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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억울한 피눈물 되어 흐르나곪을 대로 곪아 걷잡을 수 없게 된 재개발 잡음… ‘선 대책 후 개발’ 이뤄져야
표수진 기자 | 승인 2005.08.29 16:58


“아이고, 이를 어째~!”
새벽 4시 적막한 어둠 속에서 한 여자의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장사를 마치고 잠들던 찰나 옆집에 강도가 든 줄 착각한 양영숙(62)씨가 문을 빠꼼히 열고 밖을 쳐다봤다.

그 순간, 겹겹이 잿빛 옷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건장한 청년들이 가게 안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온갖 살림살이를 문밖으로 나르는 그들에게 대항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엉겁결에 한 사내의 팔을 붙들고 늘어졌는데, 갑자기 얼굴에 분말소화기 가루가 쏟아졌다. 그렇게 양씨는 2004년 11월 7일 정신을 잃고 말았다.

세입자도 모르는 명도 소송

“눈을 떠보니 조흥은행 본점 로비더라고. 나 말고도 누워있는 사람이 많았죠. 얼마 후 마스크 쓴 여자들이 들왔는데 아마 용역업체 여자 깡패일 거야. 몇 명이 와서 번쩍 들어올리더니 응급차에 실으면서 ‘병원에 데려다 줄 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요.”

을지로 국립의료원으로 실려 간 양씨.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뒤늦게 눈치채고 다시 집으로 정신없이 발걸음을 옮겼다고.
“사방에 전경이 삥 둘러싸고 있더라고요. 내 집을 코앞에 두고, 못 들어간다는 거예요. 여기저기 통곡소리가 요란하고, 밀고 밀리는 싸움이 벌어지는데, 세상에 선량한 시민을 도와줘야할 경찰이 가만히 지켜만 보다니….”

이렇게 그는 21년이 넘도록 일궈놓은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양씨는 억울하고 분통한 심정을 어디 하소연도 못한 채 화병만 얻게 됐다며, 그날의 악몽을 떠올렸다.

2002년 7월 이명박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서울시가 말 그대로 확 바뀌었다. 그 중 청계천 복원공사가 가장 핵심 사항이다. 환경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겠다며 시작한 복원공사로 47년 만에 숨겨졌던 청계천이 공개를 앞두고 있다. 오는 10월이면 이시장의 바람처럼 투명한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뛰어노는 그런 아름다운 실개천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서울 광교에서부터 마장동까지 청계천 복원공사 마무리 앞에 그저 시원한 물만 흘려보내면 모든 것이 끝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을까.

검은 돈이 오고 간 현장은 지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지난 5월 6일 양윤재 부시장이 청계천 재개발 사업과 관련 삼각·수하지구 재개발 시행사인 미래로 R.E.D(이하 미래로) 길용우 사장과의 수십 억대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철거민 김모 씨는 “우린 그렇게 될 줄 알았어. 아무도 우리 말을 안 믿었는데 이제 세상이 다 알게 됐네. 비리가 있지 않고서야 어디 감히 시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그것도 모자라 폭력까지 휘두르겠어요? 부시장만이 아니에요. 우리말이 틀린 지 두고 보면 알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2002년 9월부터 미래로가 지주들로부터 삼각·수하동 일대 땅과 건물을 야금야금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때 적게는 1억에서 많게는 3억까지 권리금을 내고 사는 세입자들과는 단 한 차례의 접촉도 없이 강제 철거가 자행된 게 문제가 됐다.

을지로 2-5지구 철대위 김창윤 홍보부장은 “지주들에게 세입자를 내보내면 토지 매입비 가운데 500만 원씩을 되돌려 준다는 조건을 달았어요. 지주들이 세입자를 내보지 않자 그 돈으로 용역을 사들여 온갖 짓을 자행한 거죠”라고 말했다.

결국 세입자들은 일언반구도 없는 상태에서 명도소송을 당했고, 모두 패소했다. 그 다음엔 무차별적 폭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떠올리기도 끔찍한 그날, 2004년 11월 7일 새벽 이후, 그들의 삶은 인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됐다.

날아다니는 새도 둥지가 있는데…

“안녕하십니까. 을지로 2-5지구 철거대책위원회입니다. 청계천 개발 자체를 반대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십시오.”

벌써 200일을 훌쩍 넘겼다. 삼각·수하동 철거민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시청 앞 광장에 자리를 잡는다. 자동차에 탑재된 스피커를 통해 억울한 사연을 핏대 세워 외쳐대지만, 메아리도 들리지 않을 뿐. 이제 마음마저 공허해 삶의 희망도 없어 보인다.

시위 현장 한쪽에서 반쯤 넋 놓고 바라보는 전재훈(64)씨. 은행에 다니다 정년퇴임을 한 그는 수하동에 인생의 마지막 주사위를 던졌다. 이곳저곳에서 빚을 얻고, 간신히 장만한 집마저 저당 잡히면서 카센터를 연 게 바로 2년 전 일이다. 들인 돈이 워낙 커서 적자만 내다 이제 제대로 재미 좀 볼까 하는 심산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가게가 송두리째 사라졌다.

“출퇴근하며 장사하는 사람이 많아 가게에 주인이 없었어요. 아침에 와서 보니 달랑 메모 한 장 남겨 놨더라고요. 내 인생을 모조리 가져가 버린 거죠. 지금 7개월째 이렇게 나와 있는데, 집마저 잃게 생겼으니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는 이 지대에서 가장 큰 피해자다. 때문에 여기저기 그의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고 했다. 업무집행방해죄, 폭행죄, 명예훼손죄 등 듣도 보도 못한 일로 불려다니기 일쑤라고.

“현장에서 언제 사진을 찍었는지, 내가 나와 있는 사진을 갖다 놓고 업무 방해를 했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중구청에 간 적도 없고, 중구청장을 욕한 적도 없는데 어느 날은 명예훼손을 했다는 죄명으로 불려간 적도 있어요. 피해가 커서 그런지 뭐든 날 걸고넘어지려 해.”

얼마 전 잃은 것을 찾아볼까 싶어 물품 보관 창고를 찾아갔지만 허사였다. 카 센터에 있던 고가의 기계들과 바로 옆 식당 물건들을 뒤죽박죽 섞어 놓아 엉망이 되고만 것이다. 남아있는 잔반과 쇳덩이가 뒤엉켜 녹슬어 버린 기계를 가져가려면 집회를 열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는 말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렇게 무너지고 말아야 하는 것일까.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 있으면서도 내복을 입어야 할 만큼 골병이 들고 말았다는 안윤자(63)씨 또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20년 동안 고치고 다듬어 일궈낸 가게가 한순간에 무너져 가는 모습을 아무 손도 못 쓴 채 지켜봐야 했을 심정이 오죽했을까.

“여기 삼각·수하동 일대는 식당, 인쇄업이 주 업종인데, 주인들은 여기사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내 돈 들여 수리하고, 다듬고 해서 일궈놓은 것들을 글쎄…. 입구엔 커다란 철문으로 막아놓고, 허가없이 지나가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공고를 붙여 놨더라고요.”

아직 건물이 안 팔려 여전히 장사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월세도 제대로 못 내는 처지라고 한다.
철거된 건물 안에 대책위 사무실을 꾸리고, 몇몇은 아예 그곳을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작은 가게지만 사장님으로 불렸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집도 절도 없는 나그네 신세가 된 것이다.
온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는 한 철거민은 “날아다니는 새도 둥지가 있어 밤에는 그곳에서 잠을 자는데, 사람인 나는 길바닥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게 말이나 되요? 세입자들에게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라며 울분을 토했다.

청계천 주변 재개발 문제, 끝이 아니다

철거민들은 중구청과 시청 앞에서 시위를 시작하며 개발업자와 시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양 부시장이 구속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놀란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미래로가 협상 없이 무차별 철거를 강행한 것은 바로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있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철거민은 시 관계자와 중구청 관계자를 만나 대책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시행사와 세입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철거민 윤행숙(36)씨는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청계천을 개발해야 하고, 개발업자 배만 불려주는 개발은 자행되어선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전재훈 씨는 “평당 3천만 원이던 땅값이 훌쩍 뛰었어요. 미래로가 건립한다는 건물은 애초 90m로 제한됐는데, 삼각동 부근을 기부채납하고 주거비율을 높이면 110m로 높일 수 있다는 거죠. 거기서 남는 이익은 고스란히 미래로에게 돌아가게 되요.”

결국 청계천 주변 상인들을 최대한 배려하겠다는 시의 약속은 뜬구름처럼 흘러갔다. 실제로 문제가 된 중구 삼각·수하동 일대 ‘을지로 2-5 정비구역’은 대한주택공사가 1995년부터 중구에서 사업시행자로 지정받아 도심재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90m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어 2003년 사업을 포기했다. 이때부터 서서히 미래로 측의 물밑작업이 시작됐다.

2004년 9월 시 주택국이 아닌 청계천 추진본부가 도심 공동화를 막는다는 이유를 들어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심부 발전 계획’을 수립, 고도 제한을 110m까지 완화했다. 이에 따라 미래로는 거기서 남는 시세차익을 쏠쏠히 맛봤다. 건설업계는 미래로가 얻게 되는 추가 개발이익이 1천 억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처음 청계천 복원공사 시작을 못 박았을 때부터 전문가들은 재개발 ‘잡음’을 걱정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일단 일을 벌여놓고 보자는 태도로 청계천 복원공사를 강행했다. 결국 대책 없는 개발로 인해 곪을 대로 곪은 청계천이 터지고 만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청계천변 재개발 사업은 구역별, 단계별로 진행되고 있다. 7곳의 재개발 구역 가운데 아직 개발이 이뤄지지 못한 곳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전재훈 씨는 “청계천 주변 상인들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삼각·수하동이 그 첫 번째 시작이기 때문에 중요한 싸움이죠. 개발이익을 환수해 개인이 아닌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도록 했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철대위 김 홍보부장은 “시행사가 정중히 사과하고, 상인들이 임시 영업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줘야 해요. 개발이익 중 일부를 사용해 현실적인 임차권을 보장할 뿐 아니라, 그동안 영업 손실과 물품피해에 대한 보상도 이뤄져야 하고요. 더불어 영구임대 주택을 마련해 달라는 게 우리의 바람이에요”라고 말했다.

선 대책, 후 개발 정책 마련해야

이렇듯, 삼각·수하동 일대 영세 상인들이 2·30년 간 일궈온 삶터가, 그들의 일생이, 근본도 모르는 개발업자의 한입에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굴비 엮듯 줄줄이 여기저기 비리 관계자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이 커질수록 상인들의 마음 역시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하다.

하소연할 곳도 없고, 보상받을 근거도 없는 철거민들. ‘억울한 시민의 눈물이 피눈물 되어 청계천을 흐를 것’이라고 분노를 토해내는 그들은, 오늘도 벼랑 끝에 선 절박한 마음으로 시청 앞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글/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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