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송년회에서 광주 그릇쟁이를 만났다.

“도제수업을 오래 받으셨겠군요?”
“흙 구하고, 반죽하고, 빚고, 그리고 장작 패고, 불 지피는 일을 다 하시나요?”
특별한 일을 하는 특별한 사람을 만난 듯이 이것저것 캐물었다.

그릇쟁이는 서른 넘은 노총각이다. 대학 교수님께 배우고, 졸업 후 스승 두 분을 모셨다고 한다. 첫 스승인 교수님은 도예에 눈을 뜨게 했고, 두 번째 스승은 빚는 과정을 온몸으로 익히도록 했으며, 세 번째 스승은 철학을 가르쳤다.

지금은 스승 곁을 떠나 자신만의 방법과 철학을 연마하는 중이다. 제 모양, 제 빛깔, 제 철학이 담긴 자기를 만들기 전까지는 개인전이나 판매용은 생각 없단다. 이따금 뜻맞는 이들과 단체전시회를 열면 그것으로 족했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저녁 느직하게 작업을 하며, 쉬고 싶을 때는 쉰다.

직장인이 보면 무척 비상(非常)한 살림살이다. 생계나 결혼은 생각도 없고, 그릇 만들어서 팔 생각도 없으며, ‘나이 40에 일가를 이루겠노라’ 내딛는 발걸음은 분명 일상(日常)과 멀다.
그릇쟁이는 쑥스러운 듯이 말을 꺼냈다. 더디고 여리나 힘이 있다.
“도예가라고 하면 특별한 사람인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아요. 장인이 구운 도자기를 툭툭 깨느냐면 그것도 아니예요. 방송이 만든 허상입니다. 정성 들여 만든 그릇을 어떻게 그리 쉽게 깨버리겠습니까. 잘못된 점이 있으면 꼼꼼히 살피고 다시 굽지요. 아이를 나았는데 장애가 있다고 죽일 수 있습니까? 못난 작품도 잘난 작품도 소중해요.”
“도자기 굽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예요. 옛날에는 누구나 빚고 굽고, 자기를 쉽게 구할 수 있었어요. 가마에 아궁이 재를 가져다 주면 그릇을 줬지요.”

나는 그릇쟁이 말을 들으며, ‘도예’가 대신 ‘사회복지사’를, ‘도자기’ 대신 ‘복지’를 대입한다.
지난 날 기찻길 옆 움막에는 거지가족이 살았고, 아랫마을 공터는 바보형 땅이었다. 막대기로 땅을 툭툭치고 다니는 시각장애 아저씨는 동네 일에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셨고, 목발을 짚고 다닌 중학교 친구는 팔씨름장사로 이름을 날렸다.

사회복지학과 3년 배우고 방학 맞아 고향에 가니, 거지가족은 부랑인시설에, 바보형은 장애인생활시설에 가버렸다. 팔 힘으로 학교를 정복한 지체장애 목발친구는 어디 있을까? 다만, 시각장애 아저씨만 묘기처럼 자전거 타고 들에 가신다.
마을에 더불어 살던 이들이 외따로 떨어지니, 덩달아 사회복지사도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사회복지가 어디 특별한 일이던가? 사회복지사가 어디 특별한 사람이던가?

도자기처럼 삶 속에서 누구나 쉽게 접하던 것 일진데, ‘사회복지’하면 특별한 소명감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일이 되었다. 한편에서는 ‘특별한 소명감’이나 ‘전문성’을 내세워 복지를 높고 특별한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릇쟁이는 내게 말한다. 사람들이 일상(日常)에서 그릇을 빚을 때 도예가도 높아진다. 도자기가 비상(非常)해지면 도예가도 사라진다.
사회복지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 영역이 확고해지고, 사회복지사 할 일이 많아질수록 복지는 멀다.

복지는 멀고 높은 곳이 아니라 명절에 집집마다 오가는 소담하게 차린 그릇에 있다.

김은미 기자  

<저작권자 © 복지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