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대를 맞아 사양산업이던 연탄이 최근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용량이 급증한 것에 반해 생산량이 모자랄 정도로...

쿵쾅! 쿵쾅! 쿵꽝! 쿵쾅!
새벽 6시. 서울 이문동에 있는 삼천리 연탄 공장.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연탄 찍어내는 소리가 무척 분주하다. 불을 찾아 날아드는 나방처럼 공장 앞에는 연탄을 실고 각 가정에 배달하려는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서 있다. 전부 새벽 6시부터 나와서 대기한 차들이다.
“오라이~! 아저씨, 얼른 차 빼요. 다음 차 들어오게! 빨리 시간 없어!”
한 차 가득 연탄을 실기가 무섭게 차량 순서를 관리 아저씨는 무섭게 차들을 내몬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때만 같았으면….

연일 경기가 어렵다는 맥빠지는 뉴스와 달리, 활기 있게 돌아가는 공장의 모습에 괜히 사람들의 마음은 더 씩씩해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양사업의 대표주자로 꼽히고 있던 연탄. 언제부터인가 생활권에서 멀어지자 우리 머릿 속에서도 점점 잊혀져 갔다. 가끔 겨울이면 떠올려지는 구수한 추억의 흔적으로만 남은 채. 그런데 최근 고유가시대를 맞아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갈수록 경제까지 어렵다 보니 최근 연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연탄의 고마움 잊혀져서 아쉬워요”
“요즘은 물량이 딸려서 힘들어요. 연탄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적자를 줄이기 위해 시설규모도 줄여왔더니 지금은 원하는 양만큼 생산하지 못하고 있어요. 주문량에 비해 생산량이 못 따라갈 정도로 바빠요. 지난 9월부터 휴일도 없이 일하는 중이에요.”

공장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풀가동 중이다. 마치 물 만난 제비처럼. 삼천리 연탄 김두용 상무는 정신이 없다면서도 내심 기분은 좋은 모양이다. 얼굴에 연신 활기가 돌았다. 그는 지난 79년에 연탄과 인연을 맺은 후 25년간 연탄밥을 먹은 연탄맨.
“86년까지는 연탄 소비가 꾸준했어요. 한참 잘 나갈 때는 서울 시내에서만 하루 7백만 장에서 1천 만장까지 생산할 때도 있었는 걸요.”

연탄이 사양길에 접어든 건 지난 86년 이후. 당시 한참 주택 200만호 만들기 운동이 펼쳐지면서 전국 곳곳에 재개발 붐이 불었다. 그 과정에서 연탄이 기름보일러로 대거 바꿔졌다.
“정부 정책적으로 건축 설계시 기름보일러로 하지 않으면 건축허가를 안 내줬어요. 그바람에 매년 40%씩 급격하게 줄어들어요.”

연탄공장이 많을 때는 서울 시내만도 17곳이나 됐다. 지금은 이곳을 포함해 겨우 두 곳 남았다. 한 때 이곳도 급격히 연탄 소비가 줄어 문 닫을 뻔한 위기가 있었다. 그러다 IMF이후 가까스로 반전을 이뤘다. 경기침체로 사는 게 힘들다 보니 연탄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 2002년부터는 매년 약 10%정도 증가되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자원인 연탄. 김상무는 최근 연탄이 천덕꾸러기처럼 여겨지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요즘은 연탄이 가난의 상징처럼 보이고 있어요. 하지만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도 연탄이 없어서 나무를 땠어요. 68년에야 새마을 운동과 함께 고급연료로 연탄을 때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연탄은 지금 경제발전의 기초가 됐는데 그런 고마움들이 잊혀지는 게 너무 아쉬워요.”

최근 연탄공장은 협오시설 중의 하나로 꼽혀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많아 큰 애로를 겪고 있었다.   
“자기가 연탄과 거리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연탄공장 빨리 나가라고 아우성이에요. 냄새가 나거나, 소음을 낸다거나 등 피해가 크면 또 몰라요. 연탄가루가 날린다고 하는데, 전혀 안날린다고 할 순 없지만, 서울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이 정도 먼지 안 날리는 곳이 어딨어요. 무엇보다 아직도 연탄에 기대어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이웃들이에요. 이들에게는 여전히 필수품인데 이런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25년을 연탄과 함께 생활해 애착도 크지만 무엇보다 그는 이런 이웃들에 대한 사명감을 가졌다. 그러다보니 그는 국가 발전 전략상 연탄을 국가에서 관리,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 지원이 있기는 해요. 그러나 정부에서도 예산이 자꾸 들어가니까 갈수록 애물단지 취급이에요. 심지어 담당 한 공무원이 연탄 언제쯤 없어지냐고 묻는데 안타깝더라고요. 연탄이 재가 많고 일반 운송쓰레기보다 비용이 많이 들긴해요. 하지만 당장 발등의 불만 끄려다 보니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아요. 주위에 가난한 서민들이 얼마나 많아요. 이들한테 기름값을 다 줄 수 없잖아요. 게다가 이곳을 보세요. 얼마나 활기있게 움직여요. 연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에요. 연탄이 사라졌다면 이들은 또 다른 실업자가 되어 있었을 거에요. 나와 관계 없다고 그저 지나치기 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탄으로 힘을 얻는 사람들의 심정을 한번쯤 헤아렸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더럽고 힘들어 누가 이런 일 하겠어!”     
연탄을 만드는 사람들 뿐 아니라 각 가정에 연탄을 나르며 겨울 길목에 미리 군불을 지피는 사람들. 연탄을 실러 공장에 새벽걸음을 한 이종철(56)씨가 그런 이였다. 부지런하게도 그는 벌써 새벽에 한 곳 배달을 갔다 오는 길이란다. 지금은 오후에 배달할 연탄을 떼로 왔다.

“전에는 3~4만장씩 뗐는데 지금은 주문 들어오면 그때그때 떼어다 팔어. 전처럼 주문이 많은 것이 아니라서 상설가게를 만들기가 애매해 연탄을 쌓아둘 곳이 없거든.”

올해로 20년 째 연탄배달을 해 온 그. 4~5년 전부터 소비가 갑자기 줄어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구청에서는 연탄값 올리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가 봉사하는 것도 아니잖아. 350원씩 받아도 수지가 거의 안 맞아. 다행히 지금은 연탄난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럭저럭 유지가 되고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생활을 못 하지. 가용돈에 조금 보태는 정도야.”

게다가 연탄은 겨울 한철장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일을 겸업한다. 얼마 전 그 역시 양복가게 하나를 세냈다.

“이 일 하는 사람들은 9월에서 11월까지가 제일 바빠. 12월부터 2월까지는 꾸준하게 소비되다 3월부터는 줄어들어. 이것만 해서는 못 먹고 살지. 고향이 충북인데 어머님이 복숭아 농장을 하셔. 그래서 여름에는 농사짓고 있어.”
‘어휴~! 왜이리 차가 안 빠져.’
9시까지 배달을 가야하는데, 워낙 연탄을 실으려고 기다리는 차량이 많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오늘 남은 배달 장소는 냉면집. 매년 연탄을 넣어주는 단골집이다.

“아저씨 어서 와요. 지난 번에 사고 나서 얼굴 살이 쪽 빠졌네. 어떻게 몸 괜찮아요? 그렇게 무거운 거 들어도 무리가 안 될지 모르겠네.”
아주머니가 걱정할 만도 한 것이 보기에는 작아보여도 연탄 무게가 꽤 무겁기 때문이다. 한 장에 약 3.75kg. 집게로 한 쪽에 4장씩 드는데, 양 손에 총 8장 든다. 즉, 32kg을 한 번에 드는 꼴이다.
“팔이 떨어지는 거지. 원래 힘든 일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남는 것은 병뿐이지. 한번 하고나면 힘들어서 맨날 못해.“
나이가 들어서인지 열 발자국만 움직이면 되는 거리인데도 그는 힘에 부쳤다. 게다가 올 봄에 교통사고가 난 뒤로는 더욱 그렇다고. 얼마 전부터는 작은 수레를 이용해 옮긴다.
“이렇게 다니니까 좀 낫네.”
“전에 일 많았을 때는 새벽 4시에 나오고 대중없이 했어. 시간이 없어서 배달을 못했을 정도야. 한때 작업이 끝나면 밤 12시라서 통행금지에 걸려서 차에서 자기도 했어.”
20년간 연탄에 얽힌 설움과 추억이 어디 그뿐이랴.
“고바위 같은 곳 올라 가려면 힘들어. 주로 세발차를 이용해 배달했어. 올라갈 때는 눈이 안 왔는데 내려올 때 눈이 와서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지금이야 도로가 넓고 매끄럽지 전에는 길도 좁고 울퉁불퉁해 연탄이 많이 깨졌어.”
그런 시기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흘렀다.
“이제 이 일 하는 사람 대부분이 최소 15년에서 20년 된 사람들이야. 이 사람들은 이것 놓으면 갈 곳도 없어. 그러니까 매달리는 거야.”

“힘들다고 배달 안하면 없는 사람 겨울 어떻게 나!”
조현철(50) 씨 부부의 아침은 5시부터 시작한다. 아침 7시. 벌써 한 곳 배달을 끝마치고 다음 배달을 하러 가는 길이다. 약속 시간과 늦을까 부랴부랴 발길을 옮겼다. 오늘 배달도 역시나 산 언덕배기. 차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힘겨운지 한 번 멈짓한다.
조심조심 한참 오르다 중간에 차를 세웠다. 골목이 좁아 더 이상 차가 못 가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미리 준비한 괴목을 괴어 놨다. 혹시 차가 미끄러질 것을 염려해서다.
배달할 집은 골목 안으로 2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거리. 지게를 지고 일일이 날라야 하는 거리치고는 꽤 멀다.
“높다고, 힘들다고 안 해 주면 어떻게 해. 그럼 없는 사람들은 겨울 어떻게 나라고.” 
‘흑-!’ 연탄을 짊어질 때, ‘휴~!’ 연탄을 내릴 때마다 구령이 절로 난다. 보기에는 쉬어 보이지만 한 지게에 약 26개 정도 짊어지는데, 이는 거진 쌀 한 가마니 무게를 넘는다.
“산동네는 집게로 못해. 다 지게로 해야지. 골목골목 해야 하는데 언제 힘들게 집게로 나르고 있어.”
오늘따라 골목이 왜 이리 길까. 한참을 옮기다보니 부부는 힘에 부치는지 말이 없다. 몇 번의 걸음이 고됐는가 보다. 막바지에 이르니 땀이 비오듯 한다. 추운 날 땀이 온 몸을 적셨다. 흐르는 땀을 장갑으로 닦는다. 얼굴이 금세 까맣게 됐다.
아주머니도 점차 걸음이 무겁고 늦어졌다. 짐을 내려놓으면서 거친 숨을 몰아쉰다.
“쯧쯧쯧. 짐 너무 많이 지는 것 아니야. 조금씩 해요.”
지켜보던 주인 할머니가 걱정스레 혀를 찬다.
“골병 들겠어. 그래도 딸 여우고, 이번에 아들 대학원 졸업한다면서요. 어구 이렇게 고생하더니 자식들 잘 키우고 큰 일 하셨네.”
자식 얘기가 나오자 지게를 내려놓는 아주머니 아저씨의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힘들지만 이제껏 견뎌 올 수 있었던 힘이었다. 자식들만 생각하면 늘 마음이 뿌듯하다.
“애들 아니면 이 일 안하지. 자식들이 착해 방학 때는 자기들이 나와서 도와줘. 돌봐주지도 못했는데 다들 기특하게 잘 컸어.”
자식자랑하면 팔불출이라지만, 한겨울 연탄만큼이나 든든한 걸 어떡할까!
날라도 날라도 끝이 없을 것 같더니 어느 틈에 끝났다.
“어이~ 힘들다!” 아저씨는 크게 한번 뱉어본다. 언제 준비했는지 할머니는 아주머니아저씨를 위해 커피를 내온다. 힘든 일을 끝내고 마시는 커피 한 잔. 이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아주머니 이제 겨울 준비 다해서 부자된 기분이겠어요.”
“그렇지. 옛부터 쌀, 연탄, 김장, 메주 쓰면 겨울 다 난다고 했잖아. 이제 내년에나 봐야겠네. 고마워.”

연탄 한 장. 무슨 비밀이 담겼기에 이렇게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걸까. 겨울을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이웃들의 주고받는 마음 때문일까. 연탄을 캐고 만들고 배달하는 사람들. 깊은 우물의 물을 끌어올리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 같은 이런 사람들이 있어 올 겨울도 이웃들의 마음은 따뜻할 것 같다.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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