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서 일어난 어린이 성폭행 사건은 그저 참혹하단 말 외에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죽음의 문턱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피해 어린이가 밥 한 술을 못 넘기고 그저 물 한 모금에 의지하여 이 힘든 과정을 넘기고 있다니 절로 안타까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져 온다.

아침에 받아든 신문은 아동과 여성에 대한 성폭행 사건이 곳곳에서 무차별적으로 일어나고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초등학생과 여중생, 20대 여성은 물론이고 만삭이 된 임산부까지,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자신의 성적 환상을 폭력적으로 실현하는 암울한 범죄를 전하는 소식들로 가득한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아동이라는 이름으로는 언제든지 무참히 짓밟히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내팽개쳐질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어 버렸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말이다.

정부의 책임 있는 관련자들은 혹시 여론의 몰매를 맞을까 이번에도 지레 사후약방문을 처방하기 바쁜 모양새다.

판사들은 가해자들이 술을 핑계대거나 합의를 봤다고 할 경우 너무 형량을 적게 판결하지 않았는지 반성을 하면서,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대로 죗값을 물리도록 하겠다고 난리다.

경찰은 2년 만에 불심검문을 부활시켜 범죄예방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하지만, 오히려 애꿎은 인권 침해 논란만 제기하고 말 뿐이다.

말이 되는 소리든 말이 되지 않는 소리든 검찰과 경찰이 무엇이든 해결책이나 예방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의 호들갑으로 끝날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우리의 시름은 그저 깊어지고 있을 뿐이다.

가능만 하다면 자식을 키우고 가족을 염려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데 모여 대책을 논의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화학적 거세나 양형기준을 높이는 것과 같은 사후의 강력처벌을 암시함으로써 과연 지금의 일련의 사태들이 진정되고 예방될 수 있을 것인지를 말이다.

몇 만 명의 경찰이 하루 24시간 온 국민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곳곳에 CCTV를 달아 일거수일투족을 꼼짝없이 지켜보겠다고 하면 이 모든 잔인함이 끝이 날지를 말이다.

우리가 이런 것에라도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두려움이 이미 도를 넘은 것을 우리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천리금수강산에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살아왔다고 하는 우리가 오늘날 어찌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는가는 새삼 읊을 필요도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삼천리 스트레스 강산에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우리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어버린 줄 우리 자신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그러니 제발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 깊이 있고, 말이 되는 근본 예방책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피해자들이 너무도 안됐고 가해자들이 너무도 미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내 어린 자식이 그런 꼴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이 금세 전해져 숨을 못 쉴 지경이다.

하지만 제발 하지만 한 손으로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상처 난 마음을 다독이고, 또 한 손으로는 다시는 그런 천인공노할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주춧돌을 놓는데 우리 다 같이 힘을 기울이자!

이번 사건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빨리 다 같이 힘써야 할 일들이 몇 가지 보인다.

이제 더 이상은 미루거나 머뭇거릴 수 없는 일들을 더 이상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대한 더 이상 가해자들이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인간다운 교육, 성 평등하고 평화로운 문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관심과 원조가 오가는 사회안전망의 구축과 열심히 일하고 건전한 여가활동을 통해 자아실현의 장으로 나갈 수 있는 풍요로운 인간성이 구현되는 사회 만들기에 우리의 첫 번째 힘을 쏟아야 한다.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우리가 사회적 비용을 들여 사회화와 인간화의 기능을 담당하도록 한 교육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 속에서 아무 것도 주입받지 못하고 나온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도 모르고, 최소한의 인간됨의 도리도 모르는 야만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우리 곁으로 내보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나주 어린이 성폭행 범이 중졸 학력이 전부라는 점을 볼 때 학력과 상관없이 그가 공교육 현장에서 충실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을 것이란 점이 너무 쉽게 예상된다.

따라서 이 기회에 단 한 아이도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우리 교육의 중요한 가치로 다시금 우뚝 서야 할 것이며, 특히 뒤처지지 말아야 할 것은 지식만이 아니라 인간화와 사회화에서 특히 그러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기회에 우리는 우리가 어떤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짚을 일이다.

물론 대안 비판이 너무도 공허한 것임을 알기에 이것저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히는 바이다.

그보다는 아이들과 가족들과 원하는 사람들이 평화롭고 개성 넘치는 건전하고 성평등한 문화와 여가 선용의 기회들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과 내용 개발에 지금이라도 박차를 가하고, 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점을 더 강조하고 싶어 하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따뜻한 전통을 회복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그 동안 경쟁적 교육과 높은 취업관문, 해고나 실직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는 불안정한 노동 속에서 사람들은 지치고 피폐화되어 갔다.

어른들의 우울과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 역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 할 만큼 무심한 어른으로 자라야 했다.

그런 무심한 마음을 지니지 않고서는 아이들 역시 감내하지 못할 만큼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가정들이 깨어져나가는 것을 불안한 눈으로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했어야 했던 아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울분과 좌절의 깊이를 우리는 차마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가슴 아프고 화나고 슬픈 아이들을 따스하게 돌보고, 관계를 맺고, 도움을 청하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제도와 장치들을 우리 사회 곳곳에 마련해야만 한다.

그것이 가장 먼저 경험해야 하는 사회안전망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사람은 사람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뼛속 깊이 느낄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전체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헛된 이익을 쫓아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며, 사람은 남을 가르치고 돌보는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이란 점을 아주 어릴 적부터 온 몸으로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키우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없이는 우린 근본 대책을 마련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되지 않으면 결코 이 흉악한 범죄에서 조금도 안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실 이마저도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말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처지인 것은 잘 알고 있다.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의 체질변화를 요구하는 근본적 처방을 내리는 약방문이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는 이 처방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을 초조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점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 누누이 말해왔지만 이렇게 안타까운 희생들이 나오기 전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이 처방들을 이번에 우리는 받아들인 것인가 말이다.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져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듯 한순간에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고 만 저들이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또 그 어리석은 실수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평생을 떨어야 하는 어린이의 고통은 상상하기에도 숨이 막힌다.

이 모두가 우리다.

이 모두가 우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도 서글프지만 이들은 모두 우리다.

우리가 바로 그런 짓을 저지르고 또 그렇게 무참히 당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아프다.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고라도 다음의 희망을 찾기 위해 우리는 사력을 다해야 한다.

죽을 길 아니면 살 길이라는 희망을 부여안고 우리는 남은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제일 먼저 다시 한 번 인간다울 수 있도록 가르치고 보살피는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하자! 더 이상 우리가 아프지 않게, 더 이상 우리가 좌절해서 막된 짓을 저지르지 않게, 더 이상 우리가 어리석음과 무심한 잔혹함에 희생되지 않게 그렇게 우리는 서로서로를 가르치고 돌보자! 제발 좀 그러자!

성태숙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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