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 오성혜(38)씨. 그는 낯선 땅 일본에서 평생의 반려자가 될 방글라데시 국적의 남편을 만났다. 젊은 시절 커다란 꿈을 안고 전문학교로 진학했던 두 사람.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던 그들은 낯선 타국 땅에서 만났기에 금세 친해졌다.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가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전문학교 시절에 만났는데, 말도 잘 안 통하고, 연고도 없어 외로운 터에 금세 친해졌죠. 그렇게 시작한 만남이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왔고요.”
지난 날을 회상하며 잠시 추억에 빠진 오씨. 그는 그렇게 지금의 남편과 아기자기한 둘만의 사랑을 싹 틔우게 됐다. 그리고 길고 긴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했다.

9쌍 가운데 1쌍이 국제결혼

일본에서 국적이 다른 남편과 국제결혼을 했고 11년 동안 살아가면서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는 오성혜(38)씨. 그런 그가 남편의 나라 방글라데시를 거쳐 우리나라에 온 것은 2년 전인 지난 2002년. 14년 만에 온 한국 땅은 낯설기만 했다.

“91년에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세월이 많이 변했죠. 당시만 해도 외국인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자주 눈에 띄더라고요. 그리고 인식도 많이 변한 듯했어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긴 하지만 남편과 아이도 한국에 적응도 잘하고 있어요.”

처음 한국 땅을 밟고자 마음 먹었을 때, 그가 가장 걱정한 것이 사회적 편견이라고. 게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딸 에리카(9)가 무엇보다 걱정이었다. 혼혈아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혹시 요즘 유행하는 ‘왕따라도 당하지 않을까’ 염려됐던 것이다. 하지만 에리카는 누구보다 빨리 한국사회에 적응했고, 똑똑하고 밝은 성격 탓에 지금은 친구도 많이 생겼다.

“일본과 방글라데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이가 한국말을 거의 못했어요.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고, 학습도 곧잘 따라가고 있어 너무 좋아요.”

이제 오씨 가족은 서서히 한국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단 그들뿐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과 결혼한 사례가 3만5천여 건이다. 1년 전인 2003년 보다 9700여 건 증가한 38.2%가 늘었다. 우리나라 결혼 부부 9쌍 가운데 1쌍이 국제결혼으로 탄생하는 꼴이니 그 수가 엄청나다. 더욱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의 경우 1990년 619명에 불과했으나 지난 2003년 1만9천여 명으로 10배나 증가했다.

국제결혼의 의미는 흔히 알고 있듯이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국제결혼이란 말이 차별성을 내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다문화가족’ 혹은 ‘이중문화가족’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때문에 국제결혼 가정에서 낳은 아이에게 혼혈아라는 말 대신 ‘이중문화가족의 자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제결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외국인 남성 노동자와 결혼하는 한국인 여성들이고, 하나는 한국인 남자와 결혼하는 외국인 여성들이다. 또 외국인 여성과 외국인 남성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도 국제결혼에 속한다.
이에 대해 배재대 이혜경 사회학과 교수는 “90년대 이후 국제결혼의 가장 큰 비중은 이른바 ‘수입된 신부’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나 일부 종교의 주도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앞으로는 유학인구의 증가 등 외국인과 자연스레 교제할 기회가 많아지게 돼 그 수가 급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학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외국인과 만남이 잦아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국제결혼이 늘게 되고, 부정적이던 인식도 차차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 버리세요”

지난 4월 첫째 주 일요일. 인천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바로 외국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들의 모임인 ‘다문화 가족공동체 하늘마음’의 정기모임이 열린 것이다. 지난 2004년 결성된 이 모임은 인근 학교에 나가 인권강의뿐 아니라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부부교육 및 상담 등 활발한 정보 교환을 하고 있었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상담팀 하종심 씨는 “처음 센터에 국제결혼 커플이 5쌍 정도 있었어요. 그 중 3쌍이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이혼하게 됐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문화적 차를 좁히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국제결혼 부부가 자연스레 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인권교육과 부부 상담 등을 위해 마련된 것이 ‘하늘마음’이에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모인 모임은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하고, 인근 학교를 방문 인권교육 강의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빠 나라 말 배우기’를 통해 아이들과 국제결혼 여성들이 쉽게 언어를 습득하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총 13가구가 모이는 이 모임은 대부분 10년차 주부들로 구성, 국제결혼 가정에게 인기다.

모임의 책임자로 있는 하씨 또한 국제결혼한 케이스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다양한 국가로 시집간 주부들이 남편의 나라와 친해지겠다고 자연스레 이야기하는 모습이 평범한 주부답다. 아이들 학교적응 문제에서부터, 주부들이면 빼놓을 수 없는 시댁 흉보기까지 여느 주부들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에 우리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편견의 잣대로 그들을 재 왔는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남편과 2년 전 단란한 가정을 꾸린 김지혜 씨는 “남편이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라도 사는 건 지금과 똑같았을 걸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괜한 걱정을 해요. 단지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과 결혼해 힘들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죠”라고 말했다.

‘인생은 특별한 것이고 그것을 개척해 나가는 것 또한 보람되는 일’이라 생각한다는 김씨. 그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솔직히 부담되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하종심 씨는 “과거 국제결혼과 혼혈아의 의미가 상당히 안 좋았던 게 사실이에요. 더군다나 나이 든 분들은 국제결혼을 예전의 미군들과 연결해 보는 시각이 많죠”라며 편견을 버리고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편견 때문에 웃지 못할 일들도 많이 벌어졌다. 하씨는 90년대 초반 지금의 남편과 결혼 전 데이트 할 때 함께 걷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사회의 시선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지은 사람도 아닌데,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따가운 눈총은 너무도 가혹했다. 심지어 커피숍이라도 들러 이야기를 할라 손 치더라도 안 보이는 구석자리를 찾아 앉거나 남편은 항상 등을 돌려 앉았다고 한다.
이제 이런 이야기도 모두 한낱 추억이 돼버렸다는 그들. 세월이 흐른 만큼 사회의 시선도 많이 바뀌고 본인들도 많이 달라졌다.

하늘모임의 정인주 씨는 “외국인 남편과 만나면서 자연스레 외국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결혼 전에는 저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을 거예요. 더구나 둘 사이에 아기가 있다 보니 남편의 나라가 내 나라처럼 느껴질 정도인 걸요”라고 말했다.

국제결혼 이주여성… 정부 대책 없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프란시스카(28). 이주 노동자인 그는 두 달 전 사내 연애 끝에 남편 곽준노(36)씨와 화촉을 밝혔다. 아직 한국말도 서툰 프란스시카는 남편과 함께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를 방문, 결혼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있었다.

취재를 요청했으나 그는 “아직 한국생활에 적응 중이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심스럽다”라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필리핀에서 온 엠마 씨. 1년 전 필리핀 교회에서 회사원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시집온 그는 며칠 전 학원 영어강사로 취직,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한국에 정착하고 있다. 그와 어렵게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뷰 거부 요청이 들어왔다. 그의 시댁에서 탐탁지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제결혼을 한 이주여성들과 인터뷰가 힘들었던 것은 아마도 최근 이주여성들의 급격한 증가와 더불어 이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부적응, 언어소통, 자녀 교육 문제 등을 집중 조명하고 있어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들의 심정이 짐작 가는 바이다.

물론 국제결혼을 위장해 한국에 들어오는 여성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일부 여성들 때문에 진정 가정을 일구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이 적잖은 피해를 보고 있다. 때문에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여성에 비해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여성은 그만큼 소외당하고 있었다. 이들을 위한 정책적 제도 또한 그렇다. 그동안 정부는 한국으로 시집온 여성의 수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보건복지복지부 여성정책과 관계자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실태 조사에 관해 연구, 조사 단계 중이며 대책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실태조사가 끝날 5월 이후 대책마련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푸른시민연대 이주영씨는 “개정된 국제법에 의한 혼인신고 후 2년 이상 국내에 주소를 두고 거주해야 국적을 신청할 수 있다.(국적법 제6조 2항) 때문에 이주여성이 인권적 피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예방하거나 보호할 대책을 내놓지 못한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달리 민간 부분이나 인권단체의 움직임은 활발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는 한글 교사팀을 꾸려 국제결혼 한 이주여성들의 가정 방문 및 상담을 실시해왔다. 그만큼 그들에겐 한글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전국에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은 수치다. 결혼하는 9쌍의 부부 중 한 쌍 꼴로 국제결혼 부부가 나온다는 시점에서 무엇보다 그들을 위한 제도적 마련이 필요한 대목이다.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일 뿐

푸른시민연대 이주영 씨는 “우리나라 결혼의 8.4%가 국제결혼일 정도로 한국인과 외국인의 혼인이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국제결혼을 자연스런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지만, 사회전반적 의식은 여전히 미흡하다. 때문에 편견없이 바라보는 성숙된 의식과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저 멀리 산 넘고 바다를 건너 부부란 이름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 남편이 외국인이던 한국인이던 그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있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배우자가 만나 가족을 이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가족형태로
굳게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 오늘과 같은 지구촌 시대에 자연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 중 하나며, 우리 사회의 변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그들을 나그네로 바라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얼마 전 화마가 휩쓸고 간 강원도 산자락 잿더미 속에도 푸릇푸릇 새 생명이 돋아난 것처럼 국제결혼 가정도 우리 사회의 고된 풍파를 벗어나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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