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른다섯 번째를 맞은 장애인의 날이다. 정부와 대부분의 지자체는 이 날을 기념한다며 장애인들을 체육관에 모아놓고 시혜와 동정으로 얼룩진 행사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 모인 장애인들은 대통령이나 각 지자체의 장의 ‘영혼 없는’ 연설을 들은 후 초청가수의 노래를 듣고 행사본부에서 나눠주는 동일한 양질의 도시락을 먹고서는 장애인의 날 행사를 등지고 365일 매일 매일의 차별 속에 신음하기 위해 ‘장애인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장애인의 날과 장애인의 일상은 정확히 모순된 지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이 행사에서 수여되는 장애극복상의 ‘명예스러움’은 우리의 일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경쟁과 효율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그것이 곧 윤리라고 가르치는 자본주의 대한민국이 장애인의 몸과 정신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낙인찍어 배제했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정언명령의 칼을 들이대며 복지수급을 축소시키는 일을 저지르는 한편 일 좀 하라고 하면서도 학령기의 정규교육에서든 고등교육이나 취업을 위한 각종 교육에서든 높은 진입장벽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17대 대선에서 후보 한명이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낙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태아가 장애인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낙태를 고려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자가 당선인증을 받아 안는 모습을 우리는 넋을 놓은 채 바라봐야 했다. 비장애인의 몸을 ‘정상’이라 전제하고, 인간의 존엄이 경쟁과 효율에 굴종하기를 강요받는 질서가 유지되는 한 ‘장애인의 날’은 없다.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퇴소한 언니와 함께 살다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A씨.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아이와 함께 이승을 떠난 엄마 B씨. 이들 사건에 대해서 언론은 복지제도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다며 관청을 나무랐고 시민이라는 우리들은 당사자들의 삶에 대한 의지박약을 탓했다. 그 후 네 달. 그 죽음들은 우리 일상에서 잊혀졌다. 장애인이 되는 순간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은 나락으로 내몰려 더 이상의 희망을 갖기 어려워진다.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함으로써 얻은 소득으로 유지되는 삶만이 진실된 삶이라 말하는 질서 속에 살고 있기에 경제활동은 단절되고 그간 맺어왔던 유대관계 역시 금이 간다. 우리는, 우리는 피치 못해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 할 자격이 있기나 한 것인가.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10년 간 우리는 존재해왔다고 소리쳤다. 우리도 살고 있다고 소리쳤다.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에서 휘몰아치는 바람 한가운데서 하늘 열린 듯 쏟아지는 비에 기꺼이 몸을 내던져 길바닥에 나뒹굴기까지 하면서 함께 좀 살아보자고 소리쳤다. 먹고 활동하고 이동하고 어울리고 생각하고 느끼는 일상, 이 일상들이 모여 삶을 이루는 것 아닌가. 그런 일상과 삶 속에 장애인은 없었다. 장애인은 그저 주변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주변인으로만 있지는 말자며 다짐하고 행동해왔다.

민선 6기 권영진 시장 체제는 지난해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이하 420연대)가 제시한 11개 주제 40개 요구안을 모두 받아 안았다. 이 공약화는 그 자체로 그간의 행동이 낳은 성과이지만 축배를 들 만한 결과치는 아니다. 비로소 우리는 대구시와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한 창구를 획득한 셈이다. 이제 이 창구가 어떤 역할을 할지 우리는 끊임없이 관찰해야 한다. 420연대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장애인 차별에 대해 투쟁으로써 저항하고자 하는 장애인 시민 사회단체 정당 등으로 구성된 연대체다. 420연대는 활동지원서비스, 자상버스 및 교통약자특별교통수단. 발달장애인 지원책, 생계 지원, 주거서비스, 보조기구 서비스 등이 충분하지 못한 현실을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인식하고 이러한 차별 떨쳐 이겨내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힘쓰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사회는 시민이 각각의 주체로서의 신분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다. 각각의 고유한 주체로서의 시민이라는 신분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각 시민이 그 사회에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공적인 자원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어야 한다. 주권의 실체! 헌법적 권리인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우리는 지금, 여기 우리가 디디고 있는 이곳에서 주권이 무엇인지에 대해 온몸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요구는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이 요구안들이 실현되는 날 대구시의 장애인들은 비로소 대구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만한 최저의 조건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 행동의 목적은 ‘시민되기’다.

지난 2009년 대구시에 등록된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3분의 2가 활동보조서비스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면 생활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복지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을 때에도 탈시설 욕구 정도가 50퍼센트를 넘었으며 입소계기를 물었을 때 자발적 입소는 7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러한 수치를 증거로 탈시설화의 정당성을 역설하지 않더라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는 것이 가장 평범한 일상 아닌가. 그러한 삶 자체가 장애인에게는 유독 큰 꿈이 되고 있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다. 420연대가 제시한 41개 요구안은 생활시설에서 이제 막 지역사회로 진입한 사람은 물론 성인임에도 부모의 보호 속에서 살아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보자고 권하고 있다. 사람은 단순히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존재 아니던가. 장애인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온몸으로 말해오고 있다.

2014년 공약화에 따라 대구시는 대구지역 생활시설에 거주중인 장애인 1575명 중 20%에 해당하는 320명에 대한 탈시설 자립생활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앞서 언급한 2009년의 장애인의 탈시설 욕구 조사도 그렇고 2014년의 ‘대구광역시장애인인권보장기본계획수립연구’도 탈시설 정책은 변화된 장애인 복지 이념에 비춰볼 때 부인할 수 없는 과제임을 일깨우고 있다. 올해 대구시 예산에는 장애인의 탈시설 지원에 관련해 예산이 편성되어 있지 않다. 앞서 말한 320명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이 정책을 시작하자. 그것으로 대구시가 자랑을 삼을 수는 없는 일인가.

노동당 대구시당 장애인위원회는 420연대의 일주체로서 420연대와 함께 행동할 것이며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대구를 만드는 행동 하나하나에 함께 할 것이다. 그래서 집안에 장애인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 자체로 그렇지 않은 가정에 비해 수 배, 수십 배의 무게로 삶이 짓눌리는, 그래서 거주시설로 가고-보내고 하는 이러한 말도 되지 않는 현실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대구시가 장애인 자립생활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우리는 행동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2015년 4월 20일

노동당 대구시당 장애인위원회

차은희 기자  cidmsl@bokjinews.com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