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대 사회복지학과 유동철 교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민관공동기획단의 논의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그렇지만 장차법을 요구하는 장애인의 목소리는 더욱 더 거세지고 있다. 이 와중에 어려운 주제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전문가의 역할에 관한 문제이다.

지금까지 장애인에 관한 정책과 서비스의 과정에는 전문가들이 많은 역할을 해왔다. 정책을 생산하는 과정에도 그랬고 정책을 전달하는 서비스 과정에도 그랬었다. 장애인들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였고, 장애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가 전문가들에 의해 고민되었다. 서비스의 종류나 양과 기간을 정하는 것도 언제나 전문가들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이와 같은 전문가주의와 결별하기 위한 기본법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인권법이기 때문이며, 인권의 주체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고민할 때는 전문가의 역할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역할이 핵심적 고리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경향은 세계 최초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국가인 미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ADA가 제정을 주도했던 가장 핵심적인 세력은 전문가들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들인 독립생활운동가들이었다. 이와 같은 흐름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이제 뒷전으로 물러앉아야 되는가? 그렇다. 그러나 뒷짐을 지고 물러앉는 것이 아니라 연대세력 또는 지원세력으로 물러앉아야 한다.

당사자들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모델을 주창했던 올리버의 견해에서도 그렇고 자립생활운동을 집대성했던 드종의 견해에서도 나타난다. 장애인 당사자의 역할을 핵심적인 위치로 격상시킨 것은 문제의 핵심을 사회적인 것으로 보고 이것을 해결할 주체는 결국 당사자들의 자조운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지들도 실패한 부분이 있다. 장애인 당사자를 핵심적인 주체로 등장시킨 반면 현실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연대세력 또는 지원세력으로서의 전문가들을 분석에서 배제시켰다는 것이다. 당사자를 핵심적인 주체로 등장시킨 것은 시대적인 요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장애인들이 배제되고 대상화되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고발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주체로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애인 당사자들의 자기권한이 증가할 것이며 굴절되지 않은 선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정책형성 및 집행과정에 결합해 있는 전문가들을 철저하게 배제시킨 것은 또 하나의 오류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장애인 당사자를 배제시켰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은 전문가를 배제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경험을 보건대 복지국가에 대한 재정압박 속에서 정책을 조절하고 프로그램을 재배치하는 과정에 전문가들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했었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법적인 지원을 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존재했었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한 마디로 말해 지원세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변화의 주된 힘은 전문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며 전문가들은 당사자들의 굴절된 힘을 복원시키고 그들의 권한에 의해 스스로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사자들에 대해 자신의 진술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진술을 인정하고 이를 중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문제의 전문가는 오히려 문제에 직면해 있는 당사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전문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장애인 당사자들이 법을 쟁취하고 차별에 대항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영역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문가는 법률가들이다. 미국을 비롯해 서구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법률 소송이었으며 이 과정에 많은 법률가와 단체들이 지원을 했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수많은 법률단체에서 이들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

또 다른 전문가를 생각해 본다면 학자와 서비스 전문가들이 될 것이다. 이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철학과 가치를 보다 분명히 개발하고 장애인복지정책 전반에 걸쳐 장애인의 인권 철학이, 당사자 중심의 철학이 반영될 수 있도록 장애인복지정책과 서비스를 재구조화할 수 있는 밑그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작업도 지난한 것이다. 이 또한 개별적인 작업으로는 많은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따라서 학자와 전문가들이 결합해서 이를 집중적으로 고민하는 모임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 힘은 아마도 장애인 당사자로부터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법률단체와 학자 및 전문가들의 모임은 유기적인 연대와 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이것을 시작하는 힘 또한 장애인 당사자들로부터 나와야 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렇게 본다면 아마도 당사자와 전문가는 핵심과 연대의 관계에 서 있어야 되지 않은가 싶다.

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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