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보편적 복지 논쟁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까지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복지 확대로의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올해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 두 차례의 투표를 거치면서 ‘복지’는 정치권에서 내년 총선· 대선을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 키워드로 인식되고 있으며 사회복지재정 확대를 위한 ‘버핏세 도입’ 등이 공약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렇듯 복지열풍, 복지확대에 대한 국민 차원의 관심과 열망은 지난 투표에서도 드러났듯이 정치 판세를 뒤바꿔놓을 만큼 강력한 것으로 노인인구 증가와 저출산, 중산층 몰락, 양극화 현상 심화, 광범위한 복지사각지대 문제 등 사회적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민적 요구이자 사회적 흐름으로 이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지급여의 단순한 확대 및 복지정책 조합의 차원을 넘어 복지국가로의 사회체제 개편이 이루어져야만 우리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복지국가는 복지선진국들의 모델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우리나라 현실에 입각한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신화는 공고히 자리하고 있고 ‘복지’를 성장을 저해하는 소비적인 것이며 한번 지출되면 축소가 어려울 뿐 아니라 과도한 복지확대가 결국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다는 지적도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본지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복지국가 체제를 지향해야 하는지 모색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안하고자 한다.

초기 복지국가 진입…잔여적 복지 못 벗어나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그동안 성장을 위한 부속품에 불과했던 복지가 분배의 차원에서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싹을 틔우게 된다.

주로 중산층과 대기업 근로자 중심의 사회보험을 취약계층을 포함한 전 국민으로 확대했으며 기초생활보장이라는 새로운 공공부조 제도를 도입해 국가가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게 되면서 소위 ‘초기복지국가’의 얼개를 갖추게 됐다.

특히 장애인연금, 노인장기요양서비스 등 노인이나 장애인 등 특정 집단에 대한 소득보장 및 돌봄서비스를 지원하는 제도들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저출산 대책으로 보육지원 확대와 아이돌보미서비스 도입 등 통해 보육수요를 충당하고 있다.

이러한 복지 확대에도 불구,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는 여전히 저소득층과 노인 장애인 아동 등 전통적 복지계층을 중심으로 한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제도에 그치고 있으며 최후의 사회안전망으로서 잔여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복지를 성장을 저해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복지확대를 꺼려하는 정부 정책 기조 아래, 잔여적 복지마저도 급여 및 대상 제한 등으로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으며 제대로 된 보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어 ‘구멍 뚫린 복지’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대기업 독식체제에 따라 중소기업과 중산층 붕괴 및 신빈곤층 증가현상이 확대되고 있으며 사회보험에서 제외된 비정규직들은 저임금으로 인해 민간보험에서조차 소외된 채 위기의 나락에 빠져 있다.

노령인구의 증가로 노후대책 마련과 노인일자리 문제 등도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부각되고 있으며 한부모·조손·다문화 가정 등 다양화된 가족형태에 대한 대응과 저출산 방지를 위한 일·가정 양립 시스템 구축, 돌봄서비스 확대 또한 시급히 요청된다.

우리 사회는 이제 저소득층의 최저 생계 보장을 넘어서 노동, 건강, 주거, 고령화, 보육 등 전 생애주기에 이르는 보편적인 영역에서 ‘복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나톨 칼레츠키가 ‘자본주의 4.0’이라는 저서를 통해 현재 자본주의는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는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꾀하기 위해 거대기업만의 성장이 아닌 자본주의 생태계 전체의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4.0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과 흐름을 같이 한다.

우리는 이제 국가의 총체적인 현실이 큰 비중으로 요구하고 있는 영역이 복지이며 우리 현실에 맞는 복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복지, 사회적 투자이자 국가운영 핵심가치로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위기를 가장 잘 극복할 수 있고 사회를 지속가능케하면서 우리 현실에 가장 잘 맞는 복지체제는 무엇인가.

최성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투자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회투자복지국가는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보완한 제3의 유형으로 직접적인 소득보장의 제공보다는 적극적인 노동정책과 교육 및 노동능력제고·투자 등 인적투자, 사회투자 개념의 실용조세 등을 강조하는 모델이다.

그는 “한국사회는 국민소득 2만불 수준을 넘는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사회적, 문화적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며 “전통적 복지정책에서 추구하던 최저생활보장에서 나아가 국민의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고 자립 및 사회참여, 자아실현을 보장하는 복지사회를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적 관계 속에서 소비적이고 유지적인 소극적 복지에서 벗어나 생산적, 투자적이며 적극적인 복지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인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부교수·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부교수는 중부담-중복지체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빈곤과 불평등으로 대표되는 선별적이고 시장의존적인 자부담-저복지의 영미식 복지국가의 폐해를 답습해선 안 된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영향력 아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적 번영기에 유럽에서 발달한 고부담-고복지 체제로 이행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라며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소득보장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며 중산층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데다 복지재원 또한 과소한 현실을 개편하는 차원의 중부담-중복지가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는 모든 국민들이 일종의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존중받는 복지철학을 국가운영의 핵심가치로 삼고 복지를 노동, 교육, 주거, 조세정책 등과 긴밀한 연계 속에서 확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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