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소풍을 갔던 날이. 아마도 유치원 봄 소풍이었나 보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가 함께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할머니와 풍선 터트리기도 하고, 보물찾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주름은 그때 보다 곱절은 더 생겼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드높던 지난 10월 7일. 하얀목련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과 가을소풍을 간다기에 들뜬 마음을 갖고 동행했다.

센터는 중풍, 치매, 허약 등 노인성 질환을 가진 노인들을 대상으로 낮 동안 보호해 주는 새둥지 같은 곳이다. 이날 소풍을 함께 가기로 한 어르신은 총 12명. 봉사자와 교사 8명을 포함하면 대가족이 이동하는 셈이다. 이곳에서는 일년에 두 차례 소풍을 나선다고 한다. 할머니 생각이 나서였을까. 센터의 직원역할을 자처하고 나서면서도 왠지 모르게 소풍가기 전날처럼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우리 갈대구경 하러 갑니다!

10시 30분에 출발하니 천천히 오라는 정미숙 사회복지사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약속시간보다 먼저 센터에 들어섰다. 김밥 싸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소풍을 가면 당연히 김밥을 만들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걸, 문을 열고 주방에 들어서자 밥과 반찬이 맛깔스럽게 놓여진 도시락을 싸는 게 아닌가. 김밥이 소화하기 힘든 노인들에게 안 좋다는 걸 왜 몰랐을까.

준비한 도시락을 차에 실고 ꡐ씽씽ꡑ 달려 도착한 곳은 월드컵공원. 간만에 나온 산책에 어르신들 모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원봉사자들은 불편한 어르신 옆에 바짝 따라 붙으며 다정히 손을 잡고 공원으로 향한다. 자식이 부모를 대하듯 자연스러운 폼새다.
정 사회복지사는 야외 활동을 할 땐 보통 때보다 신경을 더 써야 해요. 인력이 부족한 게 늘 안타까워요. 그래서 봉사자들의 도움이 절실해요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야외활동에 나온 교사는 사회복지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총 4명. 봉사자들이 아니었더라면 이 많은 노인들을 보살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공원의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어르신들과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어르신들의 표정이 그렇게 해맑을 수 없는 게 마치 어린아이들 같다. 소풍을 간다는 것은 누구든 기분을 좋게 만드나보다.

자리에 앉자 제일 먼저 차를 타고 오며 긴장한 근육들을 풀기 위한 준비운동이 시작됐다. 구령에 맞춰 옆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고, 옆구리 운동도 하는 게 어린 시절 소풍으로 돌아간 듯 하다. 운동이 끝나고 소풍에서 빠질 수 없는 레크레이션 수건돌리기가 이어졌다. 벌칙은 노래 부르기! 센터 노인들은 노래를 자주 부른다. 노래가 어르신들의 정서 안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레크레이션이 끝나고 어르신들이 화장실에 다녀 올 동안 점심 준비가 이어졌다. 밖에서 먹는 밥이라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 없다. 어르신들도 모두 야외에서 먹는 밥맛의 특별함ꡑ을 느꼈는지 밥 한 톨 남기는 분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간호사의 당부가 떨어졌다.
김순영 할머니 옆에 꼭 있어요. 오늘 하루 책임지고 돌봐야 해요!
김 할머니는 특별히 내가 신경 쓰고 돌봐야 한다. 할머니와 단둘이 앉아 얘기를 나누려니 솔직히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난감했다.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소리를 질렀다.

왜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봐! 이그.
갑자기 자리를 뜨는 할머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할머니 뒤를 따라 다니며 어디가세요. 같이 가요라고 외쳐도 보고, 다시 자리로 가자고 졸라도 봤지만 할머니의 화는 점점 수위가 높아져 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너무 멀리 왔다. 할머니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도록 옆에 조용히 있자고 마음먹고 있는데, 갑자기 집으로 가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찌할 바를 몰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센터에서 봤던 허철영 할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한숨을 놓는 찰라였다. 사정을 말하니 할아버지가 걱정 말라며 능수능란하게 할머니를 일행 쪽으로 유도한다.

사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상태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돌방상황이 생겨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루 동안 할머니를 보호하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이 같은 일을 수십 번도 더 겪는 교사들은 어떨까. 얼마나 가슴 졸이며 지낼까.

정 사회복지사는 그럴 때 어르신을 더 자극하면 안돼요. 딴 생각을 하도록 다른 대화로 이끌어 나가는 게 좋아요. 그럼 금새 잊어버리거든요라고 말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8.3%에 해당하는 34만6천여 명이 치매라고 한다. 통계에 드러나지 않은 환자까지 포함한다면 다섯 가구당 한 명의 치매노인이 있는 꼴이다.

치매 가족이 있는 가정은 무엇보다 부양 부담이 커요. 센터는 그런 치매가정의 정신적신체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곳이죠. 부양가족은 노인이 센터에 있는 낮 동안에 다른 경제적 활동도 할 수 있고, 부양의 스트레스도 경감 받을 수 있어요. 센터는 치매노인 본인도 그렇지만 노인 가족에게는 더욱 없어서 안 될 소중한 곳이죠.

이번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하늘공원 산책하기. 관절염과 중풍 등으로 높은 곳은 엄두도 못내는 노인들에게 이곳의 산책은 특별함을 가져다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관절이 약한 노인들은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그만 가자고 성화다.

어르신들 힘드세요? 갈대 구경도 더 하고, 사진도 찍으면 좋을텐데. 그럼 우리 내려가서 그늘에 앉아 있어요.
누구보다 노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사들. 혹시라도 허약한 몸에 무리가 갈까 걱정이다. 하늘공원에서 내려와 보니 어르신들은 아침과 사뭇 다른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산책을 강행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간식을 먹고 모두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아침의 흥분은 사라지고 어느새 피곤함이 물밀 듯 밀려왔다. 

부릉 부릉~ 통학버스 왔어요

다음날 오전 8시 30분. 서둘러 센터에 도착했다. 어르신들을 집 앞까지 데리러 가고 데려다 주는 송영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다. 이용 노인 대부분이 허약하거나, 치매를 앓고 있기 때문에 송영서비스는 반드시 필요하다. 센터의 12인승 승합차는 서대문구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어르신들을 실어 날랐다. 차를 타고 어르신들을 맞이하다 보니 유치원 교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치매 노인은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보호자가 없을 경우 열쇠를 갖고 직접 문까지 따고 들어가 차가 있는 곳까지 데리고 나온다. 간단해 보이지만 남의 집 문을 열고 잠그는 게 마음 편할리만 없다.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뒤돌아설 수 있으니….

한 시간 반이 지나자 모든 어르신들을 데리고 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는 일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어르신들은 혈압과 몸무게,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았다. 이곳에서는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오전에는 손 근육 운동과 인지기능을 위한 활동이, 오후에는 신체적 기능을 위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매주 월요일은 종이접기가 있는 날이다. 종이 접기 강사가 내준 오늘의 과제는 호랑이 접기. 색종이를 이리저리 접고, 붙이는 게 노인들의 둔화된 손 근육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치매예방에도 종이접기만큼 좋은 게 없다.

따라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도와주는 것도 교사가 할 일이다. 노인마다 기능도 다르고, 증상이 달라 도움 없이는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할머니 뒤에서 다음 순서를 가르쳐 주느라, 접어주느라 시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벌써 점심시간, 노인들의 점심시간은 꽤 길다. 12시부터 2시까지인데 이 때는 자유롭게 물리치료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노인자원봉사자가 진행하는 단학 수업도 있다.

이어 전통놀이가 있는 오후시간. 강사가 공수(?)해 왔다는 애기사과와 도토리, 산수유 등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 모양을 만드는 날이다. 그렇지만 가위로 얇은 나무 막대를 자르는 일은 허약해진 노인에게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여기저기서 나무막대를 자르지 못해 수업 진행이 느려졌다. 가위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원하는 크기에 맞게 잘라주고, 방법도 설명하다 보니 한 시간이 금새 지나간다. 그래도 힘들게 완성한 작품들을 스티로폼 위에 전시해 놓고 보니 그럴싸하다. 어르신들도 서로의 작품을 보며 웃느라 정신없다.

이렇듯 센터의 하루는 정신없이 지나간다. 낮 동안 보호하기 어려운 노인을 돌봐 주는 곳, 허약한 노인의 잔존기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도록 전문적인 보호와 지도를 하는 곳. 바로 하얀목련 주간보호센터의 존재이유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곳

할아버지 할머니의 유치원과 같은 하얀목련 주간보호센터. 이곳에 노인을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챙겨주고, 딸처럼, 아들처럼, 또 친구처럼 보살피는 교사들이 있었다. 그래서 일까. 부양가족들은 이런 교사들이 있기에 안심하고 있는 듯 했다. 이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되돌아오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그리고 누구보다 밝고 건강한 웃음을 지닌 어르신들의 모습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른다. 노래를 무척이나 잘하시는 조정하 할아버지, 고운 얼굴만큼이나 미소가 아름다웠던 김경애 할머니를 비롯 모두 모두 어디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문의: www.kisca.or.kr 02-303-0070)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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