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규 상도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최근 우리사회의 문화계 화두는 스크린쿼터이다.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던 스크린쿼터 파동이 정부의 축소발표라는 전면적인 상황으로 급변하면서 영화 팬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명동거리에서 박찬욱, 안성기의 삭발을 또 보게 될 것이다. 좀더 냉철하게 스크린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스크린쿼터는 GATT는 물론 그 후신인 WTO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문화적 예외 조항’으로 볼 때 현재로서는 어떤 ‘경재논리’로도 축소나 폐지를 거론할 이유가 없다. 말하자면 문제가 전혀 안 되는 일이 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영화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전례 없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해결의 과정은 민족문화와 예술을 지키기 위한 자국 문화예술 발전이라는 논리와 스크린쿼터의 문제는 단순히 영화인들의 단순한 엄살이나 밥그릇 챙기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를 경제논리에 종속시킬 수 없다는 원칙론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강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복지사로서 편치 않은 속내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은 스크린쿼터 싸움에서 문화를 경제논리에 종속시킬 수 없다는 영화인들이, 같은 시기에 벌어지고 있는 생존의 문제로서 미국 쌀에 대항하기 위해 농민들이 거리에서, 고공에서, 홍콩에서 싸우고 있을 때 어떠한 태도를 견지했는가? 다시 말해 할리우드 영화를 ‘독점자본’으로 해석하는 영화인들이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이 진정(?)한 독점자본과 싸울 때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구제금융의 보신처방이 끝난 이후에 ‘경쟁력’을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이 해체되고,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이 땅의 사람들이 왜 영화인들의 이러한 주장에는 ‘경쟁력’을 유보하는 아량을 베푸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스크린쿼터 파동의 과정 속에서 영화인들의 자기논리가 점차 정교해짐에도 불구하고, 별로 사회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사회적 혜택은 공정한지 의심스럽다. 

물론 이글은 스크린쿼터 문제나 영화인들의 사회의식의 결여나 밥그릇 챙기기를 비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필자는 앞선 주장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의 독점자본이 이미지 길들이기를 통한 세계화의 첨병 노릇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크린쿼터는 사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복지사들이 스크린쿼터의 과정과 농업협상의 과정에서 생성된 사회성과 정치성에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와 농업협상의 공통점을 바라보자면, 개별집단의 이해와 욕구에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암묵적 합의에 의한 공공의 사회적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문제, 쌀의 문제는 단순히 영화인들의 밥그릇이나 농민들의 생존 문제 하나로만 귀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문화와 식(食)에 대한 지킴에 있어 국민적 공감과 합의를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화인들의 밥그릇 지키기나 농업인의 거친 투쟁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공감과 정서적 동의를 구할 수 있게 된다. 

현실적 평형감각을 잃지 않는 수준에서 생각해보면 복지권이야 말로 영화나 쌀 문제만큼 국민적 공감과 정서적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복지권의 주장은 영화인의 문화적 권리 사수나 우리 쌀을 먹자는 주장과 최소한 동일하거나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사회복지사들이 국민을 설득하고 계몽하며 알리는 노력을 좀 더 했다면 최소 스크린쿼터 문제나 농업협상의 문제만큼 국민적 관심 혹은 환기와 공감대 형성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랬듯이 현장에는 제도와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비판적 대안은 부재하다. 항상 목소리 내는 사람들만 시끄럽고 힘들어했으나 일부 사회복지사들은 특정사안이 생길 때 마다 침묵하거나 결과에 편승해 묻어가는, 소위 무임승차의 선택적 행운을 가져가는 것이 보통의 모습이었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90년대 이후 사회복지서비스가 급격히 확장되는 과정에서 중앙집중식 관료제적 전달구조가 동원되면서 지역의 사회복지사들이 세분화된 서비스 실행의 전문가(specialist)로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전문성의 함정(trap)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과거가 그랬다면 현재는 사회복지서비스의 지방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의 지방화는 시대적인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가 이제까지 홀대해 왔던 지역사회(community)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적용되기를 요구하며, 주민참여와 임파워먼트는 부인될 수 없는 코드가 된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참여와 임파워먼트 전략을 활용하여 사회복지적 사명을 실현하려는 전문직 집단은 ‘정치적 과정’에 대한 이해와 실천 능력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밀레니엄 이후에 사회복지계는 과거 어느 시기보다 많은 움직임이 있었다. 예컨데 예산현실화와 종사자 처우개선, 사회복지관 평가개선 운동, 비전문가 퇴진운동 등과 같은 현실 문제에 기인한 사회복지운동들은 그나마 운동주체들의 적극적 참여가 있었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왜 그런 것인가? 앞서 언급한 스크린쿼터 문제나 농업협상 등은 동기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과거에서 현재까지 과정 속에서 전체사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 한 목소리를 냈지만 우리의 사회복지운동은 사실상 그러하지 못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별화 하는 것은 사회복지의 중요한 가치이고 실천기술이지만 그것이 특정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 우선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제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회복지운동은 단순한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기본권과 복지권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과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5월! 그날은 다시 올 것이다. 이제까지 정치적 분야에서는 한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사회복지계가 어떤 관점과 한 방향을 바라보아야 할지 지금부터라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회복지사들의 자기권리찾기에서 시작된 사회복지운동은 시민의 기본권과 복지권의 회복을 위한 구체적 제도 정책개선 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를 기회로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 앞에 겸허한 자세를 유지하며 선한 양심에 호소하는 10만 사회복지사이길 ‘2006년 5월’은 기다린다.

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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