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보들의 유세로 시끄러웠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변이 조용해졌다.

돌이켜보면 총선에서 나온 공약들 대부분이 ‘보편적복지’와 ‘성평등’을 필두로 하고 있어 마치 내가 굉장한 성평등 복지국가에 살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공약이 정책으로 정책이 현실로 뿌리박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테지만 그래도 이러한 언급들 자체가 사회를 바꾸는 씨앗이 될거란 생각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다.

그렇다면 사회복지 실천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이 곳에서도 보편적복지와 성평등에 대한 관심과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을까.

내가 일하는 복지관은 도시빈곤층이 밀집되어 살고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주로 인접지역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주변지역의 중산층 주민들도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이용하고 있다.

예전처럼 속칭 ‘못 사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낙인감을 지워주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가족형태와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복지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 보편적이고 통합적인 사회복지 실천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참 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방과 후 공부방을 이용하는 아이들에게 물품을 기부하려는 분들이 늘 먼저 물어보는 말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각각 몇 명인가요?"이다.

이후 배달되어 온 기부물품을 받아보면, 남자아이용 파란색 학용품, 여자아이용 분홍색 학용품이 정확한 개수로 분류되어 있다.

기부자의 세심함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선물이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은 늘 선호와 취향과 무관하게 고정된 성역할을 주입하게 되는 현실. 가끔씩 특정 물품의 개수가 모자라 파란색 학용품이 더 많이 오는 날이면, 공부방 여자아이들은 울음바다가 된다.

빈곤층이기에, 소득이 한정되어 있기에, 여러 자녀 중에 특정 한 명에게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가족들의 상황도 많이 접하게 된다.

가구별로 한정된 교육비 지원을 어느 자녀에게 해주길 원하는지 묻게 되면 어쩌면 하나같이 아들들에게 학원이나 대학진학 기회를 주는지….

90년대 방영된 드라마 ‘아들과 딸’의 장면들이 현 시대에도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달라는 부모와, 나도 공부하고 싶다는 딸, 그리고 이 상황을 묵인하는 아들. 가족의 의사를 무시하고 사회복지사 마음대로 지원할 수도 없기에, 차라리 여성만을 위한 기금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혼을 고민하고 있거나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을 상담할 때에도 자칫 잘못하면 원가족을 유지하고 상황에 적응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상담을 하기가 쉽다.

아직까지 복지현장에는 ‘여성복지’보다는 ‘가족복지’라는 관점이 더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독신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인정되지 않는 현실에서 ‘가족복지’를 마치 (정상)가족이 순조롭게 유지되고 (성별분업적)기능을 잘 발휘하게 하는 복지로 이해하기가 쉽다.

필요하다면 피해여성의 문제상황으로 부터의 탈출과 새로운 생활에의 자립을 돕는 성인지적 가족복지 실천이 강조될 때이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을 맞이할 준비는 또 얼마나 되어 있을까.

아쉽게도 이 부분을 대학의 사회복지 교육과정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다.

아마도 사회복지가 종교를 기반으로 시작된 데다 종교 법인에서 운영을 하거나 종교적 동기에 의해 사회복지사를 선택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동성애 자체를 터부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한 풍토와 동기로 시작된 미국의 사회복지 실천현장에는 본인들의 복지에 관심을 갖고 사회복지사가 된 동성애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기에 이를 적극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

자체적인 지원이 어렵다면 관련단체를 파악하여 적절하게 연계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적 평등과 복지국가 건설을 이야기 할 때 흔히 여성의 개인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불편과 차별은 대의를 이루기 위해 포기해야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얼핏 보편적복지는 실현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회구성원, 특히 여성이 체감하는 복지수준은 여전히 미미할 것이다.

이에 반해 사회복지 인프라는 점점 확장되고 촘촘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복지현장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자기도 모르게 유지시키고 강화시키고 있는 복지현장의 가부장적 요소들이, 돕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차별이 되지 않도록 더욱 ‘성인지(性認知)적 민감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보편적 복지’와 ‘성평등’은 복지현장에서도 결코 헤어져서는 안 될 중요한 파트너임이 분명하다.

김현진 성산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한국여성민우회 회원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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