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햇살 아래 풀빛 나뭇잎이 더욱 빛을 발해서 일까. 왠지 모를 생동감에 기분마저 좋아진다. 이런 맘이 변할세라 걸음을 재촉해 국립서울맹학교를 찾았다. 비록 앞은 볼 수 없지만 배움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걸어가는 아이들. 그들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싱그런 새싹이 아닐까. 이런 아이들에게 가슴으로 마음으로 햇빛을 비춰주고,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이들이 있다. 다름 아닌 특수교사들. 맹학교와 같은 특수학교뿐 아니라 초·중·고교의 특수학급, 복지관 등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사랑을 전하는 특수교사들의 삶은 어떨까.

손끝으로 점자 읽듯 마음까지 읽어줘

북악산 자락 아래 오롯이 자리한 국립서울맹학교. 300여 명의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꿈과 미래를 설계하며 차근차근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서울맹학교에서 지난 35년간 특수교사로 활동해 온 김기창 교장.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모습에 후덕한 미소가 인상 깊은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전국의 맹학교는 모두 12개로 1400여 명의 시각장애인들이 교육을 받고 있어요. 이들은 비장애인과 모든 교육과정이 똑같아요. 체육활동이나 점자교육, 일상생활에서의 보행, 사회적응 훈련이 조금 다를 뿐이죠.”

초·중·고의 맹학교를 졸업한 시각장애인들은 이료재활과정을 거쳐 대부분 침술원에서 침을 놓거나 안마사로 활동한다. 비장애들과 똑같은 교육과정을 거친다 하더라도 그들의 진로 폭이 넓지 않아 김 교장은 안타깝기만 하다.

“적성은 고사하고 할 만한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어요. 침술사나 안마사 일마저도 스포츠 안마에 치이고, 무허가의료행위로 치부되죠. 앞으로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직업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중도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 마련도 시급하다. 그 뿐만 아니라 중복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없어 매우 아쉽다. 이에 맹학교는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 마련에 노력할 계획이다. 단순한 가르침을 뛰어넘어 시각장애인들의 미래까지 함께 고심하기 위해서다.
18년간 일반 교직생활을 하다 맹학교에 온 지 6년째라는 구자영 교사. 특수교사로 재직하면서 제자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점자를 익히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점자를 배울 만한 교육과정이 미흡해요. 때문에 점자를 제대로 배우려면 개인적으로 배워야 할 형편이에요.”
점자가 까다로웠다는 그이지만, 학교 측의 배려로 특별 연수를 받아 지금은 책을 펴놓고 술술 점자를 읽어 내려간다. 손끝으로 책을 읽듯 아이들의 마음까지 읽을 줄 아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 한켠이 훈훈해 진다.

“최근 들어 시각장애인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피아노 조율사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에 해당돼 아쉬움이 많아요.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 마련으로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었으면 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선 우리 특수교사들이 더 열심히 뛰어야죠.”

“팔방미인이 따로 없어요”

하루종일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드디어 빗방울이 떨어지던 지난 5월 둘째 주 화요일. 광진중학교 특수반 아이들 8명이 궂은 날씨에도 아차산에 올랐다. 매주 어김없이 생태공원을 방문하는 아이들 곁엔 김덕윤 특수교사가 그림자처럼 함께한다.

“현장학습과 사회적응 교육을 겸하기 위해 마련한 수업이에요. 공원에서 숲 해설가가 다양한 동·식물의 생태를 설명해주고, 직접 식물을 만져보며 체험하죠. 아이들도 좋아해요.”

장애아통합학교 특수교사는 기초학습 지도뿐 아니라 사회적응 훈련 및 대인관계 기술까지 교육해야 한다. 때문에 팔방미인이나 다름없다. 프로그램 개발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자원을 끌어들이는 일도 모두 교사들의 몫이다.

“치료적인 부분이나 감각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특수교사가 개입하죠. 정신지체나 정신장애, 자폐증 아이들은 일반 아이들과 달리 발달과정이 안되거나 느려요. 때문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해요.”

등하교를 부모님이 함께하는 대부분의 장애아 중에는 대중교통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생태공원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오가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 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다. 첫 방문 때는 부주의하고 집에 가는 방법도 모르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서 척척 이다. 스스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는 과정 중 하나인 셈이다.
그러나 모든 특수학급 아이들이 광진중학교 아이들처럼 맘껏 현장학습을 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선 학교는 ‘야외 활동 중 예측할 수 없는 사고 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특수교사의 열의를 꺾기도 할 뿐만 아니라 암암리에 학교 행사나 수련회에 특수학급을 제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장애아 통합교육은 특수교사 혼자만의 몫이 아니에요. 학교, 학부모 그리고 학생이 함께 만드는 거죠. 아직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다양한 활동에서 제약당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정부에서 통합교육에 대한 정책적 시스템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워요.”

우리나라에서 통합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4년, 특수교육진흥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이는 그동안 이뤄진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의 분리교육만으로 장애아들이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2002년 현재까지 3950여 개의 특수학급이 있지만, 아직 특수학급 교사들이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아이마다 갖고 있는 장애가 모두 다른데다 아이들이 문제를 접할 때마다 새로운 반응을 나타내요.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없죠. 더구나 한 가지 장애가 아니라 중복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늘고 있는 추세에요. 때문에 특수교사의 과제는 끝이 없어요.”
특수교사의 생활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제를 풀기 위해선 특수교사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하는 것이다.

분야별 연계와 정보 공유 앞장서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서울시립정신지체인복지관 새싹 교실 안이 명쾌한 노랫소리로 울려 퍼진다. 창문을 통해 빠끔히 올려다보니 오른쪽으로 공을 돌리며 친구 이름 부르기를 하고 있다. 사회성 향상과 또래 관계 증진을 위해 ‘초등또래교실’에 참가한 장애아동들.

복지관에서는 24개월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장애아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데, 모두 3명의 특수교사가 있다.
이들 중 교육재활팀 박은주 팀장은 복지관에서만 11년째 활동한 베테랑 특수교사다. 장애아들과 수업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통합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복지관에서는 통합지원교육을 하고 있어요. 유치원과 복지관이 연계를 통해 대기자 중 어떤 유형의 장애아를 입학시킬 것 인지부터 함께 상담해요. 그리고 아이의 친구 관계나 사회적응 과정을 계속해서 서포트 해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유치원 교사와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갖죠.”

이는 교사와 장애아, 그리고 비장애아를 위한 통합지원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통합교육을 지향하는 유치원이 별로 없을뿐더러 복지관의 지속적인 피드백을 번거롭게 생각해 생각보다 수가 많지 않다. 더구나 경증장애의 경우에는 관심과 노력만 있다면 유치원에서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복지관 특수교사는 장애아에게 필요한 자원을 용이하게 연결해 줄 수 있고, 지속적인 관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복지사와 교사 간의 정보 공유 및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의 발달과정에 맞는 프로그램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

“복지사와 복지관 특수교사의 정보 공유와 연계만이 아니라 전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협력해야 해요. 장애아들은 학교에서 수업하며 만나는 담임교사와 특수교사, 그리고 방과 후 만나는 사회복지사와 복지관의 특수교사 등 하루에도 몇 명이나 되는 전문가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전문가마다 아이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모두 달라요. 아이들은 교사에 따라 다른 반응에 쉽게 지치기 마련이에요. 전문가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연계해야 해요.”

복지관 측은 지난해 한 장애아동 양육자인 할머니와 부모, 소아정신과의사와 유치원교사, 그리고 복지관 특수교사가 뜻을 모아 정보 공유와 함께 서로 연계한 적이 있다.
“아이의 상태를  논의하며 정보 공유를 위해 두 번 정도 만났는데 그 만남을 통해 아이의 상태를 잘 알 수 있었고, 적절한 개입을 하게 됐죠. 그렇게 되자 아이의 능력이 굉장히 향상됐어요. 각 분야별 정보공유가 중요한 만큼 전문가들의 협력이 필요해요.”

한편, 김 교사는 복지관의 특수교사들이 임용고시에 너무 치우치는 것 같아 때론 마음이 쓸쓸할 때도 있다. 앞으로 많은 후배가 복지관에서 특수교사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도록 정책이 변하면 좋겠다고 한다.

“복지관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어요.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아 다른 곳보다 많은 것을 연구할 수 있거든요. 정해진 틀이 없는 만큼 역동적인 프로그램도 수행할 수 있어 좋아요.”
풍부한 자원과 다양한 정보의 공유로 장애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복지관 특수교사들. 한정된 공간이 아닌 지역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단단한 초석을 다지고 있는 듯했다.

다양화 된 특수교육현장… 든든한 버팀목 되어

우리 사회에 전문화된 특수교육이 뿌리내린 지 50년. 70년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등 특수학교 위주의 특수교육을 시작으로 50여 개교, 350여 개 특수학급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특수학교 123개교에 특수학급이 3,900여 개에 달한다. 공교육 현장뿐 아니라 복지관 등 장애인들의 교육 현장 또한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특수교육에 대한 부족한 지원과 마인드는 현장 교사들의 장애아 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지의 날개를 꺾기 일쑤다. 그런 만큼 현장에서 교육하는 특수교사들은 부모의 마음을 더욱 진하게 닮아 가고 있는 듯했다.

다양화되고 있는 특수교육 현장에서 마음으로 가슴으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특수교사들. 교육의 영역을 뛰어 넘어 함께 세상의 문턱을 넘어서고, 이웃과 어울리며, 웃음을 잃지 않도록 좋은 선생님이, 보호자가, 그리고 친구가 돼주고 있었다.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특수교사가 있기에 장애아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질 것이다.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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