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전철 승강장에서 추락해 중상을 입은 시각장애인이 한국철도공사 측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받는다.

지난 2012년 9월 14일 경기도 양주시 덕정역 승강장에서 시각장애 1급인 김모 씨는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에 따라 반대편 선로의 열차를 자신이 탈 열차로 오인해 발을 헛디뎌 선로로 추락했다.

사고 직후 김 씨는 승강장 밑 안전지대로 굴러 들어갔고 역으로 진입하던 인천행 열차는 전방에 김 씨를 발견하고 정차해 2차 충돌 사고는 피했다.

당시 덕정역은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정차한 열차의 행선지 및 출입문 개방을 안내하는 안내방송도 안전요원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역은 김 씨의 사고가 발생하기 3개월 전 시각장애인 2명이 동시에 추락해 그 중 한 명이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덕정역 추락사고 당시 CCTV 영상캡처

한국철도공사 측은 “이 사건은 전적으로 원고의 자기안전 부주의에 의한 것”이라며 청구의 기각을 요청했고 1심은 피고의 손을 들어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 김 씨를 원고로 해 한국철도공사상대로 항소심을 진행했다.

지난 4월 29일 서울중앙지법 제3민사부는 판결에서 ▲덕정역의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지 않은 점 ▲시각장애인은 열차의 도착 소음만으로 어느 선로에 열차가 도착했는지 알지 못하는 점 ▲덕정역은 당시 승강장과 반대쪽 승강장에 비슷한 시각에 인천행 열차와 소요산행 열차가 도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점 ▲몇 달 전 시각장애인의 추락사고가 있었던 점 등을 꼽으며 피고는 안전요원 상시 배치 및 안내방송 의무 등이 있다고 보았다.

또 “사건발생 후 현장 출동 시 피고 측 직원과 공익근무요원은 들 것을 지참하지 않고 원고를 부축해 50m 가량을 걷게 한 방식은 원고에 대해 적절한 응급조치가 아니었다”면서 “피고 측은 위와 같은 주의 의무를 위반했음으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열차가 도착한 것으로 착각하고 열차의 도착 여부를 지팡이 등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선로 쪽으로 발을 내딛은 원고의 과실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원고의 책임비율은 70%로 인정하고 피고의 책임을 전체 손해액의 30%로 제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아직까지 신체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것에 좌절감과 공포감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사고 발생의 경위와 부상의 정도, 원고의 연령 등 사정을 종합해 원고의 위자료 액수를 600만원으로 정했다.

한편 장애계는 2003년 5월 송정역, 2004년 11월 이수역, 2008년 7월 제물포역, 2010년 8월 주안역, 2012년 12월 부전역에서 시각장애인이 선로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 등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에 현실적인 제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수경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