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8일 제4회 회장선거에서 당선돼 취임한 이래 일본DPI총회와 중국 장애인베이징포럼에 참가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를 만나 장애인운동에 대한 철학과 DPI 운영방향에 대해 들었다.

취임소감

우선 채종걸 제 3대 DPI 회장의 중도사퇴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총선 당시 2012장애인총선연대를 통해 정당 비례대표로 신청해 한 단체 수장으로서 특정정당을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는 뜻인 줄은 알겠지만 사퇴할 만큼 단체에 커다란 누가 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수차례 만류하기도 했습니다.

회장 자리에 오르고 보니 책임이 참 막중합니다. 우선 당면과제로 9월과 10월에 각각 열릴 장애인문화예술축제와 아태DPI총회 등을 잘 치뤄야 할 것이며 올해로 2회를 맞는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을 위한 국토대장정을 통해 장애인당사자주의에 입각한 반시설운동의 지평을 여는 일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선대 회장단이 쌓아 온 DPI운동정신을 계승해 장애인차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실질적인 사회통합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실무자 출신 수장으로서 장단점은

지난 2008년부터 사무총장으로 실무를 맡다 보니 장애인운동의 흐름과 장애계의 당면과제, 그 속에서의 DPI의 역할에 대해 자연스럽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수장에게 기대되는 개혁과 변화를 시도하는 데 미흡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3대 회장이 중대한 과오로 하차한 게 아닌 만큼 눈에 보이는 개혁보다는 그동안의 DPI의 역할과 위치를 잘 지켜내며 내실을 추구하는 가운데 시대가 요구하는 장애인운동을 펼치고 선도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동안 DPI의 성과와 과제는

한국DPI는 지난 1986년 창립해 전문가 위주의 장애인패러다임을 지양하고 장애인당사자성에 입각한 운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송영욱 초대 회장은 한국DPI 창설하고 주로 장애인운동의 국제적인 흐름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했습니다만 몇몇 지인들과 중앙단일조직으로 활동하는 등 DPI조직을 갖추는 데는 미흡했습니다.

이익섭 2대 회장은 DPI의 법인화 등을 통해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UN장애인권리협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2007년 세계장애인대회를 한국에 유치하는 등 국내외적인 활동도 펼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DPI는 내부조직의 안정화가 안 돼 운영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3대로 취임한 채종걸 회장은 내부 조직의 안정화와 소통에 주력했습니다만 장애인당사자 단체를 규합하는 역할로서 한국DPI의 위상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선대 회장단의 업적을 바탕으로 당사자단체를 규합하고 당사자운동을 선도하는 역할로 나아가기 위해 매진할 것입니다.

DPI 운영방향 및 기조

앞으로 DPI는 장애인 차별과 인권침해 등 장애인관련 모든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도가니 사태에 있어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장애인운동권이 해야 할 올바른 해결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도가니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장애인을 가두고 차별하고 인권 탄압하는 시설을 없애야지 공익이사 등 몇몇 개선조치를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시설이 존재하는 한 장애인복지, 장애인인권을 아무리 떠들어도 다 위선이고 거짓말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5월30일 취임식 때 반시설운동을 선포한 바 있습니다.

장애인 차별과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사람들의 인식, 철학, 패러다임입니다. 장애인의 의학적 손상과 결함에 중점을 둔 패러다임에 따르면 장애인은 불쌍하고 나약한 존재, 시혜와 동정을 베풀어야 하는 존재이며 장애인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시설을 지어서 장애인을 가두고 의학적 심리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 자체가 장애인을 낙인찍고 차별하는 근본적인 기제가 되는 것이며 이러한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회 자체가 ‘장애’ 사회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박혀 있는 이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리 역사가 흐른대도 장애인차별은 계속 될 것입니다.

오는 8월에 진행할 국토대장정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운동입니다. 마틴루터킹 목사가 미국대륙을 횡단하면서 피부색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낸 것처럼 DPI 또한 고난스러운 행군을 통해 장애를 이유로 사람을 가두고 차별하고 인권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각성시키고 퍼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DPI는 장애인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흐름들, 근본을 건드리지 못하고 개별사안에만 치중하는 경향를 지양하고 더디고 어렵더라도 가장 바닥에서부터 장애인을 차별하는 씨앗들을 하나씩 거둬내는 운동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모든 장애유형과 장애인당사자단체의 교류와 통합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각 유형 및 단체가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을 넘어 장애인 전반의 문제에 함께 움직이기 위해서는 결집된 힘이 필요하며 하나로 움직이는 힘이 생겼을 때 장애인당사자주의가 진정으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이러한 결집된 힘을 만드는 데 DPI가 우산조직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당장 눈앞의 이익만 쫓는 당사자단체들을 설득해 이들이 장애인운동의 철학과 당자사성을 찾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중점사업은 

반시설운동의 일환으로 국토대장정과 아울러 정부와 국회에 시설제도 폐지를 위한 법개정 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설 폐지의 대안으로서 자립생활보장법안 마련을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시설이 없어지고 난 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으로, 현실적으로, 재정적으로 인프라를 갖춰야 하지 않겟습니까.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모든 장애유형의 의견과 요구를 담은 법안을 만들기 위해 법안 내용을 고치고 정리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한편 제3차 아시아태평양장애인10년을 주도해 UN장애인권리협약을 아태 국가에 알리는 일을 할 것입니다.

제3차 아태장애인10년의 화두는 UN장애인권리협약입니다. UN장애인권리협약은 세계 장애인들이 30년간 싸워 UN으로부터 장애인권리를 인정받은 세계 장애계의 ‘바이블’입니다. 이 협약은 장애인이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 생활영역에서의 권리보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태 지역의 수많은 장애인들은 권리협약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여전히 차별과 인권침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3차 아태장애인10년을 통해 아태지역 장애인들에게 이 협약을 알려내고 이들 스스로 권리를 깨닫고 그들의 정부에 권리보장을 요구하도록 할 것입니다.

19대 국회와 차기정부에 바라는 점

우선 모든 부처와 기관들의 장애인정책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상설기구를 설치해야 합니다. 최근 총선을 거치면서 장애인정책을 조정, 관리할 수 있는 대통령직속 장애인위원회의 설치가 화두로 떠오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요구하는 기구의 핵심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에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처럼 위반사항에 대해 강력한 행정조치를 할 수 있는 파워를 가지는 것입니다. 조정하는 능력만 가진 곳으로는 장애인문제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장애인정책을 만들거나 개선할 때 장애인당사자성을 가진 장애인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합니다.

교수 등 전문가집단의 참여로는 장애인정책에 제대로 된 장애인들의 삶과 요구 반영할 수 없습니다. 정부 기준에 맞는 사람들이 아닌 장애인단체에서 추천한 장애인들로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당사자들의 요구를 진정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장애인들들의 실질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실효성 없는 제도만 양산될 뿐입니다.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장애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사자성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나를 빼고는 내 문제를 논하지 말라’는 말처럼 내 문제를 스스로 나서서 풀 수 있는 의지와 철학, 실천이 있어야만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함께 거리로 나가 대국민투쟁을 합시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고, 장애인도 동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장애인을 가두지 말고 함께 살자고 외칩시다.

너무나 당연한 진리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이 사회를 조금씩 조금씩 깨부숴 나갑시다.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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