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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보훈의 사각지대서 신음하는 ‘소년지원병’
심재원 기자 | 승인 2006.06.07 09:58

6월은 보훈의 달이다.

우리는 걸프전이나 이라크전 등 전쟁을 벌이는 미국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같은 전쟁서 미국이 더욱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일면은 아마도 자국의 군인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작전을 펼치는 모습에서 일 것이다.

미국의 이같은 모습은 국민들을 비롯해 직접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에게 나라가 결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과 함께 충성심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6·25 전쟁당시 병역의 의무가 없으면서도 - 당시 18세 이상 동원령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 구국의 일념 하나만으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갔던 나이 14세에서 17세 이내의 소년지원병들에 대한 국가유공자 대우의 당위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은 나라의 운명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자진 입대하여 단 3일 혹은 1주일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내에 총 쏘는 요령만을 터득한 채 결사적인 낙동강 방어전투에 나섰고, 그 결과 총 3000여명의 참전용사들 중 82%인 2464명이라는 대다수의 인원이 장렬히 전사하는 비운을 맞은 호국의 어린용사들이었다.

군번도 계급도 없이 전선으로 달려간 소년지원병들로서는 대부분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바로 전선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그 희생은 클 수밖에 없었다. 

부산을 마지막 보루로 전쟁을 벌이고 있던 당시 이들의 참전은 분명 정규군들에게 큰 힘을 심어 주었을 것이다. 그 후 소년지원병들은 반격 작전시에는 한․중 국경선까지 진출했다가 철수했고, 이들의 대부분은 현역으로 전환돼 6·25전쟁 종료까지 각종 전투에 참가했다.

그런 그들을 나라와 국민이 버렸다.

소년지원병들이 전쟁에 참가할 당시 국가로서는 한 사람이라도 총을 쏠 수 있는 사람이 아쉬웠던 시기였고, 그들의 참가가 국가로서는 고맙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 우리 국토 어디에서도 장렬히 전사해 간 6·25 참전 소년지원병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탑 하나 찾아볼 수 없었으며, 국가유공자의 명단에서도 그들을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들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들의 충절을 잊고 살고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있지도 않았을지 모를 이 나라를 살고 있으면서도.

이제 많은 이들이 그들의 뜻을 기릴수 있는 단체의 설립과 그들의 명예를 회복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미 지난 과거의 일로만 치부하고 있는 듯하다.

조상의 얼을 이어 받아 살아가자고 강조하는 이 땅에서 선배들의 업적을 돈 때문에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보훈의 달 6월. 지금도 많은 이들이 동료가 옆에서 쓰러져 가는 처참한 모습을 보며 지켜온 나라로부터 자신들의 충정을 인정받지 못한 채 호국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다.

한국은 국군을 외국에 파견할 정도로 세계 속에서 인정받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그리고 우리 정부는 호국영령들에게 부끄러운 나라요.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그들을 가슴으로 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심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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