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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실버 에너지 ‘팡팡’예절강사 등 능력 발휘하며 황혼 누리는 노인들, 일자리 마련 위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 필요
표수진 기자 | 승인 2005.07.08 15:37

“할아버지 선생님이다!”
문이 열리자마자 병아리 떼 마냥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마구 달려와 할아버지 품에 안긴다. 팔을 잡아당기고, 다리를 붙들고 난리법석이다. 정신없는 아이들의 자리를 정리하기 무섭게 모두 일렬로 서서 인사할 채비를 한다.


“우리 인사를 해볼까요. 손은 앞으로 어떻게 모으라고 했죠? 자, 남자는 왼손을 위로하고,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한 채 공손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얼마 전부터 할아버지 선생님이 강습을 나오고 있는 이곳은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영이유치원. 이곳에서 구수한 옛 이야기와 재미난 율동으로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할아버지 선생님이 있다. 바로 김영국(65)강사가 그 주인공이다. 할아버지의 예절강의에 아이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능력발휘로 신바람나는 노후


김영국 강사가 아이들을 위해 예절 강습을 시작한 것은 올해 초. 영등포노인복지관과 영등포구가 함께 마련한 ‘노인일자리 사업 설명회’에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됐다.


“은퇴 후 할 일을 찾고 있었는데, 복지관에서 이런 사업을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망설임 없이 신청했죠.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서 좋아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이에요.”


다른 유치원에 비해 유난히 저소득층 아이들과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 많아 측은한 감정을 넘어 특별한 느낌까지 받는다는 그.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줄 수 있어 일하는 기쁨이 두 배로 느껴진단다.


“전에 가르치던 아이들은 청각장애아들이었어요. 그런데 이곳 유치원 아이들은 재잘거리고, 웃고 하니 가르치는 기쁨이 또 다르네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내 강의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해요.”


김 강사는 이곳뿐 아니라 꿈나무 어린이 집도 방문한다.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노인을 위해 복지관에서 ‘한글반’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교직생활을 하며 제자들의 결혼식에 주례를 자주 서곤 했다는 그는 보건복지부 산하 전례원에서 예절 지도사 1급 자격증도 취득한 전문예절강사다. 그때 취득한 자격증이 지금 수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사용하며 신바람 나는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이왕 시작한 일 제대로 해보자는 심산이었는지 얼마 전부터 아이들을 위해 구연동화도 배우고 있다. 노장임에도 건강함을 과시하고 나선 그의 모습에서 삶의 활기가 물씬 느껴진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쉽게 지치지 않도록 구연동화를 배워 재미나게 진행하려고요. 유치원 아이들뿐 아니라 장애아들에게도 이야기보따리를 풀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해야 할일도 너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아요.”


은퇴 후 쉴 틈 없이 아이들을, 또래 노인들을 찾아다니느라 피곤함에 지쳤을 만도 한데, 그는 그쯤이야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며 함박웃음이다.


“노인이라고 주눅 들지 말고 자신 있게, 당당하게 할 말은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또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새로운 출발도 하고요. 우리 노인은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에 풍부한 지식이 있고, 연륜이 있어 어떤 고난도 헤쳐나갈 수 있잖아요. 당당히 나서 우리가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계속해서 노력하고, 배움에도 게을리해선 안 되죠.”


열심히 뛰며 힘찬 노후를 보낼 계획이라는 그는 노인대학과 비슷한 기관을 만들어 배움에 갈증을 느끼는 장애인과 노인에게 명예 학위를 줄 수 있는 곳을 설립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나이는 분명 단순한 숫자에 불과했다.

“실버카페서 따끈한 차 한 잔 해요”


환한 미소로 손님의 발길을 당기는 이색적인 노천카페가 있다. 서울 마포구 신천로에 위치한 실버카페가 바로 그곳. 연일 취재진들로 장사를 이루는 이곳은 특이하게도 주인이 모두 열 명이다. 지난해 마포노인종합복지관이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마련, 1년 동안 이곳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이 모두 60을 넘긴 노인들이다.


마포노인복지관 황보민 사회복지사는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활동하고 있어요. 카페 운영에서부터 관리까지 모두 노인들이 하고 있어 인기에요”라고 말했다.


노인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카페이기 때문에 복지관에서 준비해 주는 재료비만 지급하고, 이익금은 열 명의 주인이 똑같이 나눈다. 노인 한 사람당 한 달에 기본 20여만 원이 돌아가는데, 한 평 남짓한 카페에서 순익이 대단한 셈이다.


나이도 잊게 할 만큼 화사한 미소로 손님맞이에 분주한 이춘자(64)씨. 지난해 실버취업박람회에 참여한 것이 계기기 되어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그는 나이가 지긋함에도 카페에서는 막내로 통한다. 
“전에 이런 비슷한 가게를 운영하다 그만 두고, 쉬고 있었죠. 지난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어 실버취업박람회에 나갔어요. 그곳에서 실버카페를 보고 한눈에 반했지 뭐예요.”


그 후로 단 한 번의 결석 없이 카페에 출근한 이씨는 요즘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달콤한 묘미를 맛보고 있다.
“복지관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우리 카페의 주 고객이에요. 카페에 와서 같이 인생도 상담하고, 말벗도 되고 그러죠. 어떤 분은 이렇게 일하는 우리가 부럽다고 말하기도 해요. 그러면 힘이 팡팡 솟아나죠.”


식구들은 그에게 ‘왜 사서 고생하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만나며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 카페 운영에도 노하우가 생기는 만큼 인생에서도 새로운 노하우가 쌓인 것이다.

 
“늘그막 일을 시작해서 힘들지 않느냐고들 물어요. 괜한 걱정이죠. 일을 하다 보면 그런 것도 금세 잊게 돼요. 다른 노인들도 소일거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내게 할 일이 생기고, 매일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만 해도 인생이 달라지거든요.”


이씨는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그 사람의 심정을 모른다고 했다. 그 역시 노인이기에, 노인이 진정 원하는 것은 따끈한 차 한 잔 보다 서로 건네는 미소와 관심이라는 말이다. 지나가는 노인의 안식처로, 쉼터로 복지관 툇마루 역할을 하고 있는 실버카페 안주인들에게 삭막한 도심 속에 사라져가는 이웃의 정과 마음이 전해온다.

 

 정부재정 아쉬운 노인일자리 사업


“여기, 내가 도울만한 일자리가 없을까? 힘을 써도 좋고, 경비도 좋아. 아무 일이나 좋으니 일자리 하나 줬으면 하는데….”


마포노인종합복지관 취업상담실에 들어온 신철승(73)씨. 좋은 풍채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해 보인다. 얼마 전까지 아파트 경비로 재직했던 그이지만 나이도 있고 3교대를 하기엔 힘이 달려 그만둔다고 한다. 이제는 남도 돕고, 자신의 일도 찾기 위해 평소 눈여겨 두었던 복지관을 찾았다는 신씨. 그가 바라는 새로운 출발은 가능할까.


“사설 경찰로 일하다 은퇴하고 바로 아파트 경비를 했어요. 식비며 교통비며 월 100만원은 받았는데, 용역업체가 끼면서부터 70만원도 채 못 받았죠.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돈벌이가 안돼 그럴 바에 그만 두려고요.”


막상 그만두고자 마음먹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복지관에 오면 보수도 괜찮게 받으면서 보람된 일을 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실망을 잔뜩 품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 준다.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데 반해 사회는 아직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지난 호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노동시장 진입기회마저 제한된데다 일자리까지 한정돼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복지경제연구원 정경배 원장은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정년퇴직 이후 건강하고 오래 사는 노인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노인의 경제력 및 취업률은 저조하다. 대부분 노후생활을 자녀에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인 만큼 활기찬 노후생활을 위해서 사회적, 경제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 노인일자리 사업이 정착될 수 있는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몇몇 참여자들로부터 볼멘소리가 들리고 있다.


한 노인는 “노인을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것에는 무척 고맙다. 하지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서 한정된 지원금의 부족함을 꼬집어 말했다. 그는 또 “이마저도 기간이 끝나면 그만두어야 할 처지다. 노인이 정부의 이벤트를 위한 배역으로 등장시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등포복지관 한선희 사회복지사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노인은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재참여나 연장이 가능하다. 지금 시점에서는 젊은이들과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새로운 노인일자리 분야의 개발을 위한 인큐베이터 기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국의 예산이 넉넉지 않아 그 실효성에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노인의 기호에 맞는 복지관의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노인의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참여에도 불구하고, 근시안적 대책마련에 급급했던 정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미래 긍정적 노인상… 권위의식 버려야 가능


전문가들은 “2050년 우리나라 생산인구가 2000년 71.7%에서 55.1%로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전체 인구 세 사람 중 한 명이 65세 노인으로 구성된다는 말이다. 우리 다음 세대는 아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노인부양비를 갚느라 평생을 허비하고 말 것이다. 더 이상 노인 일자리 문제를 단순한 노인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노인의 사회적 경험과 특성 등을 감안한 다양한 일자리 마련에 고심해야 한다. 충분한 예산을 마련해 지금과 같은 볼멘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인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야 말로 복지관이 다양한 노인 일자리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노인의 미래상을 마련하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하고자 하는 노인은 자신의 권위를 버려야 한다. 나이가 몇 살인지,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고, 새롭게 배운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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