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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에 생사 달려 있다!”농업은 지금 당장 문제가 아니라 미래가 문제… 실제상황은 더 악화될 수도
김석란 기자 | 승인 2005.01.12 16:35

우리가 매일 먹는 쌀. 숨을 쉬고 갈증을 달래는 공기와 물이 그렇듯 우리는 쌀의 가치와 생명에 주는 소중함을 실감나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흔하다. 그래서 소중함 역시 평소에 느끼지 못한다. 70년대 보릿고개를 넘긴 뒤 쌀 문제는 없으면 어떻게 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절실하게 부족했던 적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민족과 함께 1만년 긴 세월을 함께 한 쌀이 역사 이래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미국, 중국 등 9개국과의 쌀 재협상 결과에 따라 우리는 쌀도 밀과 고추, 마늘, 배추 등의 다른 농산물뿐 아니라 캠코더, 디지털카메라와 같은 공산품처럼 국제시장에서 사먹어야 할 지도 모른다. 

농업은 국가정책과 비전의 핵심

쌀 개방에 반대하는 많은 농업계 전문가들은 농업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미래가 더 문제라며 실제 상황은 이것보다 악화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2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65개 시민사회단체가 우리쌀지키기 식량주권수호 범국민운동본부 발족식을 열면서 쌀개방 문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협상(UR)이 한창이던 때, 쌀 지키기 국민운동본부에 이어 꼭 10년 만에 대대적인 쌀 지키기 국민운동이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진행 중인 쌀 관세화유예협상에서 식량주권과 생명,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농민들은 물론 도시민, 소비자 등 모든 국민이 나서 쌀 추가개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운동본부 소속 김미현 씨는 쌀이 수입되고 식량주권이 위기에 처했는데도 언론은 쌀 문제를 전혀 보도하지 않고 정부의 개방대세론에 들러리 서고 있다며 언론의 농업에 대한 무관심과 왜곡보도가 농업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족의 생사가 걸린 쌀 관세화 유예협상이 3차 라운드에 접어들었으나 정부는 지금까지도 협상전략이라는 미명 아래 구체적인 협상 내용을 철저하게 비공개하고 있 는 실정이다.

김씨는 정부가 오히려 쌀 관세화가 유리하다거나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받기 어렵다느니 불리한 여론을 유포시켜 국민들을 현혹시키면서 개방의 명분을 쌓는데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했다.

농림부는 최근 추곡수매제 국회 동의 폐지와 도시민에게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 농지법 개정안 등은 쌀개방을 기정사실화하고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개방을 핑계로 농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은 농업포기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은 민족의 생명이자 주권이며 안보인 쌀은 어떤 형태로든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정부가 밀실협상을 통해 식량주권을 포기한다면 전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녹색소비자연대의 노은숙 소비자건강팀장은 쌀은 농업의 문제일 뿐 아니라 소비자의 건강권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강조했다.

60년대 미국이 무상원조한 밀이 들어와 결국 이 땅에서 밀농사가 자취를 감췄다. 쌀이 전면 개방되면 밀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이역만리에서 어떤 농약을 치는 줄도 모르고, 유통과정에서 부패를 막기 위해 어떤 유해물질을 섞을 지도 모른다. 또 대량생산을 위해 옥수수나 감자처럼 유전자조작을 할 수도 있다. 수입쌀의 안전성을 믿을 수 없다.

그는 또 수입쌀은 싸다는 전제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기상이변 등 농산물의 불확실한 수급상황을 고려한다면 지금처럼 쌀을 싼값에 수입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도 근거가 없다. 미국 등이 쌀값을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쌀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쌀값 폭등의 피해는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최근 도시 아이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아토피와 같은 피부질환은 부모들의 먹을거리와 무관하지 않다. 전적으로 수입쌀만 먹자는 것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소비할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우리 쌀 지키기 범국민운동본부 이종화 상황실장은 쌀 수입은 식량주권이라는 추상적 논리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소비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국민의 세금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소비자는 당장 값싼 수입 농산물을 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로 인한 심각한 건강상 위협은 병원비에 고스란히 전가되고 농업이 수행하는 다양한 공익적 가치가 파괴되는 것은 그것을 복구하기 위한 국민들의 세금부담만 늘릴 뿐이라고 말한다.

싼 맛에 수입쌀에 길들여지면 결국 그 비용이 부메랑이 돼 소비자에게 돌아올 것이란 이야기다.
쌀을 수입에 의존함으로써 입게 되는 피해는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쌀과 농업이 주는 공익적 가치를 잃는 것은 경제적 이해타산으로 셈할 수 없는 엄청난 피해다. 이 또한 쌀이 사라진다면 결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불해야 할 사회적 부담이 될 것이 뻔하다.

쌀뿐 아니라 농업이 주는 보이지 않는 혜택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아름다운 강산과 경관, 맑은 공기, 깨끗한 물과 산천초목이 우러나는 향기, 국토의 균형적 발전, 전통문화의 보전과 지역사회 유지 등의 보이지 않는 공익적 기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윤석원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연간 20조원을 육박할 것이라며 국민 1인당 주는 편익은 연간 50여만원 정도로 농촌을 지키는 것이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세금부담을 경과시키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농업을 포기하는 것은 이 같은 공익적 가치를 버리는 것과 같다. 또 농업과 농촌의 붕괴
는 심각한 도시문제를 양산하게 된다.

국민의정부 초대 농림부장관을 지낸 김성훈 경실련 대표는 농업의 다원적 가치는 식량생산뿐 아니라 농촌이 역사, 문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 복합적 기능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농촌과 농업을 지키는 것은 생태계뿐 아니라 문화전통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농업이 없는 국가, 농촌이 없는 도시, 농민이 없는 겨레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며 농업은 국가와 민족형성의 최소 필요충분조건이고 국정철학과 비전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식량정책 독자적으로 처리하자

자운영 만발한 논들이 어느덧 하나둘 갈아엎어지고 논물 가득히 출렁이더니 어느새 노랗게 물든 논두렁. 정부에서 수매값을 낮추든지 말든지, 쌀 관세유예화 협상이 진행되든지 어쩌든지 아랑곳하지 늙은 농민은 못내 만족스러운지 연신 논두렁을 둘러본다.

비록 예전처럼 동네 어귀 당산나무 그늘 아래에서 모내는 집 새참 내오는 것을 기다려주는 동네 상할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그래도 여전히 추수날은 농민에게는 최고의 중요한 날임에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조상들은 모내는 날을 혼례와 함께 가장 큰 일로 삼아왔으리라.

그러나 이제 이런 날은 일장춘몽일까. 연일 보도되는 방송은 쌀농업도 변해야 한다며 농민들의 노력을 촉구하는 말로 시커멓게 타들어 간 가슴에 대못을 박아댄다. 

지금도 매년 40만명 이상의 농촌인구가 도시로 이주하고 있는 처지에서 쌀수입에 따른 가격하락은 결국 농민들을 농촌에서 몰아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농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박웅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세계는 지금 자유무역협정에 의한 지속적인 시장개방 확대와 기상이변으로 인해 식량수급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세계 곡물재고량이 30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때문에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농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식량자급률을 끊임없이 높여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가까운 일본의 경우 식량자급률의 목표치를 법으로 정하고 의무적으로 자급도를 높여내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식량안보의 경험과 대가를 혹독히 치른 경험이 있다. 지난 1980년 벼농사 대흉작으로 국제 시가의 두배가 넘는 가격에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전례가 있었다.

때문에 식량자급률이 26.9%로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고 식량의 절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조건에서 자급자족을 통한 식량안보가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분단된 우리나라현실에서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 반듯이 지켜야 하는 주권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국정을 안정화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국가의 안보와 주권에 관한 것은 그 어떤 국제적 규약보다도 우선하며 이에 대한 규제를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박 위원장은 당면한 농업협상과 쌀 관세유예화 협상은 농산물의 자유로운 이동을 뛰어넘어 일국의 정치,경제적 운명까지 침해하고 통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세계화의 가면 속에 숨겨져 있는 식량주권 침탈에 대해 당당히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량주권을 잃어버리게 되면 정치적 주권도 없다는 의미일 테다. 미국 쌀을 주식으로 중국 김치를 반찬으로 먹으면서 민족을 논할 수도 통일을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식량주권을 스스로 지켜내면서 농민들의 피땀과 고생을 덜어주고 우리의 진정한 정치주권까지 지킬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석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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