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0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정규직 전환 약속을 믿고 성희롱을 견디다 계약만료로 해고된지 한 달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7일 A 경제단체에서 단기계약으로 2년간 근무한 권 씨는 계약기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상사의 말을 믿었지만 이사장 딸이 권 씨가 일하던 자리에 채용되면서 계약만료로 해고됐다고 밝혔다.

특히 권 씨가 그간 당한 성희롱 피해사실을 알린 것과 관련해 보복성 해고가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권 씨는 대학을 조기 졸업한 뒤 2년 전 A 경제단체에 입사해 중소기업 CEO들의 교육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며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간부들에게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권 씨는 담당 업무인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중소기업 대표로부터 상습적인 성추행과 스토킹을 당했다는 사실이 권 씨의 이메일을 통해 확인됐다.

교육 프로그램이 끝난 뒤 진행된 회식 자리에서 아버지 뻘 되는 기업인이 몸을 더듬거나 입에 담기도 힘든 성희롱 발언을 수시로 해서 치욕스러웠다는 내용이다.

권 씨는 이같은 사실을 상사에게 이메일을 통해 알렸지만 달라진 조치는 없었고, 결국 2년 계약이 만료된 지난 8월 말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는 해고된 지 한 달만인 지난달 26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여성노동자회의 상담사례에 따르면 KBS 촬영보조로 근무한 파견노동자 A 씨는 올해 초 정규직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방송국 측에 가해자의 공개사과와 인사조치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방송국 측은 1년 단위로 계약하고 2년까지 재계약을 하는 관행을 깨고 A 씨에게 재계약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방송국은 파견업체에게도 업체에서 파견된 여성으로 피해가 있어 파견업체와도 계약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해 피해자들에게 이중 압박이 가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을 살펴보면 사업주는 성희롱과 관련해 피해주장을 제기한 노동자에게 해고 등 불이익한 조치를 해서는 안된다.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의 벌금이 처하도록 명시됐다.

여성노동자회 관계자는 “올해 1~8월 상담사례 총 1964건 중 성희롱 상담은 273건으로 13.9% 비율을 차지했다. 2013년 성희롱 상담이 236건으로 전체 상담 8.9%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성희롱 상담이 급증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직장내 성희롱 관련 법제도를 개선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보호조치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직장 내 성희롱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외국에서 제도화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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