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립회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정직 또는 해고당한 노조원들의 삶이 점점 피폐해지고 있어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들은 정립회관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점거농성에 동참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 겨울 찬바람만큼이나 농성참여 노조원들의 가슴은 휑하다. 그러나 이들은 정립회관을 올바로 세우려는 열정 하나로 뻥 뚫린 가슴을 채우고 매서운 칼바람과 맞서고 있다.

지난 7월 28일부터 3개월간 정직처분을 받은 정립회관 노조원 김선이(37·지체1급)씨는 벌써 7개월째 월급봉투를 손에 쥐지 못했다.

7개월째 무급으로 정립회관 점거에 참가중인 정립회관 노조원 김선이씨는 아이들 숙제때문에 인터넷이 필요하지만 요금이 무서워 연결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다.

각종 공과금에 자녀 교육비 등 매달 정기적으로 빠져나가는 뻔한 살림에 한 달치 월급만 빠져도 휘청거리는 게 보통의 월급쟁이 생활. 그런데 7개월 째라니, 경제적 궁핍은 그의 알콩달콩했던 가정생활에도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추석도 그냥 넘어가고 얼마 전 새해를 맞아 부모님께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해 어쩌나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선물이라며 상자를 주시기에 봤더니 남편과 아이들까지 우리 4식구 내복이더라고요. 할말을 잃었죠"

부모에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불효'에 김씨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평소 며느리 마음을 헤아려 정립회관 사태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지 않던 시어머니가 아니었던가. 김씨는 시어머니의 마음씀씀이에 고개가 더욱 숙여진다.

그의 마음을 무엇보다 아프게 하는 것은 역시 아이들의 문제다.
"점거를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한 약속을 모두 미루고 있어요. 컴퓨터도 사줘야하고 방학이라 함께 현장학습도 나갔으면 하지만 경제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게 사실이에요."

자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김씨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특히 올해로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들이 컴퓨터로 해야하는 숙제가 늘어가면서 김씨는 더욱 조바심이 난다.

"컴퓨터를 못 사주고 있는 게 가장 마음에 쓰여요. 최근에 남편이 컴퓨터를 구해오긴 했지만 매달 내야하는 요금이 벅차 아직 인터넷을 연결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아예 학교에서 숙제를 하다 늦게 오거나 컴퓨터가 있는 친구 집으로 가는걸 보면 속이 쓰려요."

그래도 김씨는 아이들을 보며 다시 힘을 얻는다. 자신이 지금 감당하고 있는 '역사'를 미래의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한다면 현재의 고통은 얼마든지 꾹꾹 참아낼 수 있다.  

"이제 제법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들이 정립회관 사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기도 할 때마다 '정립회관이 정상화되게 해주세요'라며 기도해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또 힘을 내죠."

김선이씨가 정립회관 점거농성 과정에서 맡은 일은 집회 홍보를 알리는 피켓을 만드는 작업과 언론 홍보이다.

김씨를 짓누르고 있는 또 하나의 짐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얻은 융자다. 점거 들어가기 한 달 전 입주한 아파트는 김씨에겐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천천히 갚아나갈 계획으로 일단 이사를 했다. 그러나 입주하자마자 시작된 정립회관 사태로 월급이 끊겨 빚만 쌓여갈 뿐 현재로서는 뾰족한 다른 방도가 없다.

"남편도 휠체어 장애인이어서 차 한 대가 더 필요하지만 차량유지비가 월 14만원 가량 들어 남편과 함께 출퇴근해요. 경제적 부담이 돼서 일단 여유가 생길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 같아요."

김씨는 답답한 마음에 신문이라도 돌려볼까 했지만 장애 때문에 시도조차 못해봤다. 
1988년 정립회관에 입사한 김씨의 업무는 전화안내와 방문객 안내. 지난 11월 25일자로 업무복귀 통지를 받았지만 현 상황에서 그의 업무는 없다. 그는 정립회관 농성단이 점거한 사무실에서 집회 관련 언론홍보를 하거나 피켓을 만드는 일을 맡고 있다. 짬짬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는 그에게 '이직의 유혹'은 없었을까. 

"정립회관 사태를 이유로 이직할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 없어요. 지난 18년 간 정립회관에서 일했다는 건 이미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인데 잠시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발을 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립회관이 보다 나은 장애인시설로 거듭나서 다시 본래의 일을 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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