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간 장애인 소득보장과 자립생활을 위한 장애인연금법, 장애인활동지원법이 제정됐으며 지난 6월에는 이중적 차별을 겪고 있는 장애아동 복지지원을 위한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 국회를 통과됐다.

이 법들의 제정을 통해 장애인소득보전과 자립생활, 장애가족지원 등 제도적,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법 제정에 의의가 있을 뿐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한 일명 ‘반쪽짜리법’, ‘빈껍데기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장애연금은 장애수당과 바꿔치기한 ‘조삼모사’식 제도로, 장애인활동지원법은 기존의 활동보조서비스에 장애인의 사회참여 욕구와는 동떨어진 요양서비스를 추가한 제도로,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은 장애아동 부모들의 요구에 못 이겨 실질적인 지원내용은 없앤 채 그야말로 법의 모습만 갖춘 법으로 제정되는 데 그쳤다.

이에 장애인연금 제정 과정에서 장애계가 오히려 “연금 안 받겠다”며 법 제정을  거부한 일도 발생했다.

이는 주로 장애인 국회의원들이 장애계가 제안한 안을 받아 발의한 법안이 법제정 과정에서 정부의 예산 논리와 선별적 복지패러다임, 국회의원들의 민생법안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인해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법 적용대상과 지원 등이 대폭 축소된 데 따른 것이다.

본지는 장애인 관련법 제정과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장애인복지에 쓸 돈 없다…법제정에만 의의 둬라?

지난 5월초 장애아동복지지원법제정공대위는 보건복지부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장애아동복지지원법 만들되 장애아동 예산 더 이상 확대할 계획 없다는 의견을 들었다.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취지는 장애아동과 가족들이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차별로 인해 아동의 시설입소, 가정파탄에 이르는 사태를 막고 조기개입, 의료비 지원, 전환서비스 등 이들에 필요한 지원을 하자는 데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장애아동재활치료지원사업, 장애아동돌보미파견사업 등 현행 서비스 차원에서 시행중인 사업들을 법 안에 담는다는 계획이었을 뿐 장애아동지원을 위한 종합적 지원책 구축에 대한 의지나 관심은 없었다.

결국 이 법은 중앙·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 등 전달체계의 경우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공공기관에 위탁하며, 의료비 보조기구 등 지원내용은 무산된 채 국회를 통과했다.

한편 지난 2009년 12월29일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3185억원으로 통과됐던 장애인연금은 지난 2009년 31일 한나라당 단독으로 연 본회의에서 1519억원으로 삭감된 채 최종 통과했다.

복지부 당초 요구안인 3185억원을 기획재정부가 1519억원으로 삭감, 국회에 제출한 데 이어 또다시 ‘삭감’을 번복하며 결국 정부 뜻대로 예산안이 처리된 셈이다.

박은수 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장애인연금법’은 중증 25만원 경증 12만5000원을,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의 ‘중증장애인연금법안’은 중증장애인에 30만원을 지급토록 했다.

그러나 정부안의 경우 기본급여 9만1000원, 부가급여 최대 6만원(기초수급자) 등 최대 15만1000원을 지급하는 안으로 이는 장애계 요구안의 40%에 불과한 수준이나 결국 그대로 통과됐다.

대상 또한 중·경증 제한 없이 보편적인 소득보전 제도로서의 취지가 무색하게 1급과 2급, 3급 중 중복장애인 등 중증장애인으로 제한됐으며 사실상 장애수당을 대체한‘무늬만 연금’인 제도로 자리 잡게 됐다. 

장애인연금 제정 당시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장애인연금 예산을 확대하는 것은 기획재정부와 부처협의가 안 돼 제도 도입이 어려우니 시작하는 데 뜻을 둬 달라”고 밝혔다.

장애인복지제도에 있어 정부의 예산논리로 인해 대상을 엄격히 제한하고 진입장벽을 높이는 일은 장애인활동지원법 제정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됐다.

기존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수정한 이 제도는 박은수·윤석용 의원안이 심의조차 받지 못한 채 정부안이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권상정, 통과됐다.

정부가 오는 10월부터 시행하는 장애인활동지원제는 장애인사회생활과 자립생활을 지원한다는 목적을 두고 있음에도 대상을 1급 장애인, 월 최대 급여 180시간(하루 6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장애인의 활동지원과는 동떨어진 방문목욕, 방문간호를 제공토록 하고 있다.

권인희 서강대 법학박사는 “법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장애인복지를 진정성 있게 실현할 의지가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정부와 국회가 장애인복지에 대한 이해 및 인식 없이 입법재량권을 갖고 정치 또는 정부상황에 따라 졸속으로 만드는 문제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날치기통과로 얼룩진 법제정, 일방적인 강행만 

최근 장애인관련법 제정과정은 알력행사를 통한 집권여당의 법안 및 예산안 날치기통과, 장애계 의견 무시한 정부의 일방적 강행 등으로 점철돼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제 도입을 둘러싸고 장애계는 수년간 장애인활동지원제도추진단회의 등을 통해 ▲등급 및 대상제한 폐지 ▲65세 이상 서비스중단 금지 ▲자부담폐지 ▲서비스상한시간 폐지 ▲장애등급재심사 중단 ▲서비스공공성 강화 ▲노인요양 방식 반대 ▲판정기준과 판정체계 개선 ▲활동보조인 처우개선 등 의견을 강력하게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일방적으로 장애계 의견에 배치되는 법안을 입법예고했고 국회는 박은수·윤석용 안 등 대체입법이 발의된 상황이었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정부안을 직권상정해 날치기 통과했다.

 

날치기 통과된 장애인활동지원법의 개정을 위해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안이 논의됐으나 복지부의 완강한 반대와 한나라당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법개정을 이루지 못했다.

 

이어 시행령 및 시행규칙, 고시안 제정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예산이 한정돼 대상과 서비스 확대 어렵다” “서비스 이용자의 권리의식 위해 자부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제도강행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추진단 회의 시 복지부안 찬성한 장애인단체 없었다”며 “장애계 의견수렴 안 했다는 비난 피하기 위해 형식적 자리 만들어 놓고 결국 장애계 의견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복지부는 장애계 의견 수용할 수 없는 이유로 예산부족을 들고 있지만 최소 2급까지 활동지원 주는 데 예산이 그렇게 많이 소요되지 않는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며 “개선의지 없이 행정편의주의로 일관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집권여당이 다수의 위력을 이용해 장애인법 및 예산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행태는 복지를 하겠다는 것이 아닌 비민주적인 폭력 그 자체”라고 힐난했다.

 

국회의원들 “장애인법, 나와는 무관”

18대 국회에는 8명의 장애인 국회의원이 입성했다. 장애인들이 요구하고 있는 299명의 10%에는 못 미치지만 헌정사상 가장 많은 국회의원이 입성한 것이다.

이들은 장애인연금법 제정 등 장애계의 염원을 실현시키는 비중 있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장애인, 장애인정책에 관심이 부족한 현실이다. 

민중의소리는 지난 2005년 17대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식바로잡기연구소가 실시한 장애인인식조사 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

장애인 국회의원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47.8%가 “당연한 일이다”, 22.2%가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했구나”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28.6%는 “장애인 복지를 맡아줄 국회의원이 생겼다” 정도로 생각할 뿐이며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장애인으로 고용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도 81.3%가 장애인 고용에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장애인을 고용한 국회의원은 없었다.

연구소는 “국회의원들이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장애인을 수용하는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라며 “이러한 태도에 따라 장애인 관련 제도나 법령 제정에 대한 구체적인 의지로 이어지지 않는 형국”이라고 결론 내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은수 민주당 의원은 “장애인들의 인권과 복지 향상, 완전한 사회통합은 우리 사회가 선진민주사회로 가는 척도”라며 “국민의 10%가 장애인이며 국민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감안할 때 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 만드는 일 시급하다. 당과 위원회를 막론하고 장애인문제 핵심사안으로 다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은 사회취약계층 문제보다는 정치적인 상황이나 국민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 더 비중을 둔다”며 “장애인 의원조차도 당리당략이 걸린 문제에서는 장애인보다 당의 입장을 따르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다”고 전했다.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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