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왜 이렇게 오랜만에 나오셨어요? 기르던 수염도 깎으시고, 모자도 벗으시고. 아버님 그간 무슨 심경에 변화라도 있으셨나봐.

덕양노인종합복지관 임창덕 관장은 복지관을 찾은 한 어르신을 보자, 반가움에 달려가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전과는 사뭇 달라진 어르신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지 한 번 잡은 손을 놓을 줄 몰랐다.

이처럼 복지관을 찾은 어르신 한 분 한 분 늘 살갑게 챙기는 임창덕 관장. 비록 관장의 위치에 있지만, 일반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발로 뛰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일에 대한 열정과 어르신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눈높이에서 노인의 욕구 알아가야 

덕양노인종합복지관 임창덕 관장. 작은 체구지만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이 어딘지 소박하고 단아한 소국과 닮아 있었다. 쉰을 훌쩍 넘었지만 그의 일상에서는 나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마음이 즐거워 젊게 보이나 봐요. 어려서부터 노인과 남은 삶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우연찮게도 이렇게 귀한 자리가 주어졌네요. 주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젊은 기를 받을 수 있는 아동이나 청소년 복지를 하지 왜 하필 노인쪽을 택했냐고 해요. 하지만 어르신들과 지내면서 성격도 더 활달해지고 활기를 얻어요. 겉보기에는 제가 돌봐드리는 것 같지만, 오히려 돌봄을 받거든요. 제가 얼굴빛이 안 좋으면 다들 친부모님처럼 걱정을 해줘요. 얼마나 복 받은 삶이에요.

그가 관장직을 맡게 된 것은 5년 전쯤. 당시 명지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명지대가 고양시로부터 노인복지관과 치매주간보호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됐다.  그 역시 노년을 향해 가고 있는 차세대 노인인 만큼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무엇보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사회적으로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큰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노인 하면 다들 고집 세고 말이 안 통해, 쭈굴쭈굴 하고 냄새 나 등의 인식이 태반이에요. 노인은 병도 아니고 삶의 자연스런 현상인데, 너무 터부시 여기고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노인은 자신들과 거리가 먼 얘기로 생각하는데, 누구나 늙잖아요. 조금은 더 폭넓은 시각에서 노인을 바로 알아갔으면 해요.

그는 노인을 이해하는 가장 첫걸음은 눈높이에서 욕구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노인들의 의사를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돌보려고 한다는 거예요. 가끔 며느리들이 우리 어머님은 성질이 못 됐어요. 제가 뭘 챙겨주든지 다 불평만 해요라고 상담해와요. 물론 며느리 딴에는 잘해드린다고 한 일이지만, 일방적으로 해주니까 불평이 생길 수 밖에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노인 입장이 돼 보면 분명 지금보다는 관계가 더 좋아질 거예요.

그 동안 그는 말뿐만 아니라 실천에 옮기려고 부단히 애썼다. 5년째 이곳 관장직을 수행하면서 그가 해 온 일은 책상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복지관 지하에서 3층까지 왔다갔다 하며 어르신들의 욕구를 살피는 것이다. 관장실 한 편에는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항상 츄리닝이 대기하고 있을 정도다.

어떤 직함을 맡는다는 것은 목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이 커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몸으로 뛰면서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다는 게 마음이 즐거워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하지만 임 관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년에 대해 준비를 하지 않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노인도 더불어 살아가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에요. 이제 곧본격적으로 고령화 사회가 되는데, 젊은 사람들이 노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노인이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노인 스스로가 노년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노년을 준비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달려온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맘 따뜻한 속짱 많아졌으면…

비록 나 하나라도 실천하자. 이는 그동안 임 관장이 남다른 열정과 젊음을 유지해 온 비밀이다. 남들이 안 한다고, 변하는 게 없다고 같이 안 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나 하나지만 나 하나라도 하다보면 언젠가 변하지 않겠냐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 수 밖에 없는 게 바로 사람인 것 같아요. 한자에서 보면 사람을 가리키는 글자(人)가 서로 기대는 모습이잖아요. 요즘 얼짱 몸짱이 한창 열풍인데, 개인적으로는 겉으로 보여지는 그런 것 보다 속짱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옆사람이 힘들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런 마음 따뜻한 속짱이 많은 세상이 바로 더불어 사는 사회가 아닐까 싶어요. 월간 더불어사는사회가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전하고 있어 참 반갑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번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자라는 마음도 다져먹게 돼요. 다른 독자들도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 곳에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발굴해 전했으면 해요.

외유내강. 아마도 임 관장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따뜻한 마음을 품으며 하루하루 속짱을 실천해 가려는 그.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이라는 것을 절로 느끼게 하는 그의 일상을 기웃거리고 돌아 나서는 발걸음이 내심 즐거웠다.

김은미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