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자정께 부산진구 부전동 도시철도 서면역 3번 출구 부근에서 정모(48)씨가 쓰러져 있었다. 도시철도 공익 근무요원이 발견 당시 그는 갈비뼈가 심하게 손상된 채로 숨져 있었다.

확인 결과 주로 서면역 일대에서 노숙 생활하던 분으로 밝혀졌다. 경찰에서는 타살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타살 가능성이 아니라 타살이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약간 변죽만 울리다가 변사로 처리될 것이다. 가난하게 살다 억울하게 죽은 정씨는 恨많은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한 줌의 잿가루가 되어 죽어서도 홈리스처럼 떠돌아다닐 것이다.

최근 수원의 여성 토막살인 사건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시민들은 사이코패스의 엽기적 살인행각에 놀라고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는 경찰의 무능에 대해 더욱 절망한다.

그런데 길거리에서는 제대로 먹지 못하고 치료받지 못해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진실이다. 맞아죽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데 그냥 변사자 처리된다.

사실상 의문사인데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사건 종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서면역 부근의 길거리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경찰은 용의자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서면지하철역 주위에서는 공익근무요원들에 의한 일상적인 폭력이 끊이질 않았다. 환경미화와 도시미관 유지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때렸다.

구타는 폭력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범법행위이다. 맞은 사람은 분명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다. 정황으로 볼 때는 누가 범인인지 추정이 가능한데 증거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건은 유야무야 되었다. 그런 와중에 갈비뼈가 부러진 채 죽은 홈리스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그나마 사건이 조금 불거지면 언론은 잠시 떠들다가 “서면역 일대의 치안 시스템에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뻔한 슬로건만 남긴 채 사그러질 것이다.

범인은 잡지도 못하고 그것으로 끝이다. 수사의지 자체가 없으니 ‘못잡는다’는 표현보다 ‘안잡는다’는 말이 맞겠다. 아직은 정확히 범인이 누군지 모른다. 공익근무요원일수도, 거리를 지나던 낯선 시민일수도, 그 일대에서 생활하던 홈리스일수도 있다. 범인검거를 위해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건에 접근해야 한다.  

실직 노숙인이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출현한 이후 많은 노숙인 폭행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책임소재를 따질 때마다 부산시와 부산진구청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혀왔다. 개인간의 사적인 문제에 개입할 수 없고 형사 소송법이나 형법에 의해 처리 가능하다. 

만약 노숙인에 의한 노숙인 폭행 사건이라면 접근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낙인효과 때문이다. ‘노숙인은 술먹고 행패부리다 주먹질한다’는 경멸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좋다, 노숙인이 같은 노숙인을 폭행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부산시와 부산진구청의 복지 관계자들은 폭행사건에 개입하면 안되는가?

개인문제 운운하며 노숙인 폭행문제를 방관한다면 학원 폭력에 대해 학교 당국자들이 학생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고 방치하는 것과 같다. 학생 개인의 사생활 존중이라며 학원폭력을 방관하는 선생이 있다면 그 분은 정신이 거의 나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노숙인 폭행 문제의 본질은 주거복지에 관한 문제이다. 서면역에서 일어난 노숙인 폭행 사망 사건은 어떤 시민이 급격한 사회구조의 변동으로 집을 빼앗기고 황량한 길거리로 내쫓겨 생활하다 일어난 사건이다. 지난 20여년간 일어난 한국사회의 구조 변화는 퇴행적이고 자본지향적이어서 보편적 사회권과 인권상황의 후퇴가 일어났다.

단순 폭행치사 문제를 무조건 주거복지문제와 연결시키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주거가 안정된 시민들도 노상에서 폭행에 연루되기도 하고 피해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리 노숙인처럼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다. 일상화된 폭력이 사망사건으로 귀결되었기에 이 사건은 예고된 인재였다. 좀더 구체적인 통계자료가 나오면 폭력의 심각성이 생생하게 확인될 것이지만 체감지수만으로도 반인권적인 삶의 현장을 알 수 있다.

폭력의 일상화는 주거의 불안정 때문이고 주거불안정은 사회 복지 시스템의 결함에서 비롯되었다. 노숙인들에게 인간적 신뢰와 유대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홈이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복지 시스템의 결함이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재정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홈리스 복지 철학의 빈곤과 의지의 결여로 말미암아 살릴 수 있는 홈리스를 오히려 죽이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말한다.

공무원들은 예산부족 타령을 하며 일상적인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전례가 없다는 말도 빼놓지 않고 하는 변명중 하나이다. 줄줄 새는 예산이 얼마나 많은가? 한정된 예산이라도 경중완급을 조절하여 탄력적으로 적용하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례가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이다. 한 사람 두 사람 밟다보면 새로운 길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예산과 기획과 정책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누구의 관점에서 진행되느냐 하는 것이다. 예산과 기획과 정책의 집행은 당연히 자유와 평등의 인간화 그리고 홈리스 당사자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홈리스 폭행 살인이 벌어지기 전 우리는 긴급한 주거 안정을 위해 임시주거비를 부산시 복지과에 요청한 바 있다. 이름하여 노노케어사업이라 부른다. 우리는 탈노숙을 위해선 대형 노숙인 집단격리시설의 파격적 축소와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가정 시설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홈리스의 주거안정은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와 선순환의 관계가 있다. 그래서 공동작업장 운영도 필요하고 주거안정을 위해선 월세방 임대보증지원과 빈집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노숙의 마차가 달리기 위해선 일자리와 주거안정의 두 바퀴를 동시에 돌려야 한다. 부산시 복지 담당주무는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사업비를 전액 삭감하여 알맹이는 빠진 빈껍데기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두들겨 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채 숨진 홈리스가 발견되었다. 그에게 중간기술로도 가능한 일자리와 두발 뻗고 잠잘 수 있는 안정적 잠자리가 있었다면 이런 비극적 죽음은 맞이하지 않았을 터인데...

우리는 그 불쌍한 홈리스 영혼의 피 값을 부산시 복지과에 요구한다. 홈리스의 폭행 살인 사건은 단순한 형사 문제가 아니다. 부산시 복지과의 직무태만과 무능으로 인해 벌어진 타살 사건이다. 부산시 복지과는 당장에 고인의 빈소를 마련하고 석고 대죄하라. 담당 주무는 사즉생의 각오로 이 문제를 대하고 무한책임의 자세의 백미는 복지부동 공무원의 옷을 벗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부산진구청 또한 무한책임의 자세와 피해 당사자 홈리스의 관점으로 최근의 ‘폭행에 의한 홈리스살인사건’을 대해야 할 것이다. 만일, 같은 노숙인 의한  폭행 사망 사건이라 해도 단순히 ‘거리의 노숙인끼리 시비가 붙어 일어난 사건’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노숙 현장에서 한줌도 안되는 무리들이 소위 일진을 형성하고 일상적인 폭행과 갈취를 해왔다는 사실은 노숙인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복지 담당 부서의 무관심과 방관이 노숙인 폭행의 일상화를 부채질한 측면이 있다. 적극적으로 먼저 개입하고 발본색원했어야 할 일이었다. 필요한 노숙인에게 지원되어야 할 복지 재원들이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병약하고 심약한 다수의 노숙인들이 노숙인 신분을 행정적으로 확보한, 자칭 주먹들에게 휘둘린다면 잘못된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진구청은 경찰과 적극적 협조체계를 구성하여 살인자를 잡아야 한다. 행정적으로 노숙인 신분을 악용하여 힘없는 다수의 홈리스를 침묵시키는 자들을 발본색원하고 일망타진하라.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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