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어둠이 까맣게 내린 여의도. 한강 둔치에는 여름밤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친구나 연인과 나들이 나온 사람, 아예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는 모습 등. 도시의 불빛이 반사돼 고즈넉하게 어른거리는 강물처럼 한껏 여유로운 풍경이다.

청소년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서울 YMCA 청소년쉼터와 서울 늘푸른정보센터가 진행하는 심야거리이동상담. 서울 YMCA 최은영 간

이들과 달리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 바로 청소년들을 위해 심야거리이동상담을 나선 실무자와 자원활동가들이 그들이다.
청소년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서울 YMCA청소년 쉼터와 서울 늘푸른여성정보센터가 함께 진행하는 심야거리이동상담. 매주 목요일은 여의도, 금요일은 동대문에서 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활동가들은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찾아 거리로 나서고 있다.

심야거리이동상담 실무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은영 간사. 상담과 거리 선전을 위해 공간을 마련하느라 바쁜 자원활동가들 틈에서 그는 더욱 부산한 모습이다. 자원활동가들과 달리 거리상담에 필요한 것들을 세세히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 때 YMCA 청소년 쉼터에서 자원활동을 해 온 것을 인연으로 거리이동상담 초기부터 참여해 온 최 간사. 그는 사춘기시절 겪는 혼란, 가출 후 방황하는 아이들의 복잡한 마음을 강바람처럼 시원하게 훔쳐주고 싶다고. 

아이들이 오기 전 상담에 필요한 것들을 체크하는 최 간사.

마음으로 다가가는 게 우선
밤 9시 30분. 본격적으로 거리상담을 나서기 전 활동가들이 빙둘러 모여 할 일을 나눴다.
“혹시 몸 불편한 분 있어요? 없나요? 그럼 제가 짠 대로 조를 이뤄서 진행해도 되겠죠? 오늘도 수고하고요. 우리 힘차게 박수로 시작해요!”
최은영 간사가 맡은 일은 거리교육활동의 총 책임이다. 하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실무자이다 보니, 그날 그날 활동에 따라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기 일쑤다. 

“자원활동가가 최소 15명, 대식구가 필요한데 평일인데다가 밤부터 새벽까지 하다 보니 교통편도 문제고 자원자가 적죠. 실무자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해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먹거리며 부수적인 이벤트는 필수사항. 그 일환으로 라면과 매직풍선을 준비하는데, 이것을 챙기는 것 역시 최 간사의 몫이다. 시간이 되는대로 먹거리도 준비해 주고, 상담교사가 부족하면 다른 일 제치고 상담을 한다.

밤 10시를 넘어서자 이곳에 생기가 돈다. 어른들도 제법 관심있게 구경하고, 인근을 돌며 기웃거리는 아이들도 눈에 띈다.
갑자기 YMCA청소년쉼터 동료 실무자인 이지영 씨는 마침 뭔가 생각난 듯 상담자들에게 부탁을 한다.

먹거리는 아이들과 친숙하게 관계를 맺는데 중요한 매개. 이것을 챙기는 것 역시 최 간사의 몫이다.

“지난 주에 여자 애들 3명이 상담을 받았는데, 한 아이의 친구가 임신을 했다고 해요. 친구가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을 많이 한다며 상담을 하더라고요. 오늘 같이 나오라고 했는데, 친구가 꺼린다며 자신이 대신 얘기를 듣고 전해주겠다고 하던데…. 혹시 이런 얘기하는 아이가 오면 꼭 상담 좀 잘 해 줘요. 연락처 알아 놓으면 더 좋고요”
이곳을 통해 처음 만난 아이들이지만 내 문제로 여기고 도움을 주려는 거리이동상담 활동가들. 다시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이들은 한 번 상담을 나눈 아이들을 이렇게 기다린다.

최은영 간사는 “만약 혼자 고민하고 있다면 얼마나 무섭고 힘들겠어요. 이곳에 온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방법을 같이 모색해 줄 수는 있잖아요”라고 말한다. 

현재 심야거리이동상담은 크게 거리 교육활동과 상담, 두 가지로 진행된다. 교육활동의 경우는 가출, 쉼터, 성교육, 일자리 등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면서 동시에 욕구를 조사한다. 그런 다음 상담이 필요하면 연결해 준다. 방금 거리교육을 받은 3명의 여자아이들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
“애들아, 저녁 먹었어? 배고프지. 라면부터 먹고 할까?”

최 간사는 친구에게 하듯 가벼운 대화부터 시작해 아이들의 마음을 스르르 풀었다.
“처음에는 깊은 말을 잘 안 해요. 농담하면서 아이들과 관계를 풀어 가는 시간만도 15분 정도 들어요. 그러다 일단 시작하면 끝이 없지만요. 속상했던 일,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 가족관계 등 때로 아이들은 그렇게 얘기하면서 스스로 해결방안을 찾기도 해요.” 
속내를 털어놔서 인지 상담이 끝나자 최 간사와 아이들은 금새 친해졌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니까 금새 포즈를 잡는다.

“샘~! 저는 모델이에요. 길게 찍어주세요.”
“알았어. 사진 우리 싸이에 올려 놓을 테니까 꼭 봐.”
아이들과 상담을 하는데 이제는 제법 능숙해질만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어렵고 긴장된단다. 특히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의 속내를 끌어내는 일은 더욱 힘들다고.

거리교육활동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최은영 간사. 자원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꼼꼼히 챙겨 아이들의 욕구를 늘 체크한다.

“아이들과 쉽게 친해지려는 마음에 아이들 언어를 쓰는데, 그것도 잘 가려 써야 해요. 처음에는 좋아하지만, 교사를 쉽게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간혹 유행이 지났거나 이상한 은어를 썼다가 오히려 아이들 심기를 건드릴 수 있어요. 그땐 오히려 낭패죠. 무엇보다 아이들은 존중받는 느낌을 중요시해요. 존칭에 모척 민감해요. 딱히 매뉴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통하는 것 같아요.”

사회적 자원연결 안돼 어려움 커
밤 11시.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아 강바람에 실려온 덥고 끈적끈적한 습기는 절로 짜증나게 한다. 한 시간동안 거리에 서서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내용을 설명하려면 다리 힘이 절로 쫙 풀린다. 게다가 이때쯤이면 아무리 저녁을 든든히 먹었어도 배가 고프기 마련인데. 다행히 이런 사정을 알기에 실무자들은 활동가 두 사람을 한 조로 만들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쉴 수 있게 배려했다. 잠시 쉬러 온 교사들이 모여 라면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오늘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가출부분 설명하는데 오히려 어려운 것 같애요. 그냥 설문인데도 ‘저는 가출 안 할 건데요’라며 거부감을 표시하거든요.”
“근로기준법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재밌어. 의외로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관심이 많더라고.”
최 간사는 자원활동가들의 의견에 세세히 귀기울인다.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는 활동가들의 이야기야말로 생생한 소리통이기 때문이다. 마침 다리도 아프고 출출하던 차에 최 간사도 자원활동가들 틈에 끼어 라면을 먹는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늘 열심히 참여해주는 자원활동가들이 고맙기만 하다.

“다들 고생해요. 야간에 하니까 힘들어요. 장단점이 있는데, 회사원은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하루종일 일하고 오면 피곤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귀가시 교통문제가 가장 커요. 그나마 올해부터는 택시비 명목으로 1만2천 원씩 지원이 되어 다행이에요. 돈도 돈이지만 얼마 전에는 비 오는 목요일 12시에서 2시 사이 연쇄살인사건이 있었잖아요. 새벽 2시 이후에 집에 가는데 불안해하더라고요. 이 때문에 그만둔 분도 있어요. 차량지원이나 인근에 숙박업소라도 연결이 됐으면 좋겠는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상담을 받을 아이들이 들어오자 그는 아이들 먼저 챙긴다. 늘상 긴장하며 수고하는 활동가들과 실무자들. 그러나 처음 거리상담을 할 때만 해도 오해를 받았다. 거리교육을 하면서 쉼터에 대한 인식조사를 하는데, 때론 ‘가출을 조장하는 거 아니냐’, ‘이런 곳 있으니까 나와라’냐고 오해하는 어른들도 있었다고. 이럴 때 그는 가장 속상하단다.

“가출한 게 안전한가라는 질문에 의외로 여기에 답을 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아이가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 있었으면 그럴까 싶어 마음이 아파요. 이런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것인데, 가출청소년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저 편견이 앞서서 안타까워요.”
아이들의 필요한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려고 해도 한계가 많다. 그는 특히 사회적 자원의 네트워크망이 없이 없어 이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일 자체가 힘들기 보다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이 많을 때 힘들어요. 임신한 아이들은 낙태가 불법이지만, 공공연하게 허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물론 낙태를 안 해야 하지만 꼭 해야한다면 이를 도와줄 곳이 필요한데, 그런 곳이 없죠. 이 뿐아니라 아이들의 욕구는 다양한데 채워줄 수 없는 게 많아요. 상담을 하다 보면 대안학교에 가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곳에서 알아봐 줄 수는 있지만, 바로바로 연결될 수 있는 체계가 안되어 있어 안타깝죠.”
이런 상황에서 최 간사는 그저 이야기만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얘기를 들어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숨통이 트이는가 보다. 

“저랑 상담한 한 아이가 몇 개월 후 다시 찾아왔는데, 집에도 들어가고 학교도 다시 나간다고 해요.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자신의 얘기를 들어준 사람이 없었는데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갖춰야 할 것들이 많지만, 아이들에게 작은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에요.”
이렇게 변화되는 아이들의 마음이 있어 힘들어도 평생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최 간사. 늘 생기 있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는 모습이 예쁘기만 하다.

최 간사는 “어른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지만, 오히려 배우는 것이 많아요. 내가 느끼지 못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거든요.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활동적인 젊은 기를 받아서 내 삶도 활동적이고 신나는 것 같아요”라며 그 비결을 아이들에게 돌린다. 

청소년을 보는 시각 변해야
빠라바라-빠라밤! 빠라바라-!
밤 12시 30분. 밤이 깊어지자 어느새 공원은 제법 한산해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수는 더 늘었다. 어디에 있다가 몰려들었는지 폭주족들이 금새 늘었다. ‘빠라바라-빠라바라’
좌우로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운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뭇 불안하다.

“관심을 끌려는 거예요. 이 아이들의 속내를 보면 과격하거나 나쁘지 않아요. 전에 한 번 폭주족 아이가 상담을 하러 왔는데, 대화도 필요하고, 사랑도 필요한 아이들이었어요.” 
갑자기 최 간사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문다. 뭔가 돌발상황이라도 생긴 듯, 시선을 따라가니 좀 전에 그에게 상담을 받던 여학생들이 폭주족들에게 태워달라고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인다. 최 간사는 내심 걱정스런 마음이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는데….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말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에요. 지금 뭐라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요. 믿음을 심어주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서 풀어가야 해요.”
그는 사회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더 여유로워져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가출청소년에 대한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아이들은 평생사회로 가지 못 해요. 잠시 엇나갔을 뿐인데. 아이들이 엇나가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요. 아이도 바뀌어야겠지만, 아이를 둘러싼 사회, 가족이 같이 노력하고 변해야 해요.”

새벽 두시 오랫동안 불을 환하게 밝힌 여의도 한강공원. 대부분 사람들은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이들도 이제 철수할 시간이다. 상담시간 내내 기다렸던 그 친구들이 끝내 안 왔다. 게다가 아직도 공원에 남아있는 폭주족 아이들의 곡예 소리를 들으면서 돌아가는 최 간사의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은 듯 하다. 하지만 욕심내지 않는다.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의 손을 내밀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배를 위해 늘 불을 밝히는 등대처럼, 매주 그 자리에서 아이들의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려는 최 간사. 그의 바람처럼 청소년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기대해 본다.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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