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간 지하철 2호선 봉천역에서 근무해 온 전창진씨는 지난 9년 동안 1만여 장의 승차권을 모았다.

“그저 욕심내지 않고 하나 둘 모았을 뿐인걸요.”
1만여 장의 승차권을 내밀며 쑥스러운 듯 말하는 전창진 씨. 에드몬슨 승차권부터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정액권까지 지하철 30년 역사가 그의 책장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하철 2호선 봉천역에서 22년간 역무원으로 몸담아 오던 그가 이렇게 승차권 수집에 나선 것은 지난 96년부터. 우표와 전화카드를 수집하다 문득 ‘등잔 밑이 어둡다’는 생각에 직업의 특성을 살려 승차권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표나 전화카드는 직접 찾아 다녀야 했어요. 곧 지치더라고요. 그러다 손쉽게 수집할 만한 게 없나 생각해 보니 바로 승차권이 있지 뭐에요.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되고, 또 이 분야만큼 자신 있는 분야도 없고요.”
그의 손길이 아니었더라면 폐지됐을 승차권들이 투명한 비닐 옷을 입고 액자에 보기 좋게 진열돼 있다.

“보는 이가 있어야 가치도 높아지죠”

74년도에 개통 기념을 맞이한 지하철 승차초대권.

‘이왕 시작한 일 제대로 해보자’라는 심산 이었을까. 그가 모아 놓은 엄지 손가락 만한 승차권이 한 장 한 장 얇디얇은 비닐 안에 얌전히 앉아 있다. 아마도 변질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그가 다년간 쌓아온 노하우인 듯 싶다. 이게 어디 열정만 있다고 될 일인가.

스크립해 놓은 앨범을 보다 보면 감탄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승차권에 관심 없는 이가 보면 다 똑같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의 눈에는 모든 승차권이 특별하다. 개통 기념권에서 시범운행을 위해 나온 승차권까지 용도도,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승차권을 발매하는 역별로 고유 번호가 찍혀있기 때문에 단 한 장도 같은 승차권이 없다. 정액권 한 종류만 역별로 모아 백과사전만큼 두툼한 책 한 권이 탄생했다. 노인들에게만 배부되는 무임승차권도 역별로 모아 두었다.

“다 쓴 승차권을 수거하고 폐기 처분 하기 전에 수집해요. 직업상 이런 점은 편리해요. 하지만 승차권을 구하기가 힘든 역도 더러 있어요. 그럴 땐 수소문하거나 기다리는 수밖에요. 너무 욕심을 내며 구하려고 든다면 그건 수집이 아니죠.”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모아 놓은 승차권으로 전시회도 열었다. 지난 해 8월 하루에도 수백 명이 오가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 한켠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는 승차권수집 동호회 회원들과 전시회를 마련해 많은 언론사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지하철 공사나 도시철도에서도 승차권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회를 마련한 이례가 없었다.

“전시회를 한 번 여는데 경비가 만만치 않아요. 누가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이들도 없고요. 회원들끼리 자비를 털어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지난 해가 두 번째 였어요. 호응은 좋은데 경비 때문에 자주 열지 못해 안타깝죠.”

78년 3월 9일 발행한 기념 승차권으로 당시 운임이 40원이었다.

 전씨는 승차권을 수집하는 애로 사항보다 사람들에게 귀한 구경거리를 자주 전해 줄 수 없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그래도 멀리 바다 건너 일본 사람들이 전시를 구경하러 왔을 때는 너무나 뿌듯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승차권을 보여주고, 동호회 회원들 간의 상호교류도 돕고 있다. 많은 양의 승차권을 보유하고 있어도 봐주는 이가 없다면 가치 또한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인 것이다. 그래서 인지 보기 좋게 정리하는 솜씨가 으뜸이다. 전부터 몸에 베인 습관이라지만 서랍 안에서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승차권마저도 노란 고무줄에 동여매어져 있다.

몇 해 전에는 모아 둔 쌈짓돈으로 승차권을 넣을 수 있는 전용 파일을 만들기도 했다.
“직접 전용 파일을 디자인해서 공장에 들고 갔더니, 거들떠도 안보더라고요. 첫 마디가 ‘안 된다’였어요. 손님인 내가 한참을 설득했죠.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만들어만 달라고요. 결국 승차권을 넣을 수 있는 폴더 5천 장을 만들었어요.”
단순히 승차권을 보기 좋게 넣고 싶었다는 그에게서 수집가만이 가지고 있는 꼼꼼함을 엿볼 수 있었다.

승차권 도감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파

 

기념승차권, 개통 기념권 등 전씨에겐 승차권 한장 한장이 모두 특별하다. 사진은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승차권.

 수집은 그 자체가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앞으로 누구든지 책을 통해 승차권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도감을 만들 계획에 있다.

“뭐든지 집착하고 욕심 부리면 안돼요. 도를 지나치면 들어올 것도 안 들어와요. 어떤 것을 수집한다고 생각한다면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죠. 결국 수집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내 손에 들어오게 돼있어요.”

지하철 역사 30년 동안 도감 하나 없었다는 게 늘 아쉬웠다는 전씨. 그는 수집이라는 그 자신만의 취미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즐거움을 공유할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지금 도감을 만들기 위해 틈틈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언제쯤 나오려는지…. 도감이 있으면 수집하는 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문의: cj56.hihome.com)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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