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설왕설래를 지켜보는 지역아동센터의 심정은 타들어만 간다. 해마다 예산 철이 되면 국회 문턱을 발이 닳도록 돌아다녀보지만 지역아동센터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어마어마한 이슈들이 우리를 가로막곤 했는데, 올해는 무상보육 예산이 그런 역할을 하겠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기 때문이다.

벌써 지역아동센터와 깊이 관련이 있는 어떤 현장의 내년도 예산은 거의 동결수준이라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고 있어 더욱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보육예산이 공룡처럼 어마어마하게 커서 다른 예산들을 있는 대로 빨아들이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럴 듯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공연히 무상보육을 탓할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동안 아동예산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너무 적었던 탓이 크고, 그런 적은 예산에서 무상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려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예산구조를 조금만 살펴보면 거기에는 나름의 답답함이 숨겨져 있어 우리의 심정을 복잡하게만 한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는 예산을 정책적으로 일종의 전략적 활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특히 업-다운(up-down) 개념을 도입한 바 있다. 이는 쉬운 말로 보자면 전체 파이는 정해져 있어서 한 쪽 예산이 늘어나면 다른 쪽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폐쇄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이쪽이 살자면 저쪽의 몫을 빼앗아 와야 하는 구조라서, 그야말로 쪽지 예산이나 형님 예산처럼 특정인이 특정한 권력을 가지고 무리하게 편성하는 예산이 아닌 합리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거쳐 편성되는 예산은 절대 갑자기 쑥 늘어나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 동안 지역아동센터가 예산을 늘려온 과정을 생각해보면 새삼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현장의 희생과 헌신 혹은 피와 땀이 예산으로 변해 온 과정이나 다름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 예산규모가 가파르게 늘어나긴 했지만 그에 따른 지역아동센터의 시설 수는 더더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결국 예산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센터에 돌아오는 실질적인 보조금의 증가는 정말 미미하기 그지없는 수준에 그치고 마는 것이 해마다의 형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 그 동안처럼 몇 십 만원 늘어나는 것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벌어지고 있어 올해는 더더욱 예산의 증가가 절실하기만 한데, 무상보육이라는 공룡을 만나서 우리의 소망이 어찌 될 것인지가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서너 가지 주요한 일을 꼽자면 첫째, 복지부가 지침을 편성하여 24개월을 자부담으로 운영한 신규센터들에게 운영비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 24개월을 눈물과 고단함으로 시간이 가기만을 고대하며 아이들을 위해서만 집중해온 신규센터들이 반드시 지원을 받아야 하는 시점이다.

둘째는 지역아동센터 종사자 특히 센터장 자격기준 등을 상향하여 일부 지역에서는 종사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버렸다. 더욱이 지역아동센터에 사례관리업무를 도입하여 종사자들의 업무 부담은 이중, 삼중으로 높아만 가고 있으니 더 이상 종사자들의 처우개선을 미룰 수가 없는 시점이다.

이미 많은 수의 종사자들이 차라리 이럴 바에는 아동복지교사를 하는 편이 더 낫겠다며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부러워하는 역전된 현상이 지역아동센터에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종사자들의 처우를 최소한으로나마 보장하지 않으면 지역아동센터 현장은 종사자들을 구하지 못해서 폐쇄하는 경우가 속출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은 더 이상 전세가 없이 월세로 모두 전환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제대로 된 운영비의 인상도 없고, 시설지원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현재와 같이 시설에 대한 부담을 운영자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현재의 지역아동센터는 종사자와 시설이 두 개의 약한 고리가 되어 아동 돌봄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상황을 지역아동센터들은 명확히 인식하고 이에 대해 한마음으로 대응할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다.

해마다 ‘올해는 아무 걱정없습니다’하고 말할 수 있었던 때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올해는 정말 염려스럽습니다’란 말 외에 다른 말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부 현장에서는 전지협이 괜히 현장을 들쑤시려고 연기를 피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나 전혀 그럴 의도는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올해가 염려스러운 것은 보육예산은 우리와 한 통속의 아동예산으로 분류가 되고, 그에 따라 아동예산은 이미 엄청나게 증가하였다는 잘못된 인식을 기재부나 국회가 갖기 너무 쉬운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위에서 세가지 우리의 당면과제도 이야기를 했지만 이 역시 올해만으로 국한된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들은 솥 안에 개구리를 넣어놓고 조금씩 조금씩 온도를 높여 개구리가 제가 타 죽는 순간이 올 때까지는 저도 모르게 그런 악조건에 적응하고 살아보려고 헛된 발버둥을 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들이 우리에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절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절대 헛된 위기의식을 심어주려고 하거나 공연한 염려를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입과 귀와 눈을 막고 있는 기재부도 힘겹고 말로 하는 약속만 거창할 때가 많은 국회도 어려운데 우린 받지도 못했는데 보육만이 아동예산의 명분으로 엄청난 예산을 따내서 다른 아동예산들이 찍 소리를 할 수 없는 처지에까지 놓이게 되는 삼박자가 골고루 갖추어지니 올해는 정말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 같고 물 같고 공기 같은 예산이 없다면 우리는 어찌 해볼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지역아동센터 현장들은 올 해 예산 편성과정에 좀 더 각별하고 성의 있는 관심을 가져주어야 할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아동예산 속에서 지역아동센터 예산이라고 하는 묻혀진 예산을 찾아내고 제 몫을 온전히 찾아올 수 있으려면 훨씬 더 피나는 노력과 관심과 열정이 필요하다.

우리 앞에 더욱 힘든 길이 있음을 명심하고 좀 더 강단 있게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할 것 같다. 지역아동센터의 예산을 무상보육예산이라고 하는 거대 공룡 밑에 깔려있는 것을 제대로 끄집어내어 온전히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전체 현장의 합심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길이다.

2013년 9월 10일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

김인수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