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까맣게 잊혀질 정도로 연탄은 우리 일상과 멀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19만 가구는 연탄에 의지해 겨울을 나고 있다.

요즘 누가 연탄을 땔까. 우리 기억에서 잊혀질 만큼 얼마 전까지 연탄은 우리 일상과 한참 멀어졌다. 하지만 없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겨울을 나는 귀한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여진 연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얼마나 뿌듯하기만 한지.
연탄으로 구들을 데우며 살아가는 사람들. 곳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연탄이 있어 냉엄한 겨울을, 가난한 마음을 늘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연탄값 300원도 아쉬운 이웃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주택이 즐비한 언덕배기를 돌아 가파른 경사길을 한참 올라 맞닥뜨린 허름한 집. 8평 남짓한 작은 집에는 조길순(가명·72)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단둘이 지낸다. 10년 전만 해도 남부럽지 않게 지냈지만, 아들 사업에 보태주느라 퇴직금까지 다 날리고 겨우 이곳을 마련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쭉 연탄에 의지해 긴긴 겨울을 이겨내오고 있다.
“집이 아주 오래되고 낡아서 단열이 안돼. 겨울이면 외풍이 너무 심해서 집에서도 옷을 두텁게 입고 있어야 해.”
하지만 할아버지는 두 노인네가 그나마 편히 발 뻗고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지금도 다행이라고.
제작년 까지만 해도 할아버지는 경비 일을 하며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다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몸이 아파 전혀 일을 못하고 있다. 할머니가 학원에서 청소 일을 하며 버는 45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다. 정부의 생활보조를 받고 싶어도 아들이 있어서 자격이 안 됐다.
“아들이 있어도 뭐, 다들 형편이 어려워서 지식구들 먹고 살기도 허덕거리는데…”
교통사고의 후유증일까. 할아버지는 그 이후부터 겨울이 되면 더욱 힘들다. 조금만 추워도 온 몸이 쑤시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름보일러에서 연탄보일러로 바꾸는 가정이 크게 늘고 있다.

“몸이 이렇게 아프니까 하루종일 불을 때야 하는데, 어디 기름으로 감당이나 하겠어. 다행히 연탄이라도 때니까 생활 유지하고 사는 거지…. 연탄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연탄도 부담이 돼. 누가 이렇게 달동네에 열장 스무장 배달하나. 못해도 100장씩은 해야 갔다주지. 외상도 안되고 한 번에 돈을 치러야 하니까….”
그나마 다행일까. 올해 연탄나눔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연탄을 후원받아 할아버지 근심이 조금 덜어졌다. 
중계 본동 달동네. 비탈진 골목에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손으로 밀면 쓰러질 것 같은 집들. 곧 재개발 예정지다. 이곳 골목골목을 들여다보면 하얗게 타고난 연탄재가 눈에 많이 띈다. 가지런히 쌓여있는 모습에 지난밤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따뜻했겠구나라는 생각을 품어보게 한다.
30년 동안 이곳에 살며 연탄을 때 온 김모 할머니. 동네사람들이 연탄 때니까 좋겠다고 부러워한다며 말을 풀었다.
“다들 편하게 살라고 기름보일러 놨는데 지금은 기름값 무서워서 못 땐다고 난리야. 낮에는 안 틀고 밤에만 잠깐씩 때는 거야. 밤에도 전기장판 깔고 자는 사람이 많아.” 
하지만 돈은 아낄지 몰라도 그 수고가 만만치 않았다. 재개발지역이다 보니 연탄보일러가 아닌 재래식 연탄아궁이다. 따뜻한 물이 따로 나오는 수도도 없다. 연탄 아궁이에 물통을 얹어 놨다가 그것으로 세수도 하고 빨래를 한다. 
“아궁이에 큰 물통을 얹어 놓다보니 연탄을 갈 때마다 그것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일이야.”
하루 세 번. 이젠 힘이 없다는 할머니에겐 조금 무리다.
“지난 11월에 연탄 다 떼어 놨어. 250장. 하루에 석 장씩 시한 내내 춥지 않게 지내려면 500장은 있어야 하는데, 한 번에 떼면 돈이 부담 되서 우선 이것만 떼어 놨어. 한 번 더 들여 놔야해.”
두 아들이 직장생활을 해 도움을 주지만, 벌이가 썩 좋지 않다. 그러다보니 할머니에겐 연탄도 부담이었다. 더군다나 사는 동네가 바로 언덕배기 끝. 골목골목을 따라 한참 울퉁불퉁한 시멘트를 깔아놓은 길을 올라가야 한다. 위까지 가져다주는데 한 장당 400원. 차가 집앞까지 못 가 지게로 일일이 지어다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낮은 곳은 조금 더 싼데, 우리 집은 높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 사람들도 고생하는데 연탄값 때문에 불만은 없어. 어차피 연탄집이 한 동네 있으니까 크게 걱정은 안 해. 떨어지면 그때 사다 때면 되니까.”
 
“아껴서 어디 남 주나요!”
그동안 기름보일러를 이용하다 올해 다시 연탄을 사용하고 있는 이순덕(56) 씨.
“갓난아이가 있으니까 집이 따뜻해야 하는데 기름은 하루 종일 못 때잖아. 추울까봐 올 가을에 미리 손 봤어. 그동안 기름을 두 드롬씩 땠는데, 올해 더 기름값이 올라서 돈이 얼마나 들지 몰라서 겁나더라고. 한 드롬에 지금 17만원이야. 아무리 아껴서 때더라도 겨울 나려면 두 드롬은 족히 가져야 하는데, 그게 얼마야.”
겨우내 얼마나 땔지 몰라 이씨는 일단은 100장 들여놨다. 15년 만에 다시 쓰는 연탄. 옛 생각에 느낌이 새롭단다.
“전에는 먹고살려고 일 다니고 하다보니 불도 자주 꺼쳐먹어 살리느라 애썼지. 자다 여탄 가느라 고생도 많았고 게다가 옛날에는 연탄 한 장 아끼려고 벌벌 했지. 한참 연탄 아낄 때는 불구멍도 거의 막아 놓고 썼어. 그러다보니 가스가 많이 생겨 냄새도 심하게 났어. 활활 안 타니까. 지금처럼 질이 좋은 것도 아니고. 과거에 비하면 세상 편해져서 이게 일인가 싶어. 하루종일 때니까 방이 더 따뜻해진 것 같아.”
중계 본동 달동네. 이곳에서만 30년을 산 그. 이 지역은 연탄 때는 곳이 많다. 1700가구 중 300가구 이상이 이용한다고.
“재개발지역이라 벌써 웬만한 집들 다 팔렸어. 주인이 살기보다는 대부분 세 사는 사람들인데 더없는 사람들이지. 그러다보니 연탄 때는 사람도 많아.” 
그는 경기가 좋아져서 젊은이들이 취업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못 사는 사람 없이 살았으면 좋겠는데…. 올 겨울 연탄보일러도 들여놨으니까 난방비 걱정도 덜었겠다, 자식들 건강하게 하는 일도 잘되고 그랬으면 좋겠어. 뭐 더 바랄게 있나.”
서울 왕십리에 사는 이문선 할아버지. 40년 동안 한 번도 기름보일러인적 없다. 웬만큼 산다고 치면 다들 보일러로 바꿀때 할아버지는 고집했다. 집도 옛날식 한옥이다. 할아버지는 별 불편함 없는데 굳이 왜 바꾸냐는 거다. 거기다 가격도 싸고. 할아버지 고집 덕에 그동안 할머니가 연탄을 가느라 고생을 해왔다.
할아버지는 “이런 고생도 안하고 어떻게 살아. 연탄가는 게 뭐 힘들다고. 하루 두 번인데. 사람이 그것도 안하고 어떻게 살아”고 말한다.
겨울을 맞아 할아버지는 연탄 500장을 들여 놨다. 다른 집에 비해 오랫동안 연탄을 때오다 보니 연탄을 들일 장소도 넉넉했다.
“요즘은 그래도 장사 잘 되지? 이런 때도 있어야지. 그동안 힘들었잖아.”
할아버지는 배달아저씨에게 근황을 묻는다. 오늘 아주머니가 몸이 불편해 혼자 나왔다. 혼자 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리자 할아버지가 직접 같이 팔을 걷어붙이고 날랐다.
앞으로도 연탄을 땔거라는 할아버지. 그가 연탄을 고집하는 것은 젊은 시절 고생때문이다.
“지지리도 고생했지. 연탄 한 장 없이 냉골에서 지냈던 때도 있어. 요즘 사람들 아까운 줄을 몰라. 누가 하나 좋다고 하면 우 하니 바꾸고. 젊은 사람들 너무 어려운 거 몰라. 다들 세상 물정도 모르고 까부는 거야. 우리 보고 보릿고개, 배급 등 얘기 한다고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린 다 이런 시대 겪어서 그런지 뭐 작은 거 하나도 그냥 버리기 아깝더라고. 거기다 석유 한 방울 안나오는데 무슨. 연탄으로도 겨울에 얼마나 따뜻한데. 서민은 서민적으로 살아야지!”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40년을 살았다. 연탄불로 1남 3녀를 키웠다. 연탄불로 물을 데워 씻기고, 빨래하고. 그러다 보니 더 애착이 가는 지도 모르겠다. 

화훼농가·식당에서 이용 늘어
연탄이 사랑받는 곳은 비단 가정뿐만이 아니다. 최근 일반 식당이나 화훼 농가에서도 많이 애용되고 있다. 특히 화훼단지나 비닐하우스 농작물을 하는 농가에서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효자다.
삼천리 연탄 김두용 상무는 “화훼농가에서 많이들 쓰고 있는데, 연탄이 일산화탄소를 많이 내보내잖아요. 들은 얘기지만 그게 꽃 색을 선명하게 한데요. 석유는 꽃 색상이 잘 안 나온다고 해요. 기름이 농민들 손을 덜어주니까 편리하긴 하지만, 농작물에 떨어지면 오히려 피해를 주고 위험다고 해요”고 말한다. 
양재동 화훼단지. 이곳에서 하우스를 경영하고 있는 이모씨. 끝 모르고 오르는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3대의 연탄 보일러를 설치했다. 이곳에는 그 말고도 인근 지역화훼단지에서는 연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고.
이씨는 “수출을 하는데 꽃 원가가 오르면 경쟁력이 떨어지잖아요. 냄새는 조금 나지만 그 정도 고생이야 아무것도 아니죠”라고 말한다.
미아삼거리 언덕배기에서 실내포장마차를 하는 김미숙(38)씨 부부. 전에 기름난로를 놨다가 몇 일 전 치웠다. 연탄난로를 들여놨기 때문이다.
“지난해 실직이후 포장마차를 문을 열었는데, 연료비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매상보다 연료비가 더 많이 나올때도 있었으니까.”
오전시간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없어 한가하다. 그 틈을 타 연탄을 들여놨다.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재기를 하고 싶다는 김씨 부부.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2학년 남매를 두고 있다. 연탄난로는 처음이라며 잘 사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 그는 임시적으로 300장을 배달 시켰다.
“불 붙일때 번개탄 먼저 놓고 해야 해요? 한번도 안 해 봐서. 하루에 몇 장이나 쓸까요? 이 정도면 한 달은 쓸까요?”
입 뒀다 뭐하랴. 김 씨는 배달 온 아저씨한테 이것저것 세심하게 물어봤다.
“괜히 마음이 뿌듯해요. 옛날에 추억도 생각나고. 염통에 손을 댔다 띄었다가 그런 거 많이 했잖아요. 시기가 조금 늦었지만 잘한 것 같아요.”
손님 중에 연탄보일러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틀전 6만 7천원주고 설치를 했다.
“연료비도 아끼지만 가게에 오시는 분들이 더 훈훈함도 많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다 서민들이 사는데, 이런 것 보면서 옛 추억도 생각하고. 술 한 잔씩 하며 고민들도 털어내고. 뭐 소원이 있겠어요. 경기가 좋아져서 다들 잘사는 거죠. 옛날처럼 다들 아껴서 잘 살게 됐으면 좋겠어요.”

처마밑에 차곡차곡 쌓여진 연탄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민들의 마음은 든든하다.

한숨짓는 이웃들의 마음 땔감
전국 19만 가구에서 연탄으로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다. 연탄을 사용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추억 속에만 있을 것 같은 연탄이지만 여전히 우리 이웃들 곁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
연탄은 단순히 연료이기 이전에 힘겨운 세상에서 한숨짓는 이웃들과 함께 하는 마음의 땔깜이다. 그만큼 연탄은 참 힘이 세다. 새벽녘까지 활활 타 따끈하게 달궈진 방구들처럼 서민들의 겨울이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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