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따로 설치 따로

최근 장애인들의 이동권보장과 원활한 사회참여를 위해 ‘지하철 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전철이 장애인도 전철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배제한 채 비장애인들 위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거의 모든 전철역은 장애인 및 노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리프트, 장애인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긴 하나 실제로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불편하지 않다고 느낄 만큼의 장애인편의시설이 제대로 설치돼 있는 곳은 드물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년 동안 지하철 내에서 장애인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그 사고들 중 하나로 지난 달 18일 서울지하철 1호선 대방역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전철을 타려는 도중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단차(10cm) 때문에 휠체어가 뒤로 넘어가 입원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아울러 성신여대입구역에서는 시각장애인1급 중학생이 전철을 타려는 중 승강장과 전철 사이의 간격 때문에 다리가 빠지는 사고도 있었다.

이에 장애인계는 계속되는 장애인사고 재발방지를 위해 지하철 내에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해 달라 요구하고 있지만 새로 지어지는 전철역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교통시설의 승강장에 이르는 개찰구 중 적어도 하나는 장애인등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너비 등을 고려해 편리한 구조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층수가 2층 이상인 교통시설에는 장애인등이 주출입구로부터 대합실 및 승강장이 있는 층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장애인용 승강기,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 휠체어리프트 또는 경사로를 1대 또는 1곳 이상 설치해야 한다.

교통시설의 승강장은 장애인 등이 안전하게 승·하자 할 수 있도록 기울기, 바닥의 재질 및 마감·차량과의 간격 등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법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지하철 환경은 장애인들에게 빨리 통과하고픈 가시밭길일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지하철역 모습은 승강장과 전철사이의 넓은 간격과 단차를 덮어줄 안전 발판도 마련돼 있지 않고 장애인 리프트나 엘리베이터도 고장나기일수다.

또 한번 고장 나면 장애인들은 몇 시간이고 다른 이동 통로 없이 그 자리에서 리프트가 다시 작동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장애인화장실의 세면대나 비상호출기버튼, 휴지걸이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위치해 있고 스크린도어가 아직까지 설치돼 있지 않은 곳도 많다.

이원교 성북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지난 달 28일 ‘대방역 장애인사고 철도공사 규탄 기자회견’을 통해 “왜 장애인들은 지하철 한번 이용하는데 목숨까지 걸며 타야하고 몇 시간이고 시간을 허비하는 게 일상이 돼야 하는가. 장애인도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장애인도 두려움 없이 외출하고 안전하게 사회에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지하철 중 장애인편의시설이 잘 설치돼 있는 곳 중 하나는 서울지하철 7호선 개통구간이다.

7호선 개통구간은 부평구청역부터 온수역까지의 구간으로 지난해 9월 연장됐다.

이 구간의 장애인편의시설을 점검한 결과 장애인편의시설이 대체적으로 잘 설치돼 있어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기존 역사인 온수역을 제외하고 모든 구간의 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 돼 있어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이용객들이 추락 사고에 안전할 수 있었고 중증장애인들과 노인들을 배려한 엘리베이터가 모두 설치돼 있어 이동이 불편한 이용객이 다른 층을 이용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또 장애인 화장실도 남녀로 구분 설치, 출입문은 지체장애인 등 손이 불편한 이용객들을 위해 터치식 자동문으로 설치돼 있었다.

아울러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설치된 음성유도기의 작동 상태가 모두 양호했으며 점자표지판 및 점자 블록도 모두 양호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경우 세면대나 휴지 걸이 등 역마다 다른 위치로 혼란을 느낄 수 있어 지하철 내 편의시설 설치의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장애인도 시민이다. 예산 부족의 문제로 장애인편의시설 설치를 미루고 있는 지하철의 모습이 하루빨리 변화돼야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다르게 생각해 온 ‘편견’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발판이 될 것이다.

또한 장애인들이 차별적인 장애물 없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자신이 가진 능력대로 사회에 참여하고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통해 더욱 발전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참 선진사회의 모습이지 않을까?

장애인개발원 운영 ‘이룸센터’ 정작 장애인사고에 둔감

보건복지부가 매입하고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운영하는 ‘이룸센터’가 정작 이룸센터 내에서 일어나는 장애인사고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이룸센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애인 이용 시설 중 하나이다.

연간 2만5000여명이 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장애계의 다양한 토론회 및 학술 대회 등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룸센터 내에는 장애인을 위한 여분의 전동휠체어 및 전동스쿠터 등이 1대도 비치돼 있지 않다.

또 바닥재질까지 대리석으로 지어져 있어 비가 오거나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은 미끄러지기 쉽다. 더구나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그 미끄러움으로 인한 사고가 더 빈번하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연대에 따르면 정립회관 엘리베이터에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을 위한 모니터가 설치돼 엘리베이터에 누가 타는지, 누가 내리는지 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휠체어 이용 시 엘리베이터에서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들과 출입하는 사람들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허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애인 이용건물 이룸센터에는 이런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아 지난 4월 4일 이룸센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휠체어 이용 장애인과 승차하려는 장애인이 서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은 4월 19일 성명을 통해 “엘리베이터에 내·외부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모니터가 있었다면, 혹은 바닥이 대리석이 아니라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재질이었다면, 그것도 아니면 전동휠체어가 단 1대만이라도 비치돼 있었다면 이번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대리석 바닥 때문에 미끄러움으로 인한 사고가 계속 발생되고 여분의 전동휠체어를 1대만이라도 마련해달라는 요구가 계속 제기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룸센터는 예산을 핑계로 전혀 미동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에버랜드 같은 민간시설도 여분의 전동휠체어를 준비해 놓고 있는데 정작 장애인들의 대표 이용시설 이룸센터는 전동휠체어 등이 단 한 대도 없으며 ‘장애물없는생활환경인증제도’를 주관하고 있는 장애인개발원의 운영 건물 이룸센터는 정작 인증을 받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룸센터에 따르면 이룸센터의 지난해 총 수입액은 38억 원이다.

2011년 이월금 약 10억 원을 제한다고 하더라도 총 수입액이 28억 원을 넘는다.

또 2008년부터 이룸센터가 건물보수 공사에 쏟아 부은 돈은 50억 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룸센터의 편의시설들은 장애의 유형, 특성, 정도 등에 따른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이룸센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이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물이 지어져 장애인들이 밖에 나오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하고 실내에서만 활동하도록 조성하고 있다.

시각장애인편의증진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비장애인 및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기관들 대부분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규정을 지키고 있지 않았다.

조사결과 인천국제공항은 음향신호기, 점자블록, 점자표지판 등이 지침에 맞게 설치돼 있지 않아 장애들의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았고 서울버스터미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울러 음성신호장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으며 점자안내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진료실이 없었으며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기 위한 점자블록의 재질도 스텐리벳돌기로 돼 있어 미끄럼을 유발했다.

서울아산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주위에 보행 장애물이 있어 시각장애인의 경우 보행 시 사고유발성이 높았고 출입구까지 설치된 점자블록은 폐문으로 유도하고 있어 실제로 이 길을 시각장애인이 보행할 경우 혼란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서울대학교병원은 서울아산병원처럼 외부에서 주출입구까지 점자블록이 폐문으로 유도하고 있었고 점자안내판과 음성유도기도 전혀 설치 돼 있지 않았다.

승강기 조작 및 계단 전면에도 점형블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점자안내판은 구비하고 있었으나 상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닌 격리된 곳에 있었으며 국민연금공단도 점자블록이 상시 사용하는 문이 아닌 고정문으로 유도 설치돼 있었다.

점자블록 또한 정규격이 아닌 이형블록으로 설치돼 있어 실질적인 기능성이 부족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출입구 접근로까지 보행도로와 차도가 구분돼 있지 않았으며 점자안내판의 점자표기방식이 부식형으로 구성돼 촉지에 어려움이 있었다.

장애인편의증진센터 관계자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편의시설 모니터링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며 이러한 제도적 장치에 각 장애유형별 편의시설 전문가의 의견과 경험을 반영해 그 기능이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발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유리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