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드디어 2012년 정부예산안을 발표하였다. 그 핵심은 그리스의 국가부도 사태에 이은 글로벌 경기 침체 상황에서 수출의존형 우리 경제가 지닌 취약성을 고려하여 재정건전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복지 포퓰리즘에 따른 과도한 재정지출은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예산안이다.

‘빚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부채가 지닌 파괴적 영향력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대 허튼 곳에는 돈을 쓰지 않겠다는 정부의 야무진 결심이 얼핏 흠잡을 데 없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이제 졸라맬 허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부유층들과 대기업에게 감세를 허용해주면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 결국 우리 서민들의 형편도 덩달아 나아질 것이라는 저 유명한 ‘낙수 효과’란 감언이설로 대규모 부자감세를 허용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2009년 IMF 사태로 이미 재정이 적자인데다 부자감세로 필요한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게 되자,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진 것은 사실 우리 힘없는 서민이었다.

그런데도 기업과 부유층은 감세로 절약된 돈을 생산적 투자보다는 투기로 소비하여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고,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유연성 강화를 세계 무한경쟁의 대안인 양 내세우며 일해서 먹고 사는 서민들의 삶의 근본마저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소박한 꿈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큰 일이 되어버렸고, 배고픔이나 질병 혹은 실직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거나 스스로 죽느니보다 못한 삶을 폐기처분해버리게 된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 혹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안정성과 존엄을 보장받고 싶다’는 절규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런 사회에 생존을 포기하지 않고는 더 이상 물러날 자리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해년마다 의무적으로 늘어나는 지출증가분을 가지고 사상최대의 복지예산 편성을 운운하며, 더욱이 동결 예정이었던 지역아동센터의 예산을 일부 늘린 것을 가지고 주요복지예산 편성의 한 항목으로 강조해서 소개하는 정부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그 몰염치함에 괜시리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정부가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늘였다고 자랑하는 지역아동센터의 예산은 3500여개소의 센터에 월 400만원씩을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기획재정부의 1차 검토안이 올해와 같은 동결의 움직임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안이긴 하다. 하지만 2010년 12월 현재 전국에 운영 중인 지역아동센터가 3690개소인데 그 중 3500여개소만을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고, 지원단가 400만원 중 15만원은 2012년에 시행되는 주5일 수업제에 따라 한 달 내내 토요일마다 운영을 하는 센터에만 특별 지원하겠다는 금액이어서 실질적으로는 동결 상황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면 29명의 아동들은 돌보는 지역아동센터가 내년에 지원받게 될 운영비는 2010년까지 개소한 3690개소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서로서로 조금씩 나누어 쓸 것을 가정해 볼 때 개소당 대략 월 360만원 내외가 될 것이다. 360만원의 규모는 사실 학교장이나 혹은 어느 정도 연수가 된 교원들의 한 달 급여액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 금액으로 지역아동센터들은 두 명 종사자들의 인건비와 아동 프로그램비 및 사무 운영비 모두를 충당해야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상황이 그런데도 외부에서는 ‘그래도 무슨 수가 있겠지’라는 식의 무관심과 불신의 색안경까지 쓰고 지역아동센터를 바라보는 경우도 있어 종사자들의 가슴을 새까맣게 타들어가게 한다. 2010년에서야 겨우 최저임금 정도는 지급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의 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지는 차마 말하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학교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달래가며 최소한 학업은 포기하지 않도록, 그래도 꿈과 희망을 안고 미래를 찾을 수 있도록 아동과 청소년 및 취약가정의 보호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어려운 시간을 참아왔는데, 정부의 지역아동센터 지원예산안 편성을 보면 그저 기가 찰뿐이다. 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들쑥날쑥한 결식아동 급식비 지원마저 한 푼의 국고 지원도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넘어서 허탈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런데 정부는 부자감세 철회를 통하여 복지예산을 확보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명백히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현재의 부자감세는 2012년 감세하기로 예정되었던 부분을 철회한 것에 지나지 않고, 감세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 자신이 내야 할 몫의 세금을 제대로 내는 점에서 진정한 감세 철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것이 사실은 진실된 내용인 것이다.

물론 정부의 재정전략 목표를 재정건전성 확보에 두는 데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수가 제대로 확보되는 것이 급선무인데, 부자감세라는 근본 매듭을 끊어내지 않고 엉뚱한데서 목을 조이는 방식으로 국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발상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까 싶다. 일자리를 늘리고 안정화시키며 공정한 경제 구조를 만들고 취약한 계층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하는 복지예산의 지출은 재정건전성을 위해 축소시켜 나가겠다고 하고, 부자와 대기업들에게 깎아줄 거라 약속했던 세금을 등에 떠밀려 그냥 받기로 하고 이를 감세 철회로 호들갑스럽게 발표하는 정부의 처사가 미덥지 못하다. 

장시간을 일하는데 한 번도 사회적 보상이 없었던 미안함에 마련하였다고 하는 보육교사 지원 대책을 보면서도 부럽고 허탈하다. 저임금 근로자의 사회보험 신규 지원안을 보면서 급여를 전혀 받지 않아도 4대 보험을 무조건 가입하고 보험료를 내기 위한 명목상의 급여를 받아야 하는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의 현실이 분노스럽다. 센터장은 빼고라도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복지사들 만이라도 최소한의 처우개선책을 마련해주지 않는 정부가 너무나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정말로 정부가 빈곤아동에 대한 지원을 하였다고 발표하고 싶다면 그리고 그 속에서 지역아동센터의 지원을 확대했다고 말하고 싶다면 최소한 2010년까지 개소한 3,690개소 이상이 지원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2004년 보건복지부가 지역아동센터의 표준운영비로 연구 용역결과 발표한 600만원 이상이 지원단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지역아동센터 지원을 확대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선인 것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지원은 결국 빈곤․취약가정의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에 이르게 된다.

온 사회가 들끓게 하고 있는 도가니의 열풍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의와 부패에 염증을 내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양극화는 전 사회 모든 분야에 첨예한 갈등을 만들어 내면서 시시각각 폭발점을 향해 달려가는 시한폭탄의 뇌관이 되어 가고 있다. 더 이상의 거짓과 기만을 참아내기에는 우리 국민들은 너무 힘들다. 더 이상의 희생과 헌신을 감당하기에는 지역아동센터가 짊어진 고통이 너무 힘겹다.

우리 국민과 지역아동센터는 무조건적인 증세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많이 가진 그들이 정당한 자기 몫의 세금을 내기만을 그래서 조세정의가 이루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것으로 굶는 아이들의 밥을 먹이고 홀로 있는 아이들을 돌보아 우리의 미래와 희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과 나와 우리 모두의 피할 수 없는 천명(天命)이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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