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대학교 사회복지학 유동철 교수

장애인들이 온 몸을 체인으로 감고 ‘버스 타기 운동’을 하다가 전경들에게 끌려가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던 광경을 TV화면에서 구경한 일이 있을 것이다. 명동성당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인간다운 삶을 외치며 겨울을 보내던 이주노동자들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였는지 장애인,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가 시행되었고,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기본법 또한 제정될 전망이다.

장애인과 외국인노동자 등 소수자에 대한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장애인과 관련된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연구를 돌아보면 뚜렷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장애인을 어떻게 재활시킬 것인지, 체계적으로 고용을 관리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어떻게 소득보장을 해 줄 것인지 등의 행정적, 제도적 논제에 철저하게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수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바라보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사회적 논제에 천착하고 있는 연구가 드물다는 것이다.
여유를 가지고 이들의 삶을 지긋이 한번 들여다 보자. 노동, 의료, 소득, 여가, 가족생활 등 생활상의 모든 영역에서 수많은 문제에 봉착해 있음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다.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들의 문제는 관찰자의 눈앞에 그대로 불쑥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들은 말한다. 문제는 ‘사회적 차별’이라고. 가령 이런 모습들도 있다. 소위 3D업종의 경우 노동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지만 한국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 ‘외국인들 때문에 한국인들이 실직에 시달리고 빚을 지게 된다’고 말이다. 인터넷을 항해하다 보면 쉽게 이런 반응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것은 헌법상으로 보장된 개인의 권리가 그들에게는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것은 매우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특정 분야의 제도개선을 통해서 해결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들의 문제는 총체성의 관점에서 그들의 주체적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인권이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고 학계는 침묵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국가발전 모델이 되어왔다. 국가별 지향점이 다소 다르긴 했지만 시민들의 기본적 생활수준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해야 한다는 데는 세계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서구 국가들에서는 이와 같은 국가발전 혹은 사회발전의 목표하에 복지국가의 양적, 질적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러한 복지국가의 발전은 특정한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의 논지는 복지국가 성과에 대한 그간의 평가들은 사회적 동질성을 전제로 한 극히 일면적 평가에 불과하다는 것, 곧 전형이 되는 특정 집단을 기준으로 한 성과 평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총체적 평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주로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제기된 것이나, 여타의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괄목할만한 복지국가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특정집단은 이러한 흐름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돼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를 확장하면 시민권이라는 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마샬은 시민권이 진화되어 가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영국의 경우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공민권(civil rights)이 확립되었고,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 참정권(political rights)이 확립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사회권(social rights)은 20세기 중반에 형성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시민권 개념은 다수를 위한 시민권에 불과했다. 마샬이 주목한 시민권 확장의 역사도 결국은 그 사회의 다수를 위한 시민권 확장의 역사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수 집단은 시민권의 영역에서 사회적 배제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와 같은 소수의 배제는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켰다. 20세기 중반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여성 운동, 인종 운동, 장애 운동 등은 이러한 갈등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시민권은 다시 규정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시민권은 다수 집단이 사회에 통합될 권리를 넘어서 특정한 소수 집단이 사회 속에 통합되는 척도로 언급되고 있다. 리스트(Lister)에 따르면 이제는 계급, 인종, 성별, 연령, 장애 또는 고용 상태를 불문하고 모두를 위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인권 개념을 설정해야 할 시기이다.

제도와 행정을 먼저 고민하면 소수자 개인의 삶의 총체성을 보지 못할 위험이 높다. 인권이란 한 개인의 총체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권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도 지금까지 보류되어 왔던 소수자의 인권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소외된 그들의 시선으로 총체성을 구성하고자 노력할 때, 코리안 드림의 마지막 여정이 차가운 콘크리트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재활의 꿈이 사회적 장벽에 막혀 질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진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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