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형문화재 13호 김은영 씨가 매듭을 선보이고 있다.

“매듭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어요.”
서울역사박물관 2층 사회교육실. 매듭장 김은영(서울시무형문화재 13호)씨가 50여 명의 수강생들에게 우리나라 매듭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뭇 진지한 표정들이 예사롭지 않다. 20대 여대생들부터 예순이 넘은 어르신들까지 모두 매듭을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거 이렇게 꼬는 게 맞나요?”
“생각보다 어렵진 않네?!”
매듭의 이론적 설명이 끝나고 바로 실습에 들어간 수강생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놓치지 않는다. 살~살 꼬아올린 매듭이 형태를 나타내자 감격스러운 듯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한다. 매듭의 어떤 매력이 이들을 자극하는 것일까.

멋스러움 즐길 줄 아는 선조들의 지혜
26살 때부터 매듭의 길에 접어들었으니 어느덧 40년이 다 되어 가는 세월이다. 오직 ‘매듭’의 한길만 고집하며, 매듭장 김희진으로부터 사사받은 후 지금은 한국전승매듭연구회 고문으로 이수생 22명을 키우고 있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13호 매듭장 김은영(62)씨. 그는 매듭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공예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수강생들에게 매듭을 가르치고 있는 김은영 씨. 매듭형태를 갖춰 나가자 모두들 신기해 한다.

외형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감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우아함과 편안함으로 가득차 있다. 그의 삶 자체가 그렇듯, 온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풍요와 멋을 즐길 줄 알았던 우리 옛 선조들의 모습을 꼭 닮아있다고 할까.
그는 매듭만큼 사람을 편안하고 기분좋게 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매듭을 시작하면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주위 공간을 아름다움으로 온통 채울 수 있다. 또 다양한 것들을 만들 수 있어 실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그도 그럴 것이, 예부터 매듭은 남자나 여자의 장신구에 널리 사용하였다. 도포끈을 비롯해서 부채의 선추매듭, 주머니 끈술, 안경집 끈목, 여자용의 노래개 매듭, 귀거리 술, 주머니 매듭, 조바위나 아얌의 잔술장식, 허리끈 등으로 이용해왔다. 때문에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색색의 아름다운 색깔과 모양은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도 딱 들어맞는다.

옛날 매듭장이들은 염색장, 해사장, 끈목장, 매듭장으로 나누어 일을 세분화했다. 하지만 김씨는 그런 일을 혼자 손으로 다 한다. 이는 보통 일을 뛰어 넘는 것이다.

“사실 매듭과 다회(비단실을 다 감은 후 실의 굵기에 따라 여러 겹을 합사하는 일)는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이 딱해 할 정도로 육체적으로 힘든 과정이다. 오늘날에는 기계로 짠 끈목이 상품화되어 용도별로 다양하고 값도 저렴하지만, 옛 사람들은 다회치는 일에 품을 많이 들였다.”
비단실의 염색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물감을 조금씩 물에 탄 후 물을 들이면서 얼룩이 지지 않도록 골고루 뒤집는다. 실이 마르면 색상이 젖을 때와 판이하게 다르므로 잘 관찰해야 하고, 다 마른 후 실을 실꾸리에 옮기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속을 썩히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엉킨다.”
그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누굴 원망할 수 없지만 이 매듭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하루 종일 구부리고 앉아 끈목을 짜고 있으면 두 시간이 채 못 되어 등짝이 아파온다. 그래도 기계로는 절대 짜지 않는다. 살아있는 맛이 전혀 없고 밋밋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평생을 올곧은 매듭장의 삶으로
매듭은 종류만 33가지나 있고 매듭 이름도 주위에서 흔히 보는 예쁜 곤충이름을 딴 순수 우리말이다. 우선, 매듭을 맺으려면 끈목이 필요하다. 끈목은 실을 합사하여 두가닥 혹은 세 가닥 이상으로 꼬는 끈과 네가닥 이상의 여러 가닥으로 짜는 끈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같은 끈목의 기본은 모, 삼, 무명, 비단 등 섬유질로 만든 모든 복잡한 끈목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조선시대에는 이와 같이 짠 끈을 다회라 하였고, 끈짜는 것을 다회친다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생소한 느낌을 주는 이 말은 그 다양하고 다채롭던 조선시대 다회기법이 잊혀졌었다. 점점 줄어드는 수요와 생산의 기계화에 따라 수작업인 다회의 수법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아울러 그 명칭까지도 잊혀진 것이었다.

그는 “외국인들도 매듭을 많이 가르쳐봤지만 한국사람만 못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젓가락 문화가 발달되어 그런지 손재주는 세계에서 으뜸이거든요. 매듭이 우리의 전통문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죠.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멈출 것이 아니라 계속 발전시켜야 해요”라고 말했다.

하나의 장신구가 완성되기까지 한 사람의 기나긴 인내와 세월이 필요하듯, 우리의 삶 역시 어쩌면 매듭을 짜는 일과 비슷할지 모르겠다. 평생 매듭으로 올곧은 생을 살아가는 그에게서 장인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운이 진하게 느껴진다.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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