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이후 가난한 이들의 탈빈곤과 자활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지난해로 시행 1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의 최후의 안정망인 기초법은 수많은 진입장벽과 낮은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소득과 재산이 모두 현행 기초생활보장 수급기준에 해당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규제로 인해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103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가폭등으로 인해 생활고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실질적인 생활지원의 효과가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최저생계비는 국민의 소득지출수준과 격차가 점점 벌어져 2008년 30.9%수준에 그치고 있다.

장애인의 기초생활보장은 어떠한가.

지난해 10월 한 장애인의 아버지가 자녀의 수급권을 위해 자살한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기초법은 수많은 독소조항으로 가난한 장애인 가족을 해체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모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심지어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들의 자립의 꿈을 짓밟고 수급을 받고 있는 경우라도 최저생계비의 ‘감옥’에 가두어 희망을 말살하고 있다.

본지는 장애인의 기초생활보장실태를 짚어보고 대안 및 개선움직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장애인의 소득·지출 및 생활 실태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2008)에 따르면 장애인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81만9000원으로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337만원)의 54.0%로 비장애인 가구의 절반을 약간 넘어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분포는 50~99만원이 24.8%로 가장 많고 100~149만원 16.3%, 50만원 미만도 12.3%에 달해 전체 장애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150만원 미만의 소득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가구의 월평균 지출은 155만5000원으로 전국 월평균 가구지출(229만원)의 67.9% 수준이며 월평균 소득 대비 지출액의 비율을 보면 장애인가구는 85.5%인 반면, 전체가구는 68.0%로 장애인가구가 상대적으로 열악함을 알 수 있다.

고용현황을 살펴보면 2010년 5월 기준 장애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8.5%, 고용률은 36.0% , 실업률은 6.6%인데 비해 전체인구의 경우 각각 61.9%, 60.0%, 3.2%로 나타나 전체인구에 비해 장애인구의 경제활동상태는 현저히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장애인가구의 주관적 소속계층에 대해 하위에 속한다 71.6%, 중층 28.1%인데 반해 상층은 0.4%에 불과했다. 

빈곤해도 수급 못 받는 장애인들

# 저희는 뇌성마비1급 장애인부부입니다. 결혼 후 6년 동안 기초수급자신청을 해 왔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매번 안 됐습니다. 올해부턴 부모님의 몸이 안 좋으셔서 막노동조차 할 수 없어 1년에 두 차례씩 보내주시던 생활비도 보내주시지 못하는데 우리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마흔이 된 아들부부가 부모님을 부양하는 경우는 있어도 오히려 도움을 받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아이 낳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 뿐인데 그게 그렇게 커다란 바람입니까. 복지국가,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떠들어대는 이 나라의 모순이 너무 싫습니다.

# 저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9살 때부터 20년 넘게 남들처럼 배우지도, 일하지도, 평범하게 살지도 못한 채 시설에 갇혀 생활해 왔습니다. 자립생활을 꿈꿔온 저는 지난 2010년 아파트를 신청, 당첨이 됐지만 가족의 재산과 소득 때문에 기초수급자가 안 돼 결국 아파트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가족이 있어도 찾지도 보러오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최저생계비는 중요한 생명과 같은 돈입니다. 왜 70~80세 먹은 가족이 저를 먹여 살립니까? 시설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서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지난 해 12월2일 35명의 장애인들이 청와대 국민신문고를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는 1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까지 부양의무자로 규정하고 그들의 소득과 재산을 조사해 간주부양비 ‘미약’구간까지 수급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 장애인들은 특히 중증장애인들이 취업을 하기에는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만연해 있으며 벽이 높은 현실이어서 사회적 보장에 의존해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국가는 기초생활보장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장애인들이 부모와 형제들에게 짐만 되는 존재가 되도록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힐난했다.

이들은 민원을 통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던지, 일자리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민원에 대해 기초생활보장수급신청방법 등 제도 안내에 그치는 내용으로 회신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급 제외되면 복지서비스도 하락 ‘삼중고’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수급권에서 배제된 장애인들에게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복지서비스가 기초보장제와 연동돼 서비스지원이 축소, 탈락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사업의 경우 장애인등록진단비지급은 기초생활수급자(지적·발달장애인 4만원, 다른 장애유형 1만5000원)만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장애인보조기구 교부 또한 기초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만 지원되고 있다.

장애인연금은 기초수급자가 아니면 부가급여 6만원을 받을 수 없다.

장애인보장구건강보험(의료급여)지원사업에 있어서도 기초수급자이면 최대 85%(의료급여 1종 100%, 2종 85%)까지 지원을 받게 되지만 의료급여 대상자가 아닌 경우 지원기준액의 80%만 지원받게 된다.

또한 활동보조서비스, 장애아동재활치료서비스 등 대다수의 서비스가 기초수급자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고 있다.

일할 기회도 찾기 어렵고 소득도 적은 장애인에게 복지서비스 비용 또한 커다란 부담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초수급 제외는 장애인들을 삼중고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바닥 생존’…희망 없는 삶

# 저는 70세가 넘으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으며 둘 다 기초수급을 받고 있습니다. 기초수급비와 장애연금 등 합쳐 90여만원을 받고 있는데, 임대료와 병원비, 각종 공과금 등을 합치면 60만원이 빠져나가고 남은 30만원으로 부식비와 교통비 등 해결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축과 문화생활은 꿈도 꿀 수 없으며 옷이라도 한 벌 살라치면 두 손을 벌벌 떨어야 합니다. 지난번에 휠체어가 고장이 나서 수리비를 푼푼이 갚느라 요즘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복지일자리라도 해서 돈도 더 벌고 보람도 찾고 싶지만 근로수입이 수급비에서 빠져나간다는 애기를 듣고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수급비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고 무기력합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는 장애인들의 경우도 현실이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가장 큰 문제는 근로소득이 현금급여에서 차감된다는 점이다. 일을 할 수 있는 장애인들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비만 들어가게 된다”며 일을 기피하는 현실이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돈밖에 허락되지 않는 이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2011년 최저생계비는 1인 53만2000원(기초수급 현금급여 43만6000원), 4인 143만9000원(117만8000원)이다.

최저생계비는 겨우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일 뿐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 실현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게다가 근로소득 등 차감해 급여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최저생계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바닥생존을 강요하고 인생에 대한 비전을 차단하는 악법일 뿐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해야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은 “부양의무자 기준은 그동안 꾸준한 법개정을 통해 완화돼 왔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초과로 인한 사각지대에 100만명에 이른다는 것은 더 이상 이 기준을 유지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부양의무자들도 빈곤층이 경우가 많다”며 “부양의무자와 기초수급권자 모두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빈곤대물림 제도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부양의무자 뿐 아니라 부양비를 받는 것으로,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 급여수준을 낮추거나 수급자에서 탈락되게 하는 간주부양비, 추정소득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실 실장은 탈빈곤 지향적인 기초보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저생계비와 소득인정액의 차이를 보충하는 원리로 근로소득이 증가하는 만큼 급여가 감소해 결국 근로동기를 약화시키는 한계가 있다”며 “기초법의 통합급여체계로 인해 열심히 일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 희망보다는 수급에서 탈락해 많은 혜택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앞서 탈수급을 기피하는 현상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근로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으로 빈곤계층에 머무르는 근로빈곤층의 경우, 근로소득공제를 적용하는 한편 개별가구의 상황이나 욕구에 따라 의료, 주거, 교육 등 다양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개별급여체계로 전환해 급여기준을 차등 적용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정기간 동안 수급자격을 유지하면서 자산형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기초법, 이제 개정하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등 단체는 지난 해 11월 기초법공동행동을 결성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상대빈곤선 도입 등을 요구해 왔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 빈곤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도시근로자가구평균소득의 40% 수준으로 상대빈곤선을 도입해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자는 것이다.

이번 4월 중에는 종로구청을 시작으로 집단수급신청운동을 벌여 오히려 빈곤계층을 옥죄는 기초법의 실태와 부조리를 사회에 알려나갈 계획이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여야 뿐 아니라 정부 등 모든 정치계가 복지국가를 외치고 있지만 막상 가난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전근대적인 제도를 예산을 핑계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만적인 행태”라며 “국회와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하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또는 완화를 골자로 한 5개의 개정안들이 이번 4월 임시국회에서 상임위에 상정됐으나 복지부의 반대로 이러한 내용은 제외된 채 통과됐으며 6월 중 재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빈곤 문제를 국회와 정부가 진정 해결하고자 한다면 이제 기초법 부양의무자기준 등 독소조항을 개정해 그들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미래에 대해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박영신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