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노인학대예방센터 유선애 소장

 진실과 거짓!!

언젠가 학대피해어르신과 그 부양자녀들과 각기 상담을 마친 후 떠오른 말입니다.

피해어르신, 부양자녀모두 눈물을 지으며 처절한 심정을 토로했지만 너무나 다르게 묘사된 생활사였습니다. 단순하게 양측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를 믿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아쉬움이 거듭됩니다. 물론 차분하게 하나씩 되짚어가면 누구의 말이 진실 된 것인지는 곧 알 수 있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갈등상황으로 십수 년을 함께 살아왔으니 서로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노인학대 피해어르신의 연령을 살펴보면 70대 중반에서 80대 중반까지 어르신이 약 47%를 차지합니다. 이 연령층의 어르신들, 현대사회의 우리네 부모님들은 참 힘겹게 살아오셨습니다.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그 엄청난 혼란기 속에서도 가족만을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쓰신 것은 우리들 모두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가슴 가득 짓누르던 책임감, 자식만은 잘 키워야 이 고생을 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절절한 책임의식으로 오늘날까지 버티어 오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히 부모인 “나”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가족, 자식.”이 삶의 전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겹게 살아온 삶의 전투에서 물러난 지금, 그분들은 늘 가족의 밖에 있는 존재 서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일가를 이룬 자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무언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지는 소외감, 험한 세상 이리 저기 부대끼면서도 지켜내 온 가족이기에 때로는 더 서운하고 더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십니다.

설령, 부모님보다 내 아내, 내 남편과 내 자녀들을 먼저 돌보아야 한다는 부양자녀들의 외침을 들으면서도 한숨만 지을 수밖에 없는 어르신들의 무기력한 현실입니다. 그분들은 검버섯 핀 얼굴에 눈물을 글썽이며 조금씩 가족들에게서 멀어질 준비를 하십니다.

그렇다고 우리사회에 '효(孝)'에 대한 의식은 사라졌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나이가 든 부모가 젊었던 시대와 요즈음은 아예 삶의 시각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어르신의 마음을, 어르신들은 자녀들이 호소하는 일상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자신이 이제는 가족과 자식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부양자녀들은 적절하게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부양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노인학대예방센터에서 사례를 접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처럼 갈수록 늘어나는 노인 문제는 특정계층이나 집단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가족들에게 노인문제는 이미 현재진행형입니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지금은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한번은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바쁜 부양자녀들(노인학대 가해자 연령층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까지가 약 55%)에게,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부담을 지우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노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곧 자기의 미래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렇다면 노인복지에 종사하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로 우리를 찾아오거나 도움을 청하는 노인학대 피해자들이나 부양자녀들에 대해서 가족의 문제이므로, 어디까지 진실 인줄 모르겠다는 이유로 더 이상 타협과 이해의 여지가 없다고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은 아닌지,...

 우리들도 언젠가는 곧 노인이 되리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가족이라는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족만의 문제이지만 관련전문가들의 작은 역할로 가족이라는 소중한 관계들이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인문제 특히 노인학대문제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고민하여 더 나은 대책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현장의 전문가들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정책적 배려가 실현될 것입니다.

이 시간 누군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들, 우리의 대상자들이 신문지상 어느 구석을 차지하듯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더 이상 접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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