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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변하게 하는 ‘꿈틀거림’이죠”빈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같이 울고 웃는 임근정 씨, 주거권 운동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김석란 기자 | 승인 2005.01.12 16:29

가을 햇살이 가득하던 날, 서울 송파구 문정동 로데오 거리를 걸었다. 한낮이었지만 여기저기 쏟아지는 음악들과 사람들의 웅성댐으로 거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모두들 행복에 겨운 모습이다. 이런 풍경 속에서 뒷골목 가난을 어느 누가 상상할까.

하지만 이 화려한 골목 뒷켠에는 마땅한 거처가 없어 비닐하우스로, 판자로 얽히고 설켜 만든 보기에도 남루한 공간에서 하루하루 스산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편안하게 쉴 곳은커녕 당장 잠잘 공간도 부족해 가족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집은 소유가 아닌 사용의 개념

이번 겨울은 또 어떻게 나야 하나….
매번 돌아오는 겨울이라도 막상 가까워지면 앞이 막막하다니까.
햇볕을 받으며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온 어르신 두 명이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시름을 나누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깊게 패인 주름에서 지난 세월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송파구 개미마을. 이곳은 마을 전체가 비닐하우스촌이다. 같은 서울 하늘아래 있으면서 누구는 타워팰리스에 살고 누구는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개미마을은 몇해전까지만 해도 주소지 조차 파악될 수 없었던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거주지였다.

마냥 희망이 없을 것만 같은 이곳. 그래도 빛 줄기 한 자락은 남아 있는 걸까. 추운 겨울날 따듯하게 번져가는 입김처럼, 간간히 들려오는 희소식처럼 꽁꽁 언 기운 속에 따듯한 사람 온기를 품고 있으니 말이다.

가난한 이들이 그나마 숨통이라도 트고 살도록 늘 옆에서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빈민운동가들이 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이들을 외면하고 무시할 때 늘 그들 편에 서 있는 이들.

그 중 거주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임근정 대표는 송파구 문정동에 터를 잡고 집 없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고스란히 자기 일로 여기며 그들의 주거개선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30년 전, 그러니까 12살 때 고향인 전남 나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는 동대문구 창신동에 제일 처음 보금자리를 틀었다. 지독하게 가난하던 시절, 유난히 가진 것 없는 사람들만 모여 살았던 이 동네에서 스무 살이 넘도록 봉제 일을 해온 그.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봉제 일을 그만두고 이곳 저곳 뛰어다니며 사업을 시작했다. 또 빈민운동에도 점점 눈이 뜨이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문정동에서 작은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며 먹고 살만하지만 예전에는 어디 그랬나.

나 스스로 가난한 동네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때 빈민운동한다는 사람들이 매일 찾아와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거예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날이 새는 줄도 모른 채 모였다 하면 얘기했어요. 그땐 왜 저 사람들이 얻는 것도 없으면서 저렇듯 열심일까 의아하기만 했는데…. 주거운동은 인간의 권리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과정이었던 거죠. 당시 많은 걸 느끼고 깨달았어요. 집이라는 곳이 소유가 아니라 사용의 개념이라는 것을, 빛이나 공기처럼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알게 된 거죠. 그때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 모습이 있고 또 빈민운동이 끊어지지 않고 맥을 유지하는 겁니다. 고 제정구 선생님, 김진홍 씨 등 지금은 연로하신 많은 빈민운동가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86년부터 빈민운동에 눈과 귀가 트이기 시작한 그는 그렇게 깨달아가는 과정만 3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89년부터는 미친놈처럼 밤낮없이 빈민들의 주거권 운동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송파구로 거주지를 옮겨 가락동 시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과 한솥밥을 먹으면서 본격적으로 빈민운동에 두 소매를 걷어올렸다.

그 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지금은 정부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해 강제철거가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땐 어디 그랬나요. 가난한 사람들이 살 곳이 없었어요. 멀쩡히 살던 곳을 무작정 철거하고 빈민들을 내쫓기 바빴죠.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나야 했어요. 이런 그들에게 당신들은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말해야 했고, 철거되더라도 그만큼의 보상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인식하도록 노력했어요. 스스로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면 이 운동도 큰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거든요.
이렇듯 그는 집이라는 공간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데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며 주거권 운동의 중요성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철거가 된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동네에서 살 수 있는 권리조차 빼앗아 간다는 얘기다. 보상이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정부가 임대아파트를 지어 철거민들을 이곳에 입주시키고 있지만, 임대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는 철거민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임대아파트예요. 하지만 실제 재개발 지역 세입자들이 임대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은 얼마되지 않아요. 90년 5월 이후 정부가 임대아파트를 지어 선별적으로 입주시켰는데 임대아파트를 많이 지을수록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던 거죠. 철거민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임대아파트인데 말입니다. 그 이면에는 임대아파트를 적게 지으려는 속셈도 있었던 거죠.

중제 빈민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해요
이렇듯 불합리한 주거정책을 바로 하고 철거민들의 주거권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바로 93년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다. 초창기 고 제정구 의원과 야채 노점상이던 김진홍 씨 그리고 현 노무현 대통령이 그 당시 빈민들의 주거권을 위해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싸우던 곳이다. 그 역시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빈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울고 웃던 시절이었다.

연합의 목표는 무엇보다 최저주거기준이 달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비닐하우스나 쪽방에 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노숙인 등도 최저주거기준에 맞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사업 과제이다.

정부에서 국민임대아파트를 대폭 건설한다고 하지만 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에 떡이거든요. 국민임대아파트는 일반 서민들을 위한 것이지 빈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임대아파트 건설에 좀더 예산을 늘려 최하위계층의 주거확보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하면 오히려 복지병에 걸렸다고 비아냥거리기 일쑤입니다. 우리나라 인구통계를 보면 최하위 계층이 400만 가구나 돼요. 3분의 1정도가 임대아파트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정책대로라면 상상할 수도 없죠.

하지만 그는 철거민들이 힘들게 싸워 임대아파트에 막상 들어가도 발생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지금의 임대아파트를 보면 돼지우리나 다름없어요. 비좁은 공간에 성비구분은 전혀 할 수 없고, 심지어 근처 민영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담을 치겠다고 하지 않나. 거기에 비하면 차라리 비닐하우스가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최저주거기준에 맞는 주거공간이 더욱 필요해요.

사실 빈민운동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성과가 나는 게 아니다. 꾸준히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고 대화하며 이루어가는 지리한 사람 운동이다. 때문에 사람과 사람사이의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빈민운동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성과가 보이지 않잖아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가 없으면 잘 믿으려 하지 않거든요. 오랜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상대방을 솔직하게 대하는 마음가짐과 배려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 바닥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사람 대하는 노하우까지 생겼다는 그. 그때 당신 말을 듣기 잘했다 혹은 그때 당신을 믿기 잘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빈민운동에도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더불어 빈민운동의 끈을 절대 놓을 수 없는 유일한 희망의 근거가 된다고 했다.

빈민운동을 통해 나 스스로도 많이 변해가요. 어우러져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살면서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거든요. 주위 사람들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요. 자신들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세상 보는 눈도 일찍 터득하더라고요.
그 만큼 빈민운동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우선 빈민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가난한 사람들은 뭘 좀 배우거나 하고 싶어도 당장 입에 풀칠하려고 막노동 현장을 찾고 하루 일거리를 찾게 되거든요. 그렇다 보니 전문적인 기술을 배울 만한 여력이 없어요.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이도 저도 안되니까 결국 제자리만 머물 뿐이죠. 하루를 사는 데는 그럭저럭 사는 것처럼 보여도 언제나 불안한 일상들입니다. 뭣보다 주거가 불안정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예요. 때문에 빈민운동의 핵심은 바로 주거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중제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
한편, 그는 빈민운동의 필수조건은 사람이 변화의 주체로 역동적인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지만 언제나 열악한 조건이 사람을 늘 떠나게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운동 현장에서 발 벗고 나서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인 것이다.

다른 운동 현장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빈민운동의 경우 활동가가 부족해요. 주거연합에도 실무자들이 대부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거든요. 사람을 남기지 못하는 게 무척 아쉬워요. 하지만 빈민운동은 절대 맥이 끊어지지 않을 겁니다. 집이 없어, 갈 곳이 없어 늘 가난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말에요.

가난한 사람들의 허기진 굶주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임근정 씨. 그 역시 가난한 시절을 겪으며 눈을 뜨게 된 경험 때문일까. 주거권 운동은 집을 매개로 한 사람운동이라고 다시한번 되새기는 그는,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라며 특유의 미소를 선보였다.

김석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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