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교통사고로 지체장애(하지마비) 1급 판정을 받은 권 모씨는 2010년 8월 장애재판정 결과 4급을 받았다. 40만원을 들여가며 근전도검사, 근수축과 관절변형을 확인할 수 있는 일반사진 등 추가서류를 접수했지만 또다시 4급을 받은 권 씨는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된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근전도 검사 시에도 하지완전마비라는 진단을 받은 그는 활동보조가 없으면 당장 굶어죽을 판이었다.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3년 전 재활치료 당시 워커 짚고 보행했다는 기록 한 줄이 이유라는 것을 확인한 그는 우선 진단을 명확히 받아야겠기에 공단을 무작정 찾아가 자신이 하반신 완전마비의 중증임을 증명해야 했으며 약 6개월이 걸려 다시 1급 판정을 받아냈다.

장애등급판정에 대한 객관성, 공정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여전히 피상적인 개선책만을 앞세우고 있어 장애계의 대책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장애등급판정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동기 목원대 교수는 “장애등급판정과 관련해 장애인당사자의 책임은 도덕적 해이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라며 “그러나 정부의 책임은 1급으로 판정받을 객관적 자격이 있는 장애인에게 자의적 해석기준 내세우지 않고 정확히 1급을 판정해 주는 것”이라고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이어 “등급판정의 객관성 결여로 인한 등급하락 및 서비스탈락 피해사례 파악도 정부의 할 일”이라며 “장애재판정은 장애인들의 요구가 아닌 정부의 필요에 의해 실시하는 것이므로 이에 수반되는 진단비, 검사비 등 장애인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아울러 “장애재판정이 장애인을 공포에 떨게 하는 ‘유령’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정부-장애인 상호간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성 한국장애인연맹 사무총장은 장애인등록제를 위한 일괄적인 장애판정은 장애인의 인권정책과는 거리가 먼 행정편의적 정책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4월1일부터 새롭게 시행되고 있는 장애등록제는 장애판정을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에서 재활의학과 전문의 등을 통해 장애판정을 하도록 해 기존 의사 한사람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방식보다 발전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의사의 진단서를 참고로 일괄적인 장애판정에 의한 장애등록제를 시행한다는 점에선 방법만 달라졌을 뿐 장애인등록을 강요하고 무능력자라는 꼬리표를 다는 기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특별교통수단 판정센터, 장애인수당 및 연금 판정센터 등 장애서비스별 판정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며 “이 판정제도는 의사들의 판단이 아닌 장애인들의 일상생활 영위를 기준으로 판정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정충현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장은 “장애등급판정기준 문제로 인한 몇몇 장애인의 피해사례가 보편적이지는 않다. 객관적 자료도 있다”며 “정부는 이러한 사례 줄이기 위해 4월부터 대면심사제도를 두고 이의신청제도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또 “현행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만 제공되는 진단비, 검사비 지원 확대 검토하고 있다”며 “제도운용에 있어 장애인인권 배려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 서류간소화 등 실시하고 있으며 은평구 천안시 등에서 국민연금공단 통해 장애인복지서비스 정보 제공하는 시범사업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더 다양한 장애유형을 복지제도 안에 포함하기 위해 15개 유형에서 더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한 토론회 참석자는 “결국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 피상적인 부분만 개선해 장애인들의 불만을 줄이려 하는 것”이라며 “장애계가 더욱 구체적인 대책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면 장애인등록제에 의한 일괄적인 서비스제공 체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영신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