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유난히도 화사하게 비치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언덕길. 우리나라 최고의 내로라하는 미술관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김달진(50)씨를 만났다. 봄볕만큼이나 생기 도는 얼굴에 쳐다보는 이마저 웃게 만드는 환한 미소가 인상적인 그는, 지난 30년 동안 미술자료를 모아온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자료 수집가다.

“고등학교 시절 취미로 수집하기 시작한 미술자료가 평생 직업이 됐죠.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그 후 제 평생 천직이 된 걸요.”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그를 걸어 다니는 미술사전, 인간 미술 컴퓨터라고 불렀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평생 직업으로

지금처럼 화집이나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학생이 미술자료를 수집하기란 여간 만만치 않았을 터. 때문에 그는 여성잡지의 명화나 화보 소개집을 통해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청계천은 자료를 구하기 급급했던 그에게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었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미술관련 자료만 나오면 주인장에게 필요한 장만 뜯어서 팔라고 권유도 해보고, 떼를 쓰기도 했단다. 그렇게 서양의 18세기에서 20세기 현대미술사가 15권의 어마어마한 스크랩북으로 탄생했다. 서양미술사를 정리해 놓고 보니 그 흐름을 알게 됐고 자연스레 지식이 쌓이는 등 그만의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김씨가 우리나라 미술자료를 처음으로 수집하게 된 것은 지난 1973년.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 서울로 전학 와 처음으로 미술박물관을 들르면서다.

“당시 한국의 근대 미술 60년 전이 있었어요. 이중섭, 박수근 등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호기심을 자극했죠. 그런데 그들의 약력을 찾을 만한 데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그때부터 팜플랫을 모아오며 미술자료를 손수 수집하기 시작했죠.”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자료를 정리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그렇게 전시회장을 돌며 모아 놓은 자료를 갖고 신문사 등 대중매체를 통해 ‘김달진’이란 사람이 모은 미술자료를 공개하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수십 통의 연락 끝에 한 편집장에게 편지가 도착했는데 답은 ‘이 일로는 먹고살기 힘드니 다른 것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따끔한 충고였다. 그럼에도 그의 열정은 멈출 수 없었다.

번번이 쓰디 쓴 고배를 맛봤던 그는, 그 후 화려한 수집 이력으로 도서관 사서가 됐고, 월간 전시계사라는 미술 잡지의 기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 근대 작고 작가 인명록을 만들며 미술작가들의 자료카드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잡지에 작가들의 경력을 싣고 연재도 했다.

“한번은 작가의 작품을 보고 연재를 했는데, 작품을 이해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느낀 대로 글을 썼는데, 작가로부터 아주 혼쭐났지 뭐예요. 그때 ‘남의 작품을 함부로 얘기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인생에 있어 매우 좋은 경험을 했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을 거처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으로 역임하게 됐다. 모두 취미로 시작한 미술자료 수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다. 95년에는 ‘바로 보는 현대 미술’이란 책을 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미술에 대해 그동안 모아 온 자료를 바탕으로 꼼꼼한 연표와 수많은 참고자료를 싣고 있는 이 책은 새로운 미술 자료집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얼마 전 김씨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내건 ‘김달진 미술연구소’를 개소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미술자료를 모으고,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 전시장의 정보를 알아볼 수 있도록 무가지 ‘서울 아트 가이드’를 발행하고 있다.

“미술 자료를 수집하며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을 만큼 이 일이 천직이라 생각해요.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오랫동안 변치 않을 겁니다. 미술자료 전문가로 살아온 인생이 뿌듯하기만 한 걸요.”

기초부터 튼튼히 정리하고 파

“컴퓨터로 검색만 하면 그 사람의 약력부터 자료를 손쉽게 볼 수 있잖아요. 그러려면 기초 자료가 잘 정리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미술작가들에 대한 기초자료가 부족해요. 게다가 다른 나라는 자국의 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술 단체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없어 안타까울 뿐이죠.”

무엇보다 미술자료의 기초 자료가 정리되지 않은 현실이 가장 아쉽다고 전하는 김달진 씨. 그는 산더미 같은 미술자료를 눈앞에 두고도 더 많은 자료를 모아야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아트 가이드를 영문과 일문으로 번역해 외국에도 우리나라 미술품 전시 정보를 알려줄 계획이라고.
이 같은 노력이 있기에 ‘남의 그림을 모아 어떻게 먹고 살겠느냐’라며 손가락질하던 사람들도 그를 미술사 분야의 최고봉으로 여기게 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 전문인으로 거듭난 김씨. 그야말로 진정한 수집의 참맛을 아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누구든지 우리나라 미술정보를 쉽게 접하고, 전시하나를 하더라도 자료가 풍부해져 지금보다 쉽게 출품작을 고를 수 있도록 노력할거예요. 미술 자료를 수집하는 전문인으로 더욱 거듭나야죠.”  (문의: 달진닷컴 02-3217-6214 www.daljin.com)
글/표수진 기자

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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