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은 인생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기며 가장 빛나는 찰라다"
한국적 시간 관념으로 해석하자면 노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강조하는 연극 연출가 이기호씨. '은빛왈츠'라는 연극을 통해 노년의 에너지에 대해 전하고 싶었다는 그를 그의 연출한 연극이 진행되는 상명대아트홀 무대에서 만났다.
노릇바치는 순수 우리말로 배우라는 뜻이다. 이기호씨가 이끄는 극단 노릇바치는 최근 실버타운에 입소한 두 노인의 사랑을 그린 은빛왈츠로 중장년층 고객을 사로잡고 있다.

연극 '은빛왈츠' 연출가 이기호씨

△노인의 삶을 연극의 주제로 다루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노인의 삶을 다루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젊은이들이 세상을 편협하고 일방적으로 보는 반면, 노인들은 인생을 끌어안고 이해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가령 노인의 나이가 되면 어깨만 쳐져 있어도, 밥 먹는 모습만 보더라도 상대방의 내면을 알아차리는 직관력이 생긴다. 어쩌면 비로소 인생을 제대로 볼 시점에서 우리나라 노년들이 정년을 맞고 인생을 마감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들에게 나이에 상관없이 삶의 열정이 생길 수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은빛왈츠'는 어떤 내용인가?
가정적으로 소외돼 실버타운에 입소한 이용규 할아버지와 김분녀 할머니의 쪽빛 사랑이야기다. 포스터를 준비하면서 '황혼사랑'이라는 명칭이 거론됐는데 내가 반대했다. 왜 노년의 사랑은 꼭 황혼으로 표현해야 하나?(웃음) 그들이 실버타운 안의 물리치료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사회적 편견을 벗어버리고 주름과 상관없는 아이같은 순수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다. 관객들은 삶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얻어 갔으면 한다.

△사회복지재단 직원, 장애인, 노년층에게 티켓할인 이벤트를 진행 중이던데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은빛왈츠'는 기획 단계부터 문화적으로 소외된 분들이나 몸이 불편한 분들을 찾아가는 공연으로 만들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곳 대학로에서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내 공연의 주 관객이 될 분들에게는 할인 혜택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분들에게 권하고 싶나.
가족단위로 왔으면 좋겠다. 부부나 커플들에게도 할인혜택을 해주고 있는데 그들이 와서 노년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돌아갔으면 한다. 사랑은 젊은이들만 할 수 있다는 편견, 늙으면 그냥 고상하게 자리만 지키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얼마전 장애인들에게 무료 공연을 펼쳤다고 들었는데..
많은 수는 아니었고, 소극장을 채울 만큼의 인원을 초청해 무료 공연을 진행했다. 일반인과 섞여서 연극 관람에 불편이 있던 이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자리였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걸 배울 수 있었다. 극이 진행되던 중 밖으로 나가는 이들이 있었는데 당황하는 쪽은 오히려 연기자였고, 관람하던 다른 관객들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연극을 정숙하게 관람해야 한다는 편견, 비장애인들의 시선에 맞춰 진행하고자 했던 스텝들에게는 다시 한번 생각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끊임없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는 이기호씨는 차기작 역시 노년부부가 등장한다고 말을 아끼며 노년이 가지고 있는 지혜로움을 닮아가고 싶다고 속내를 밝혔다.

서희정 기자 hans@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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