7,80년대 장애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차별 당할 때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마음의 안식처이자, 젊은 장애인들이 장애인문제를 사회문제로 치열하게 의식화하며 고민했던 장애인운동의 시발점이 바로 그 곳이 아니던가.
90년대 말 자립생활 이념을 전파하며 장애인들에게 '주체적 삶'을 일깨우던 정립이 아니던가. 이처럼 우리나라 장애인시설의 상징이었던 정립회관이 바로 서지 못하고 기우뚱거리고 있다. 답답할 지경이다.
그런데 누구하나 나서질 않는다.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 속에, 조직 속에서 제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장애인들이 농성과 단식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데도 뒷짐을 짓고 있는 것은 인권을 논하는 장애인과 장애인단체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정립은 노사간의 갈등차원을 넘어 선지 오래다. 전체 장애인의, 장애인들이 풀어야 문제로 다가왔다. 많은 장애인단체들은 부메랑을 걱정한다. 어느 편에도 서길 꺼려지는 지금은, 외면하기가 상책인가. 두 손놓고 있는 것이 대순가.
그 많던 장애인단체는 어디로 갔는가. 두 번에 걸친 야만적인 폭력사태에도 침묵을 지키던 당신들이 진정 장애인인권을 대변한다던 단체가 맞는가. 언제까지 차려 자세로 있을 텐가.

장애인 운동의 성지 외면만 할건가

더불어 '90년의 들끓던 젊은 피'들은 어디로 숨었나. 1990년과 2004년 '두 투쟁'의 차이를 들먹거리며 뒷걸음질치고 있지 않나.
시간은 흘렀고 사람은 세월의 무게만큼 변한 것인가. 그대들이 정녕 두 손 치켜들며 '장애해방'을 목놓아 부르던 '투사'들이었던가. 무엇이 이토록 모든 이에게 정립사태를 방관자적 자세로 머물게 하는가.
정립은 바로 세움이다. 쓰러지면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이 정립이다. 그 정립이 지금 쓰러지고 있다. 90년 정립회관을 바로 세우려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라. 그리하여 정립회관을 '재정립'하라.
한여름을 지나 한겨울로 접어든 아차산은 을씨년스럽다. 이제, 철저히 '고개를 돌려야 만했던 당신'들이 '장애인운동의 성지'를 올곧게 지켜내야 하지 않겠는가. < 편집국장>
 (복지연합신문 2004년 12월13일자 게재)

 

정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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