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이사장,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가 지난 15일 재단 설립 20주년을 맞아 좌담회를 열었다.

밀알선교단이 출연한 밀알복지재단은 장애인 전도와 복지사업, 그리고 비장애인들을 계몽하겠다는 취지로 1979년 설립됐다. 당시 이름은 한국밀알선교단. 총신대 사상 최초로 시각장애인으로서 교수가 된 이재서 박사가 씨앗을 뿌렸고, 초기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정형석 대표가 밀알복지재단으로 독립한 다음에 상임대표가 돼 오늘까지 가꿔 오고 있다.

이사회도 없이 출발한 밀알선교단은 1980년대 초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와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이사장을 만나면서 장애인 복지사업의 반열에 올랐다. 손 교수의 제안에 따라 1988년 이사회가 설립됐고, 1993년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이 세워졌다. 또 홍정길 이사장이 시무한 남서울교회와 남서울은혜교회의 지원으로 1997년에는 특수학교인 밀알학교를 개교했다.

밀알복지재단은 2000년대 들어서 노인복지관과 어린이집 등의 복지사업을 위탁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 15개국에서 17개 복지사업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는 40여 개 정도의 복지 시설이 있고, 전체 직원이 700여 명에 달할 만큼 대형 복지 재단으로 성장했다.

장애인 일자리 마련을 위한 굿윌 사업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굿윌 사업은 집에서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기부 받은 다음 장애인들이 수리·보수한 후 일반인들에게 판매하는 구조다. 수익금은 장애인에게 봉급으로 쓰인다.

밀알복지재단은  '요람에서 천국까지'라는 가치를 내걸고, 영유아를 위한 어린이집부터 시작해 12년 과정의 초, 중, 고 특수교육과 2년 과정의 직업훈련을 거쳐 직업재활시설에서 일을 하며 공동생활가정에서 독립생활을 하도록 하는 생애 주기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의 초창기부터 오늘까지 역사에 어떤 사연이 담겼나

정형석 상임대표: 밀알복지재단의 전신인 밀알선교단은 1979년 10월에 창립됐습니다. 창립자는 중도실명자 이재서 단장(현 총신대 사회복지과 교수, 세계밀알연합회 총재)입니다. 밀알은 장애인 전도, 봉사, 계몽 등 세 가지 일을 하는 기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선교단이라는 종교단체 이름으로는 정부의 보호도 받을 수 없었고, 지원도 받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법인을 만들려면 기본 자산이 필요한데, 1992년부터 1993년 3월까지 모인 기금은 8,000만 원에 그쳤습니다. 실패로 끝날 것 같았고, 모두 낙심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4월경 기부 천사 두 사람이 나타나 감정가 약 9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했습니다. 당시 손봉호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된 민병완 씨가 서울역 앞에 있는 감정가 7억원 상당의 5층짜리 빌딩을, 의사 윤영곤 선생님이 1993년 감정가 2억 원에 달하는 토지 500평을 기부했습니다.

윤 선생님은 이후에도 농지 보상금을 밀알학교가 설립될 시 건축헌금으로, 러시아 선교사로 헌신하기 전에는 6억 원 상당의 병원건물을 추가로 쾌척했다.

밀알복지재단 출연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한 지 1년 7개월 만에 약 2000명이 운동에 참여해 9200여만원의 모금액이 모였으며 공시지가 8억3000만원(시가 13억) 정도의 부동산을 기부 받았습니다.

이 재산을 기본재산으로 1993년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초기에는 장애인의 생계비, 교육비, 수술비 등을 지원하는 지원 사업을 위주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 밀알학교를 개교하게 되면서 다양한 복지시설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장애인 복지사업을 중심으로 영유아, 노인, 지역복지, 가족복지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약 40여 개의 크고 작은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0년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해외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해외 15개국에서 장애인 복지사업, 이동 진료 사업, 교육 사업, 긴급 구호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동 3000여 명을 결연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세 분이 밀알에서 하는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정 대표: 손 교수님은 밀알선교단 2대 이사장과 밀알복지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오랫동안 봉사했습니다. 홍 이사장님은 손 교수님의 후임으로 밀알선교단 3대 이사장을, 밀알복지재단 2대 이사장으로 현재 활동 중입니다.

홍정길 이사장: 회전문 인사인 셈이죠. 정 대표님은 밀알선교단 2대 단장과 밀알복지재단 창립부터 지금까지 상임이사로 있습니다. 손 교수님은 총신대에서 정 대표님의 은사입니다.

정 대표: 손 교수님과는 밀알에서 30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홍 이사장님은 밀알에서 20년 가까이 일을 했습니다. 두 분은 가치관이 비슷하고, 닮은 모습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정직하고 겸손하고 공정합니다. 밀알 사람들 모두 두 분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홍 목사님은 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이고, 손 교수님은 사회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라면, 저는 사회복지 실천가입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일을 하는 밀알은 교회와 사회의 지도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실천 현장에는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좋은 3각 구도가 형성됐다고 봅니다.

특히 많은 분에게 신뢰를 받는 두 분이 밀알의 지도자로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손 교수님은 밀알이 윤리 경영과 투명 경영을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셨고, 홍 목사님은 아가페 사랑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인들이 피땀 흘려 모은 약 250억 원의 막대한 돈을 들여 건축한 학교를 남이 만든 단체에 선뜻 기부한 교회는 아마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밀알복지재단의 상징인 밀알학교 설립 과정은

손 교수: 밀알학교의 설립 과정은 기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애초 지어질 수 없는 건물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감격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구청장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건축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건축할 수 없었습니다.

건축허가권자가 구청장에서 교육감으로 바뀌어 서울시교육청 건축허가 1호로 건축허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물리적으로 반대하자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공사방해중지가처분이라는 법적인 소송을 하게 됐습니다. 소송에 이겨서 어렵게 건축을 했습니다.

법인을 만들어도 가족끼리 하는 경우가 많다. 밀알의 경우는 어떠한가

홍 이사장: 특수학교는 남서울교회가 추진하려 했던 교육 사업이었습니다. 특수 교육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공익이사로 이사진을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손봉호 교수님이 밀알과 함께하자고 제안해서, 교회와 재단에 대한 객관적인 공익 이사회를 구성하게 됐습니다.

정신적인 지도를 받기 위해 김범일 가나안농군학교장,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 이랜드의 참여를 끌어들이기 위해 방선기 이랜드 사목을 이사로 영입했습니다.

올해부터 사회복지 법인은 외부 추천 이사 즉 공익이사를 재적 1/3 이상 선임하도록 됐습니다. 우리 법인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감사도 공인회계사와 세무사로 전문가를 영입했습니다. 이는 객관성이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것입니다.

밀알학교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손 교수: 학교를 건축할 때 지역주민의 물리적인 반대를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지역이기주의를 합법적으로 이겨 낸 첫 사례가 됐습니다. 이후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징벌할 수 있는 법조문도 추가돼 다른 장애인 복지시설이 지역사회에 들어서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오래전에는 특수학교의 시설이 형편이 없었는데, 밀알학교를 통해 특수학교 건물과 시설의 현대화에도 이바지했다고 봅니다.

장애인 시설 분야의 정부의 지원금이 20% 정도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런 점도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초창기부터 공인 회계사를 두고 스스로를 감사해 왔고,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이 점은 복지계에 모범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복지시설의 사회화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수학교나 장애인복지시설은 이용자 대부분이 장애인과 그 가족들입니다. 그래서 지역사회에서 고립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밀알학교는 남서울은혜교회 교인과 아트센터를 이용하는 수많은 지역주민이 출입하면서 스티그마(낙인)가 사라졌습니다. 언젠가 장애 아동 학부모가 '밀알학교를 드나들면서 외부인들이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서 좋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기뻤습니다.

밀알의 현재 과제와 미래 비전은 무엇인가

홍 이사장: 현재 과제는 장애인 복지의 핵심인 직업재활을 위하여 굿윌 사업을 좀 더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현재 50여 명 정도가 일을 하면서 최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생애 주기별로 접근하고 있는데, 장애 노인을 위한 공동생활 가정을 확대하고 생활시설을 마련하는 일이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해외 사업도 갑자기 실천하다 보니 좀 더 다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일은 많은데 헌신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도 문제입니다. 미래 비전은 밀알 정신으로 일할 수 있도록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손 교수: 노블리스 오빌리제. 신분이 높은 사람의 도덕적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 한국도 잘사는 나라가 됐고, 한국교회도 성장했으니, 이에 걸맞은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밀알도 올해에 처음으로 법인 예산이 100억 원이 넘었습니다. 산하 시설까지 합하면 500억 원이 넘습니다. 이제 작은 기관이 아니라 큰 기관이 된 것입니다. 커진 만큼 큰 책임이 따릅니다. 특히 해외 복지사업을 많이 늘려나갈 것입니다. 식량·의료·교육 등을 지원해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이 확보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정 대표: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해야 합니다. 일자리는 독립생활과 자립생활과 자아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장애인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 직업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하고,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선 고용과 우선 구매 등을 통해 알맞은 일자리를 개발할 것입니다. 좋은 뜻을 가진 기업들과 연계해 장애인, 노인, 다문화 가족 등 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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