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 관리 안내를 하고 있는 방동규씨(73세)

한때 3000여명의 사원이 일했던 사업장에서 사장까지 올랐던 방동규씨(73세). 퇴직 후 집안에만 있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고, 힘이 남아 있는 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방씨는 일용직부터 스포츠센터 코치까지 쉬지 않고 일해왔다. 하지만 어딜가나 '70세 넘은 노인'이란 꼬리표 때문에 100kg짜리 역기를 거뜬히 들어 올리는 체력에도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경복궁 내에서 안내와 관리를 맡고 있는 방동규씨는 지난해 10월부터 경복궁을 돌며, 문화재 관리와 안내 도우미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나이드니까 노인대접 받는게 참 싫더라고요. 한번은 노인복지관에서 알선해줘 경비직 면접을 보러갔는데, 면접관이 그러더라고 '여기는 5층까지 엘리베이터도 없고 다리라도 삐끗하면 크게 다친다고 아무래도 힘들겠다고' 못써주겠다는 말이지. 그래서 그냥 돌아나오면서 참 화가 납디다. 난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운동하고 체력도 자신있는데 나이만 보고 기회도 주지 않으니 말이죠"

노인 일자리가 대폭 확대된다는 정부의 방침과 예산 배정도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방씨의 경우, 복지관을 통해 취업알선까지는 순조로웠지만 현장에서 밀리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책임지는 수준은 이메일이나 전화로 취업여부를 확인하고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뿐이다. 결국 70세 이상의 고령자는 노인일자리에서 또 밀릴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때마침 방씨는 문화재청에서 70세 이상의 고령자를 뽑는 지금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고 벌써 4개월째 접어들고 있었다.
 "전문적으로 가이드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봄·가을처럼 사람이 많이 몰릴때는 하루에 만명도 다녀가는데, 그때는 일손이 딸리는 것이 사실이죠. 때에 따라서는 경복궁을 안내 하고, 위험한곳은 보수팀에 연락해 조치를 취하기도 하고, 궁 안을 훼손시키는 이들을 제재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합니다. 하루종일 궁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 한 켤레씩 양말에 구멍이 나곤 하죠."

문화재청은 오는 20일까지 시범적으로 궁이나 능 관람안내 업무를 위한 5명의 고령자 채용계획을 밝힌바 있다.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과하게 되면 방씨와 같은 업무를 맡게 되는데, 현재 궁궐지킴이, 문화유산해설사 등으로 활동중인 자원봉사자, 해당 궁·능 근무경험자 및 교사 경력 소지자는 우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내가 만약 심사관이라면 지식이 풍부하고 경력 있는 사람보다는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일자리가 꼭 필요한 사람들을 우선순위로 뽑겠습니다. 생활이 넉넉한 사람들은 굳이 일까지 하면서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 일자리는 제공돼야 하죠"

처음 방씨는 경복궁에서 근무하며 자신이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을 갖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이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처리하며문화재를 관리하는 부분에서 노인으로서의 지혜가 빛을 발할 때 무엇보다 보람됐다고 전했다.
"한번은 아이가 궁 안에 있는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며 놀고 있었어요. 경복궁은 놀러오는 곳이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유적들은 보물로 지정돼 있고, 가꾸고 보존해 가며 공부를 하고 가는 곳이죠. 그래서 아이에게 다가가 나무를 왜 흔들면 안되는지에 대해 차근히 설명해 준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들도 할아버지뻘 되는 내가 타이르니까 별다른 말 없이 순순히 응해주곤 합니다"

젊은이들은 사리판단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유지하는 면에서는 우월하나 문제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에서는 인생을 오래 산 노인들보다 분명 뒤쳐져 있다. 사람을 만나고 상대하고 가끔은 엄한 할아버지 역할을 하며 궁을 돌보는 방동규씨는 체력이 뒷받침 되는 한 늘 경복궁에서 어제와 같은 오늘로 사람들을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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