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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한번으로 족하지 않겠어요?”대부분 양육비 지원 못 받아, 법적 제재 적극 활용하는 등 국가 차원의 제도적 해결 시급
김석란 기자 | 승인 2005.01.12 17:57

대부분의 이혼여성들은 홀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만 형편은 늘 어렵다.

5년 전 두 딸과 함께 집을 나온 이모(43)씨. 그는 어느덧 중학교에 들어가는 큰 딸로 걱정이 한아름이었다. 지금까지는 애들이 어려 그럭저럭 살아갔지만 앞으로 돈 들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남편의 외도로 불안해진 가정을 어떻게든 다시 꾸려보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폭력과 무관심, 집에 들어오지 않기를 밥 먹 듯 하는 남편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는 이씨. 무작정 딸만 데리고 집을 나왔다. 이씨는 처음에는 당장 내일이 막막했어도 마음만은 편했었다고.
“나 하나쯤이야 몇 끼 굶는다고 어떻게 되겠어요. 이제 사춘기에 막 접어든 아이가 걱정이죠. 한창 예민할 때인데….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에요. 아이가 상처입지 않고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잘 적응하도록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할 겁니다.”

양육비 부담, 살아가기 더욱 힘들어
결혼 7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아온 박주연(36)씨. 그이는 요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혼을 고려중인 그는 남편과 두어달 전부터 별거를 시작했다. 박씨는 남편과의 싸움과 냉전을 거듭하면서 집단심리 상담을 받고, 부부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각종 서적까지 닥치는 대로 읽어보았으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도리가 없어 ‘냉정하게 떨어져 생각해보자’고 시작한 별거는 자연스럽게 이혼의 수순이 되어버렸다.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하다는 박씨. 주홍글씨처럼 아로새겨질 ‘이혼녀’란 ‘딱지’도 싫거니와, 무엇보다 이혼 뒤 생계가 걱정되는 탓이다.
박모(52)씨는 77년 모 국립연구소 연구원이던 오모(60)씨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끊임없는 불륜을 견디다 못해 99년 이혼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은 “두 사람은 이혼하고 오씨는 박씨에게 위자료 3백만원과 재산분할금 6천만원, 매월 양육비 6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전업주부이던 박씨는 그 후 봉투 접기 등을 하며 홀로 가정을 꾸려나갔지만 경제사정은 어려워만 갔다. 아들(20)은 등록금이 없어 대학진학을 포기했고 둘째 딸(19)도 학업을 중단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남편 오씨는 위자료는커녕 양육비도 주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도록 박씨가 받은 돈은 단돈 28만원. 견디다 못한 박씨는 99년 4월 “양육비로 지급해야 할 돈을 빼돌리고 있다”며 오씨를 고소했다.
오씨가 재산을 동거녀의 명의로 이전하고 친구에게 고율의 이자로 수천만원을 빌려줬는가 하면 오씨의 옷장 서랍에서는 1천6백만원의 현금도 발견됐다.
서울가정법원의 정연숙 씨는 “이혼 남성들이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서도 양육비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한 이혼남은 돈이 없다며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다가 법원에서 한달간 감치 명령을 내리자 이틀 만에 돈을 모두 마련해 주고 풀려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혼 뒤 양육책임은 물론 경제적인 부담까지 외면해 버리는 남성들 때문에 이혼 여성들의 ‘살아 남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게 여성계의 지적. 법원이 인정하는 자녀 1인 당 양육비가 한 달에 30만원에 불과한 것도 내실 있는 자녀교육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최근 상담을 의뢰해온 600여 명의 이혼, 별거 여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절반 가량이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등 양육비 확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이혼 여성의 대부분은 경제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전남편이 지급하는 양육비와 위자료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이는 개인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혼여성의 78%가 전남편으로부터 양육비 지원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 받는 이혼 여성들의 자녀양육 지원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자녀들 또한 엄청난 피해 입어
한국여성개발원이 최근 이혼여성 12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응답자의 72%가 이혼 전과 비교해 현재의 생활이 더 만족스럽다고 밝혔으나 78%가 양육비 지원을 못 받고 있고, 70%가 경제수준이 하층이라고 각각 답변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이유로는 ‘전 남편의 경제적 무능’(43.4%)이 가장 많았으나 전남편이 경제적 능력이 있어도 지급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안 주겠다고 선언한 경우도 21.2%였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 ‘양육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응답자도 33.9%에 달했다. 양육비 중 가장 부담이 되는 부분은 학원비가 71.8%로 가장 많았다.
여성개발원 장혜경 연구위원은 “현행 제도에서는 양육비 지급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비양육자가 연락을 끊거나 재산을 숨길 경우 찾아내기도 힘들고 청구 절차도 복잡해 양육비 지원을 포기하는 여성이 많다”면서 “한부모 가정 자녀에 대한 학비지원, 임대 주택 보급 등 경제적 지원과 함께 양육비 청구에 대한 국가의 조력, 부양의무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규정 도입 등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여성에게 일단 국가가 양육비를 지급하고 나중에 부양의무자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는 ‘양육비 선급 제도’나 아동복지기관이 부양료 청구를 대리하도록 하는 ‘보좌제도’ 등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숙 변호사는 “양육비 불이행자에 대해 과태료나 감치처분 등의 법적 제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일본 법원의 조사관제도를 원용해 양육비가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지급을 강제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이혼 여성들은 이혼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 보다 홀로서기가 어려운 데다, 직장을 얻어도 늦게 끝나 자녀와의 관계가 어려워지는 등 대단히 힘든 상황에 빠진다.
이혼의 또다른 피해자는 물론 자녀들이다. 갑자기 이혼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몇 년에 걸친 갈등과 대립의 기간을 거치면서 서서히 나빠지므로 이런 과정에서 자녀들은 보이지 않게 엄청난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어린 딸을 둔 이혼 여성과 결혼한 백광현 씨. 그는 딸이 내년에 학교에 가야 하는데 아빠와 성이 다르다고 놀림이라도 받지 않을까, 상처받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결혼한 세 쌍 가운데 한 쌍이 이혼하는 우리 사회 현실에서 재혼 또한 당연히 늘고 있다. 여성의 재혼 비율은 91년 7.1%에서 2000년에는 14.5%로 2배 이상 높아졌으며, 특히 초혼 남성과 재혼 여성의 혼인은 91년 2.5%에서 지난해에는 4.9%로 많아졌고, 남녀 모두 재혼인 경우도 4.6%에서 9.6%로 크게 늘었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 가족구성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이혼 가정의 자녀 양육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혼 때 자녀에 대한 친권·양육권이 아버지에게 있는 것보다는 어머니에게 있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3배 이상 많았고, 현실적으로도 이혼 이후 친권자가 어머니로 지정된 경우가 아버지로 지정된 경우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문제는 가족법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어 수많은 재혼 가정들을 고통과 어려움 속에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민법개정안은 아직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국회 소관위원회인 법사위에서조차 의결은 커녕 상정도 방치돼 있다. 이혼이 늘고 있는 세태를 탓하기 전에 왜 이혼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가를 고민하고, 우리 사회의 많은 재혼 가정들도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누릴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삶 찾는 기회가 되기도
재정전문가 김명숙(39)씨의 2년 뒤 꿈은 연봉 1억원이다. 올해도 계획대로라면 연봉 7천만원은 거뜬할 것 같다. 97년 이혼 한 뒤 김씨가 가장 힘들었던 건 생계 문제였다.
“이혼은 여자한테 파산이에요. 나이 먹은 여자가 취직이 되나요? 이혼 준비하면서 운영하던 피아노 학원도 망했어요. 이혼서류에 도장 찍고 나니까 3천만원 빚만 남더라고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오뎅’도 팔고 호두과자도 팔았다. 학습지 교사도 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두 딸의 교육비를 생각해야 했다. 지난해 10월 증권사 시험에 도전한 이유다. 그는 지금 ‘주말 엄마’다. 열세 살, 열한 살의 두 딸은 경기도 안산 친정집에 있다. 그는 주말마다 친정으로 내려간다. “학교 한번 못 찾아갔는데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착해요. 무엇보다 엄마를 이해해줘서 고맙고요.”
새 삶에 차차 적응되면서 새로운 일에 자꾸 욕심이 생긴다. 틈틈이 골프와 스포츠 댄스도 배운다. 시민단체 활동에도 나가 보람도 찾는다. 이제, 연봉 1억원은 김씨의 꿈이자 계획이다. 그래야 아이들과 서울에서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억대 연봉자 정도라면 새로 시작한 직장 생활에도 자신감이 붙었을 때다. 김씨는 ‘재혼은 그 다음 문제’라고 했다.
혼자 사는 건 더 이상 흉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사는 여자’는 다르다. 여전히 사회는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본다.
권명희(33)씨는 올 봄에 화촉을 올린다. 여느 재혼 부부가 그렇듯, 남의 눈을 피해 슬쩍 이사짐만 옮겨놓는 식이 아니다. 주위 사람들한테 청첩장도 돌리고 웨딩드레스도 다시 입을 생각이다.
“자신이 있으니까 당당한 거죠. 다시는 결혼에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믿으니까요.”
부산의 한 대학 신입생이던 92년. 같은 대학 4학년이던 전 남편과 결혼했다. 그리고 98년 이혼했다. 94년에 낳은 아들이 눈에 밟혔지만 외도를 일삼는 남편과 사는 건 더 힘들었다. 이혼을 하니까 친구가 없어졌다. 친구들이 별 뜻 없이 내뱉는 말도 하나하나 가슴에 꽂혔다. 남편과 싸운 얘기를 하는 친구는 ‘넌 이렇게 싸울 남편도 없지?’라고 되묻는 것 같았다.
‘지독하니까 그렇게 됐지’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 친구들과의 모든 대화는 다 그렇게 들렸다. 외로움이 가장 컸다. 대신 인터넷에서 친구를 찾았다.
2년 전 독신 남녀들의 동호회 사이트 ‘쏠로닷컴(sso-lo.com)’ 회원에 가입했다. 특히 여성 회원 대부분이 권씨처럼 이혼 여성이라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너무 편했어요. 회원들과 함께 고아원에 봉사활동도 나가고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면서 다시 성격이 활발해졌어요.”
그는 이 사이트에서 새 남편 남기주(37)씨를 만났다. 남씨도 이혼한 경험이 있고 아들(17)도 있다. 하지만 솔로 모임에 나온 남씨의 됨됨이를 지켜보면서 재혼을 결심했다. 권씨는 남씨와 함께 재혼 전문 결혼 상담업을 막 시작했다.
“실패는 한번으로 족하지 않겠어요.”

새 삶 위한 철저한 준비와 각오 필요
행복의 시작인가, 불행의 씨앗인가. 어쨌든 이혼은 여성에게 있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제2의 경계선인 것만은 틀림없다. 많은 이혼 여성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또 다른 삶의 난관에 봉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혼 전 철저한 준비와 마음의 각오는 당연한 수순 일 것이다. 세상의 손가락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그런 각오 말이다. 이혼이 더 이상 삶의 흉이 아니기에, 주저 앉아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김석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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