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제,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으로 떠들썩한 요즘. 하루의 지친 숨을 돌리며 쉬어야 할 밤 11시에도 노동자의 기계는 열을 내며 돌아가기 일쑤다. 누구나 잠들고 싶은 밤에도 생산목표를 위해 노동자들은 늘상 뺑이친다. 저녁시간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건 고사하고, 내 건강을 위해 시간을 쪼갠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 오히려 열악한 임금 현실로 인해 회사가 던지는 ‘야근수당’이라는 고깃덩어리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날로 노동강도는 더해져만 가는데….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크게 위협 당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과다한 노동강도가 맞물리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각종 직업병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02년 대거 발생했던 근골격계질환이 바로 그 예다. 최근에는 직업군이 더 다양해지면서 정신질환, 신종 유해물질 중독 등 새로운 직업병이 생겨나고 있어,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위험수위를 달리고 있다는 적신호다.

그러나 현행 산업재해보장제도는 이런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힘없는 노동자다. 현행기준에 없다는 이유로 산재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현 노동상황에 맞게 인정기준을 확대·개선하라는 요구의 목소리다.

최근 근골계질환을 앓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 치료를 해도 완치가 안돼 우울증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근골격계·정신질환 등 신종 직업병 생겨

천안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사업장 베스콘. 각종 렌즈와 기타 관련 상품을 생산하는 업체다. 일 특성상 모두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생산되어져 나오는 렌즈에 불순물은 없는지 눈으로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하루에도 외주 오더에 따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렌즈를 생산하는 작업은 하루종일 목과 손목, 그리고 허리를 혹사시킨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정모 씨.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훔친다. 남편한테 미안하고, 애들에게도 엄마노릇 제대로 못해 속이 상해서다. 몇 개월 전 산재신청을 해 요양중이지만, 요양을 해도 나아지지 않고 자꾸 무력해지는 정씨. 이제는 숟가락을 잡을 힘도 없다고.

살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해온 노동자들. 숟가락 하나 들지 모살 정도로 삶을 병들게 했다. 비단 정씨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이 근골격계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근골격계에 대한 노동자의 목소리가 높아져 산재로 인정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정하는 만큼 규제와 감시도 강해졌다는 것. 그 예로 경제계에서는 질병에 따른 적정휴일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배영희 간사는 “근골격계는 완치가 없는데도 상체가 아프면 한 달, 하체가 아프면 두 달, 이런 식으로 치료시기를 정하고 있다. 그 이상은 꾀병으로 몰아가 눈치를 주고 움츠리게 한다. 그러다 보니 산재 치료과정에서 우울증, 정신질환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심지어 치료를 받다 자살하는 사람까지도 생겨났다”고 말한다. 

지난 94년 자동차부품 공장에 입사한 박모씨. 2001년부터 허리와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공상하다가 길어져 산재를 신청했지만 회사에서는 산재 인정을 안 해 줬다. 어쩔 수 없이 이틀에 한 번씩 병원과 약국을 들락거리며 일을 했다. 하지만 갈수록 몸이 아파 쉬는 날이 더 많아졌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그는 점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했다. 갈수록 자신도 모르는 새에 주눅이 들어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게 발전해 정신분열로 이어졌다. 결국 그는 세상을 등졌다.
치료과정에서 오는 우울증이나 정신질환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근무를 하는 노동자 가운데에서도 정신질환이 크게 늘고 있다. 노동강도의 강화와 직무스트레스의 영향이다.

2월의 바람이 제법 차갑게 감싼다. 마치 꽁꽁 얼어붙은 그의 마음처럼. 모 통신회사에서 일해 온 이모씨. 언제부터인가 온 몸이 이유없이 천근만근하다. 그동안 밤낮으로 상품을 파느라 고생한 얼굴은 배추시래기 빛이다. 몸이 아파 갈수록 무력해지는 자신을 보면서 그는 다시 울음을 삼킨다.

몇 년전 꽃구름 같은 시절,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만도 그의 마음엔 장밋빛 청사진이 그려졌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건 절망감이다. 하루에 몇 개 상품수량을 정해 놓고, 못 하면 정리해고를 들먹이며 퇴직을 강요했다. 그러다 보니 심한 우울증에 빠져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다.

건강한노동세상 조성애 사무국장은 “과거에는 산재하면 외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요즘은 구조조정 속에서 일량이 많아진 반면 인원이 줄어들었다. 살아 남으려면 이걸 감수해야한다. 더군다나 장시간 노동과 관리체계가 더욱 강화됐다. 그러다 보니 직무스트레스가 커지면서 신경경정신질환, 질환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시철도 승무 노동자다.
도시철도노조 전홍준 승무본부장은 “도시철도의 경우 일인 승무다. 수많은 승객이 탄 열차를 혼자 운행, 책임져야 한다. 대부분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역으로 들어갈 때마다 혹시 뭐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마음이 편치 않다. 일단 사고가 나면 사고 종류와 규모와 상관없이 기관사들이 10분 안에 조치를 취한 후 출발해야 한다. 규정상 10분 이상 지체되면 경위서를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크다. 업무상 스트레스가 크다. 이게 쌓이다보면 정신과 몸이 약한 사람들은 신경장애를 겪는다.”

이런 근무 스트레스는 노동자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 벌써 도시철도 승무원 가운데 두 명이 공황장애로 자살을 했다. 하지만 다른 병도 아니고 신경정신질환이니까 쉽게 드러내기도 힘들다는 애로점이 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주변에 숨겨가며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노동자가 많다.

정신질환도 산재로 인정해달라는 목소리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 1월 7일 도시철도노조가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공황장애를 산재로 인정해달라는 집회를 가졌다

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 기관사 800명 중 84명을 대상으로 자체검진을 한 결과 조사한 사람의 21%의 기관사가 공황장애 및 불안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현장의 문제라는 증거다.

하지만 산재 인정이 어려워 그 고통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도시철도 승무원 7명이 산재요양을 신청했는데 이중 4명이 산재를 인정받고 3명은 인정받지 못했다. 사망사고를 겪은 사람만 인정됐다.
“과거 8명이 이미 사망사고를 받지 않은 사람도 산재인정을 받았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협소한 기준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산재시스템에서는 의사 진단이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신질환이 직업병이라는 의식은 적다. 지난해부터 노동부에서는 업무상재해인정기준에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 폭이 무척 좁아 기준확대가 요구되고 있다.”

산재 입증 노동자의 몫… 고통증가

정신질환 외에도 최근 과로사가 크게 늘고 있다. 이는 재해성 사고가 아니면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갑자기 사망하는 질환이다. 96년 이후 한국인의 사망원인의 1위로 꼽히는 질환으로 최근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현장을 떠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하늘로 출근하는 타워크레인 기사 윤필 씨. 항상 아래를 보며 작업을 하다보니, 목과 허리 통증은 이제 고질병이다. 온 몸이 외부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어 겨울과 여름은 말 그대로 엄청 춥고 덥다. 보통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작업시간이지만, 회사사정도 있고, 잔업 특별수당도 무시할 수 없어 보통 9시나 10까지 연장근무를 한다.

그러던 중 하루는 다리가 떨려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오기 힘든 날이 있는가 하면, 점점 눈이 보이지 않는 등 몸에 이상이 느껴졌다. 여느 날처럼 계속 일을 하던 중 하루는 너무 힘들어 조퇴를 하고 집에서 쉬는데, 눈앞이 깜깜해 지더니 정신을 잃었다. 종합병원에 가니 소뇌경색이란다. 과로로 인해 소뇌로 가는 혈관에 문제가 생겨 팔다리가 맘대로 안 되고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장은 치료비 걱정은 하지 말라지만, 그에겐 비단 치료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일을 못해 임금을 받지 못하면 당장 생계가 위협 당하기 때문이다. ‘과로로 일 못하는 게 내 잘못도 아닌데….’라는 생각에 산재를 요구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정색이다. 실업급여 타게 해줄 테니 사표를 쓰라고 위협했다.

과거 과로사는 단순 노화과정으로만 이해를 했다. 혹은 고혈압이나 당뇨 등 개인질환의 악화로 이해했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 교대제근무, 불규칙한 작업일정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다. 이에 지난 89년부터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인정기준이 급성으로 발생한 경우만 인정하고 있어 노동현실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건강한노동세상 조성애 사무국장은 “업무상 과로로 인정되려면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 전 3일 동안 연속적으로 일상 업무와 30%증가하거나 발병 일주일 이내에 업무의 양, 시간, 강도, 책임 및 환경의 변화가 일반인이 적응하기 힘든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현장의 상황을 배제하고 과학적 근거도 없고 막연한 규정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외면하는 기준이다. 대부분 과로사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고 만성적이다.”고 말한다.

과로사나 근골격계, 정신질환 등 신종 직업병을 둘러싼 쟁점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논리는 이런 질병을 다 인정해주면 도덕적 해이, 나이롱 환자 발생 우려, 또한 직접적인 외상이 없어 이들 질병과 직업과의 관련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이다.

그러다 보니 힘없는 노동자에게는 겹겹이 산이다.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산재를 입증해야하기 때문이다. 법에는 산재가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인정해야한다고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명목뿐이다. 현실에서는 노동자가 일일이 서류를 만들고 의사의 진단을 받아 인증기관을 찾아 다녀야 한다. 그렇게라도 인정을 받으면 그나마 괜찮다. 그렇지 못할 경우는 그동안 시간과 비용이 고스란히 무용지물이 된다. 그동안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는 더 밑바닥으로 내려간다.
“몸도 다치고 어디에 가서 일 할 수도 없는 산재 노동자들. 그동안 월급도 안 나오는데, 아프니까 치료는 받아야지. 생활고가 말이 아니다. 몇 달씩 카드 연체가 돼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갖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역으로 뒤집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법에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인증기관이 산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산재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더불어 ‘선 보장 후 평가’의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신종 직업병이 늘어나면서 노동계의 또다른 걱정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다. 갈수록 힘들고 어려운 일이 비정규직으로 전가되고 있어 정규직 노동자보다 산재가 잦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은 알 수가 없다. 워낙 이직율이 많고, 통계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비정규직 역시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은 있다. 하지만 생계와 맞물려 있어 실질적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비정규직은 1년 기준으로 계약을 한다. 산재를 신청하면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을 그만둬야 한다. 다음 계약을 못 한다. 다른 곳에 취직하려고 해도 소문이 나서 취업도 어렵다.”

비정규직 등 영세 노동자 보호작업 노력 절실

산업재해보상보호법이 올해로 시작된 지 41년째다. 그동안 개정을 통해 보험급여 대상자나 범위가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의 현실은 녹녹치 않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어의학과 임상혁 과장은 “산업재해보상보호법은 우리나라 노동현실을 고려했다기보다는, 과거 일본의 법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이다. 정신질환이나 근골격계에 대한 규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준들이 사회적 합의 속에서 현실에 맞게 개정되어져야 한다. 더불어 비정규직, 영세 작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비단 산재 인정기준확대만으로 될 것이 아니라, 근로환경의 개선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근로환경으로 생긴 병인데, 치료를 받고 돌아가도 환경이 그대로면 재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환경을 바꾸는 것이 회사의 이익과 밀접한 거라 쉽지 않은 쟁점이다.

대부분 노동자들의 통증은 습관화돼 무감각해지기 일쑤다.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산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하니까 아픈 거겠지 하고는 생계를 위해 웬만해선 참는다. 그러다 정말 몸이 녹초가 돼서야 병원에 간다. 병원에서 산재판명을 하고 나서야 산재라는 인식을 한다. 그렇게 해서 산재 신청을 하는데도 사업주는 발뺌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산재로 고통받는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끓고 세상을 등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건강하게 인간답게 일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의 관심이 절박하다.
글/김은미 기자 사진제공/한국노동보건연구소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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