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를 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아기들을 돌봐주는 갈릴레아 아기방. 표수진 기자가 낯선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불법체류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 비록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없지만 해맑은 미소만은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다. 이제 막 걸음을 떼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그들이 낯선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아이들이어서 그랬을까.
낯선 이국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서서히 사회로 첫 발걸음을 뗀 내 처지와 비슷해 보여서 인지 그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아기들을 돌보는 일에 경험도 없으면서 선뜻 기대감 하나만 가지고 나서기로 작정한 것이다.

“엄마처럼 정성껏 아기 돌봐요”

체험 첫째 날.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안산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아기들과 첫 만남이라 긴장했을까. 지하철만 타면 쏟아지던 잠도 유난히 오질 않는다. 서서히 아기 천사들과 만날 시간이 다가온다. 2003년 문을 연 ‘갈릴레아 아기방’. 이곳은 맞벌이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는 곳이다.
현관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려고 보니 ‘아기가 자고 있어요. 벨을 누르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붙어있다. 손잡이를 돌리는데 왜 이리 긴장 되는지….
거실에 들어서자 왜 그리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아기들이 또 있을까. 조막만한 얼굴에 쏟아질 듯 커다란 눈망울의 아기들이 우유병을 물고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낯선 이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서툰 한국말로 반갑게 맞아주는 노엘 신부. 그는 더운 나라 필리핀에서 4년 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몇 달 전부터 아기방의 운영을 맡고 있다는 신부님을 처음 봤을 때 외국인이라 내심 당황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서 한국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큰일이구나. 영어를 써야 하나. 한국말을 해야 하나.’
만감이 교차되는 찰라, 벽에 붙은 아기를 돌보기 전에 유의해야 할 사항이 눈에 띈다. 걱정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우선 손부터 씻고 TV 앞에 있는 아기들에게 다가갔다. 낯선 내가 싫은 것일까. 좀처럼 가까이 오지 않는다. 보행기를 밀어주고 가까이 다가가 안아주고 몇 번을 따라다니며 갖은 재주를 부렸더니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들과는 이렇게 친해졌는데 아기를 돌보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친해질지 정말 난감하다.
마리아가 아침 식사 후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며 청소를 하다가 고개를 내밀며 “아가씨, 커피?”라고 말한다. 얼마나 기다리던 말이었는지 냉큼 달려가 친해지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마리아와 제니는 필리핀 사람이다. 마리아는 한국에 온지 7년차, 제니는 4년차 된 한국 생활의 베테랑들이다. 이 두 사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갈릴레아의 여덟 천사들을 돌보고 밤에는 다른 한 사람이 아이들과 함께 한다고. 주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틈에 아이들이 모여 있는 거실이 시끌시끌해 진다. 서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싸움이 난 것이다.
마리아는 “니콜(22개월)하고 찰스(18개월)는 붙여 놓으면 안돼요. 니콜이 누나인데 항상 찰스가 니콜을 괴롭혀요. 그래서 싸운다니까요”라고 말한다.

아기들과의 첫 만남. 친해지기 위해서는 아기들과 함께 놀아주는 게 우선이다.

 “찰쓰~~, 스탑!” 마리아의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울음을 터트린다. 결국 찰스는 거실에 놓여있는 아기 침대 안에 갇히고 말았다. 마음 같아선 침대 위에서 꺼내 주고 싶었지만 찰스는 밖에 나오고 싶지 않은 가 보다. 작은 침대 안에서 다른 장난감에 금세 눈을 돌린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서 그런지 투정도 부리고 떼도 써야할 아이가 너무 쉽게 포기한다. 그런 찰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원칙대로 하자면 부모가 퇴근할 시간에 모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대부분 불법체류 신세에다 잦은 야간 근무로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때문에 불가피하게 월 15만원의 양육비를 받고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아기들 재롱에 푹~ 함박웃음이 절로~

갈릴리아의 이니고나 수녀는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볼 시간조차 없어요. 그렇다 보니 낳자마자 외국으로 보내죠. 보내는 마음이 어떻겠어요. 갈릴레아는 이러한 이들에게 양육의 걱정을 덜어줘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위한 곳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18개월까지만 아기들을 돌봐주고 있기 때문에 이주 노동자 아이들의 양육 문제는 여전히 미지수인 셈이다.
새침때기 니콜. ‘곰 세 마리’ 노래만 나오면 엉덩이까지 씰룩거리며 재롱을 피우는 이 아이는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세 살이다. 유아원으로 진급해야 하지만 불법체류자 신세인 니콜의 부모에겐 사정이 여의치 않다. 때문에 니콜은 얼마 있지 않아 고국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찡해 온다. 이미 갈릴레아를 떠난 아이들도 많다. 제니의 큰아들 크리스챤도 떠났고, 저스틴과 브리트니도 한국을 떠나 고국으로 보내졌다. 젖도 떼지 않은 아기만 고국으로 보낸 부부들에겐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고된 노동보다 더 큰 고통일 것이다.
몇 달 전까지 아이들을 돌봐오던 테스는 1월 20일 출산을 앞두고 갈릴레아에서 하던 일을 그만 두었다. 그런데 요즘 그에겐 고민거리가 생겼다.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아이를 바로 필리핀으로 보내야 할지 이곳에서 얼마간 키울 것인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테스는 아이와 함께 한국에서 머물고 싶지만 외국인 노동자라는 현실은 그리 호락하지 않다. 그런데 아이를 가진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테스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고.
주방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온다. 아기방에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방문하고 있다. 봉사자들이 들어오자 리오비타(18개월)와 니콜, 찰스는 신이 났다. 그들을 알아보는 것일까.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슬슬 봉사자들의 등에 업혀 잠을 청한다.
이윽고 신나는 점심시간. 아이들이 낮잠에 빠진 사이 오붓이 자원봉사자와 마리아, 제니가 함께 둘러앉았다.
“제니! 요즘 남편 뭐해요? 일해? 준은 집에서 그냥 있는 거야?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고 싶어도 불법체류자라 맘 놓고 해줄 수도 없고…. 제니가 많이 힘들지?”
 

필리핀에서 온 테스. 그는 요즘 양육 걱정 때문에 고민이 많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이를 돌봐줄 만한 기관이 없어 젖도 떼기 전 고국으로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자원봉사자 한명이 제니에게 묻자 제니는 힘없이 대답한다. 제니의 남편 준은 불법체류자 신세라 일정한 일자리 없이 불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마저도 얼마 전부터는 아예 끊기고 없어 걱정이다.
“이 주변에 공업단지가 있어서 외국인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경기가 악화된 다음부터 일자리가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단속도 심하다 보니 어디 불법체류자를 채용할 엄두나 내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제 나라도 못 돌아가고 안타깝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의 젖병도 소독하고, 세탁기도 돌리다 보니 슬슬 아기들도 낮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보송보송한 귀저기로 갈아 입히고, 각자 이름이 붙은 우유병을 하나씩 들고 다시 TV 앞으로 모여든다. 아이들이 아침부터 열광하며 보고 있는 것은 모 교육업체의 비디오. ‘제제와 미미’가 나와 올챙이 송을 부르면 순간 거실이 열광의 도가니가 된다. 아기 천사들의 재롱으로 아기방에는 함박웃음 꽃이 피어난다.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돌아가고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칠 쯤 갈릴레아 아기방을 나섰다. 마음 같아선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지만 잘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말에 아쉬움도 뒤로해야만 했다.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 있느라 피곤했을까. 전날과 같지 않게 몸이 찌뿌둥~하다. 그래도 우리 여덟 천사를 보기 위해서라면 이정도 쯤이야. 하루 동안 친해졌다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리오비타가 양팔을 벌리고 달려온다. 번쩍 들어 올리며 ‘설마 이 녀석, 오늘도 땅에 내려놓지 못하게 하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마리아는 “비타~ 힘들어. 내려와” 라며 아이를 설득하지만 안은 손을 풀 까봐 벌써부터 눈물이 글썽하다. 비타는 안아주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마도 매주 엄마와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해서 그런 게 아닐까.
부모들이 쉬는 날이라 집에 다녀온 씨제이(9개월)와 뿌뜨라(4개월), 그리고 이딴(5개월)이 아이들 무리에 가세하니 더욱 정신없다. 장난감 전화기로 니콜과 찰스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씨제이는 계속해서 안아달라고 보챈다. 앙게라는 며칠 전부터 부쩍 짜증과 울음이 잦아져 제니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왕방울만한 눈이 너무도 예쁜 앙게라와 함께

 
“원래 앙게라가 이러지 않았는데, 아프고 나서 힘도 없고 이상해요. 그래서 오늘 병원에 가보려고요”
노엘 신부와 제니가 앙게라와 감기에 걸린 이딴, 뿌뜨라를 안고 병원으로 향하자, 어수선 하던 아기방이 조금은 조용해졌다.
이니고나 수녀는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 불법체류라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어요. 받더라도 비싼 돈을 주고받거나 외국인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몇몇 지정병원을 찾아야 해요. 우리 갈릴레아 아기들은 천주교구가 외국인 노동자 전용 병원을 마련해 언제든 무료로 이용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런 시설을 마련하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가서 치료를 잘 받고 와야 할 텐데…. 같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아픈 아이들이 병원으로 떠나고 나자 우유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구르다 잠자리를 청하는 아이들. 그새 정이 옴팡 들었는지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도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기 천사들아! 건강하게 자라렴~!

아기들이 낮잠에서 깨면 먹일 우유를 준비하고 있는 표 기자.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는 없을까. 벌써 이별의 시간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덟 천사는 제 각기 자기 할 일에 바쁘다. ‘이 언니에게 가지 말라고 말이라도 할 줄 알면 좋으련만….’
짧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갈릴레아에서 보낸 시간들을 덕분에 왠지 앞으로 좋은 일들만 일어날 것 같다. 아마도 새해 초부터 여덟 명의 천사들과 함께해서일 것이다.
호기심 많은 왕방울 신사 앙게라, 먹을 것을 좋아하는 새침때기 니콜, 혼자 노는 것을 무척 즐기는 찰스, 떼쟁이 리오비타, 눈이 너무도 예쁜 이딴, 이제 막 뒤집기를 성공한 엠제이와 걸음마를 배우는 씨제이, 여덟 천사의 막내 뿌뜨라,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올올히 새겨본다. 지금쯤 단잠에 푹 빠져있겠지.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곳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들이 하루 빨리 안정된 생활의 부모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가슴 깊이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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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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