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

역대 복지부 장관들은 보건의료계 출신들이 주를 이루었고, 사회복지 전문가는 차흥봉 전 장관 단 한명뿐이었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복지부장관에 김근태, 유시민과 같은 예비 대권주자들로 거론되는 정치인이 임명됐다. 그리고 복지계는 다른 정부기관의 기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전문성에 대해 까다롭게 따지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장관인사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묻지 않고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그 배경에는 정치적 역량이 있는 정치가가 장관이 되면 복지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을 것이다.

과연 사회복지계의 열망대로 정치장관은 복지발전에 헌신하였는가? 역대 복지부장관들은 예산부족 상황 아래에서도 나름대로 빈곤층의 최저생계를 사회적으로 보장하고, 차별을 줄여서 일반국민과 같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건마련을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의료급여 역사는 발전돼 왔고,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수혜수준은 조금씩 개선돼 왔다. 그러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인 유시민장관은 다른 장관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의료급여환자가 입원할 때 비급여항목에 대해서 돈을 지불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병원에는 의료비가 없어서 고통 받는 환자들이 넘쳐나고, 의료비로 가산을 탕진해 거리에 나 앉을 지경에 이른 의료급여환자가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통원치료의 경우에도 약국과 병원 이용 시에 직접 돈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비전문가가 얼핏보면 무상인 것 같지만, 실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구는 최저생계비 중에서 55,647원의 의료비를 제하고 생계비를 받는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의료급여 환자들은 선지급 형식으로 통원치료비를 생계급여에서 떼어서 적립한 후 그 돈으로 의료급여라는 현물급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장관은 무식의 소치인지, 아니면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인지, 몇몇 '도덕적 해이 의료급여자'를 찾아낸 후, 기자들을 불러 놓고 '사과쇼'를 벌이면서 의료급여 환자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한 결과 남용이 심한 것이 밝혀졌으니 바로 잡겠다고 발표해 보수언론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또 그 대응책으로 장기입원 의료급여환자의 생계비를 최고 75%나 삭감한데 이어,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통원치료 시에 천원내지 2천원 지급, 병원선택권 제한, 의료급여증을 칩이 내장된 플라스틱카드로 변경하는 등의 제도를 실시해 실시간으로 의료급여 환자의 병원과 약국 이용 상황을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뿐만아니라 신년사에서도 이 정책을 자신의 2대 실적 중의 하나로 꼽고 "방만하게 운영되던 의료급여의 제도의 고삐를 잡았다"고 자화자찬했다.
엄연히 유료인 의료급여환자의 통원치료비용을 무료라고 왜곡하고 2중으로 또 다시 받겠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통계치료마저 왜곡한 사람이 유시민장관이다. 의료급여환자의 도덕적해이를 근거로 제시한 의료급여환자의 일인당 진료비가 건강보험 가입자의 3.3배라는 통계수치는 진료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성별, 나이, 중증질환 비율 등 주요 변수들을 전혀 통제하지 않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부도 그 오류를 시인한 후, 의료급여수급권자의 평균 진료비는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3.3배가 아니라 1.48배라고 정정해 발표했다. 잘못된 통계자료에 근거해 정책이 입안되었으면 당연히 그 정책은 철회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장관은 의료급여 축소정책을 그대로 밀어 붙이고 있다.
197만명(2005년4월 현재)의 건강보험가입자가 장기체납으로 인해 병의원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빈곤문제연구소에 상담을 의뢰해온 장기체납자들의 말에 의하면 "급하면 의료급여 환자의 급여증을 빌려서 이용하는데 병의원들은 본인여부를 점검하지 않고 진료를 해준다"고 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1.48배라는 수치는 의료급여환자들이 그토록 가혹하게 생계급여를 삭감당하고, 치료비를 2중으로 지급하고, 감시당하는 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과다이용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통계조작(공인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될 짓)까지 하면서 전국민을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자로 구분한 후, 의료급여자 중에서 몇몇 과다이용자 사례를 침소봉대하여 도덕적 해이자로 몰아세우고, 스티그마를 찍어서 차별하는 정책을 몰아붙이는 처사는 의료급여 발전 역사의 수레바퀴를 전두환대통령 시절로 거꾸로 돌리는 처사라는 점에서 다른 역대 장관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의 배경에는 보수기극권층의 표를 얻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
이제까지의 복지제도가 예산부족으로 인해 보장수준이 미비하였다면, 유 장관이 내놓은 개혁안은 '가난한 사람들은 2등 국민이자 도덕적 해이자이므로 특별관리하겠다'는 무서운 선언으로서 의료급여가 권리성 급여라는 기본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복지부장관 자리는 한 나라의 복지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자리다. 유 장관은 보수성향의 정치인이 자리를 이용해 고통 받는 취약계층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강화에 이용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그동안 애써 쌓아온 복지가 한 순간에 크게 후퇴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재경부나 기획예산처와 같은 부서에 맞서서 복지를 수호해야 할 복지부장관이 자식을 팔아먹는 어머니처럼 수급권자들을 팔아서 표를 사려는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려면 사회복지계가 단결해 시민단체가 벌이고 있는 유장관 퇴진운동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복지부 수장자리는 정치가가 아니라 복지전문가가 맡는 바른 인사가 이루어지는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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