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감이 잘 안 온다. 굶주림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어린 시절 반찬투정을 할 때마다 듣던, ‘풀죽도 없어 물로 헛배 채우며 살았다’는 아버지의 보릿고개 시절 얘기도 그저 고루하게 여기고 흘려 넘겼는데….

하지만 이런 일들이 비단 아버지의 과거 속 얘기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는 하루 한 끼, 아니 심지어 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먹지 못해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60억 인구 중 7명당 1명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니….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짊어질 수 있을까.

영국, 네덜란드, 호주, 홍콩 등 전 세계 20여 국에서 매년 이들을 돕는 기아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93년부터 매년 진행 중이다. 비록 하루지만, 함께 공감해 보고 싶었다. 6월 5∼6일, 6천여 명의 작은 마음들과 24시간 ‘굶주림’호에 올랐다.

30도 웃도는 날씨와 배고픔 이겨라!

6월 5일 오후 1시 경희대학교 안. 기아체험에 참가하려는 인파로 온통 북새통이다. 조를 배정 받느라 길게 늘어선 줄은 영락없이 피난민을 연상시켰다. 4629명의 학생과 가족 훼민파이터(famine fighter), 1351명의 대학생봉사자 등 약6천여 명이 참여하니 그럴 만도 하다.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캠프장에 입장하는 데만 약 3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날씨는 왜 또 그런지. 전날까지도 평상 기온이던 날씨가 갑자기 30도를 훨씬 웃도는 한여름 기온을 보였다. 땡볕 아래 있자니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체험도 하기 전에 진이 빠지는 듯했다. 내심 ‘하루 굶는 것쯤이야’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순조롭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난민캠프단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6개 난민촌으로 나뉘는데, 나는 남아메리카난민촌 F 240조에 배정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11명과 중학교 1학년 여학생 2명, 그리고 나. 이렇게 14명이 1박 2일 동안 한 식구가 됐다.

오후 4시 50분쯤, 생방송과 함께 기아체험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10, 9, … 4, 3, 2, 1!’
‘와∼!’ 훼민파이터들의 함성으로 드디어 굶주림이 시작됐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하니 무슨 특공대 마냥 왠지 모를 책임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그늘 한 점 없는 운동장에 그저 우두커니 앉아 굶는 일은 ‘고통’ 그 자체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갓 잡은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던 아이들도 하나 둘 입이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 잘 가던 시간도 이 날 따라 왜 이리 더디던지…. ‘휴∼!’ 나도 절로 한숨이 쏟아졌다. 

오후 8시가 되니 그제야 더위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오후 내내 뙤약볕에 발갛게 익어버린 아이들은 더 이상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참을 뿐이다. 그렇게 다들 지쳐갈 무렵, 대형 모니터에는 아프리카 오지 아이들을 담은 영상이 흘러나왔다.

겨우 성인 한두 사람 몫이나 될까. 하지만 작은 양푼 주위엔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살점 하나 없는 가녀린 작은 손들이 한두 번 오가니 밥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양푼 벽에 밥의 그림자라도 남아 있는 걸까. 이미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이지만, 아이들의 손은 끝없이 빈 그릇의 벽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먹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걸까. 활짝 웃어보였다.

‘핑-!’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돌았다. 영상은 아이들을 더 따라갔다. 영양실조에 걸려 제대로 서지 못하는 아이, 전쟁으로 다리를 잘린 아이, 약만 있었으면 금세 나았을 작은 상처가 곪고 썩어 다리 한쪽을 잘라내야 할 상황에 처한 아이…. 

‘어머…. 어떻게, 어떻게…’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더위도 배고픔도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그럴 줄은, 그렇게 끔찍할 줄은…. 먹먹해진 마음에 눈을 감았다. 놀러 온 게 아니었는데, 몸 편하자고 온 게 아니었는데. 덥다고 짜증만 내고 왜 이 체험을 하고 있는지 까맣게 잃어버리고 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천 원, 이천 원 작은 정성 너무 귀해요”

“안녕하세요? 친구들. 저는 월드비전 긴급구호팀 한비야입니다. 여러분들을 보니 지금 제 가슴이 무척 벅찹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그들의 생명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영상이 끝난 뒤, ‘바람의 딸’로 잘 알려진 한비야 씨가 나와 격려하며 제 3국의 소식을 전했다. 그가 참가자들을 바라보는 모습은 정말 희망을 꿈꾸는 듯했다.

“우리 친구들, 혹시 굶어 죽은 사람 본 적 있어요?  TV에서 말고 눈앞에서. 너무 굶주려서 뼈만 남아 숨쉬기조차 어려워 헐떡거리는 아이가 나에게 묻더라고요. ‘왜 나는 이렇게 굶어 죽는 거죠?’라고. 휴∼! 여러분 그런 질문에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가진 자들은 너무 많아서 주체를 못하는데, 지금 아프가니스탄 아이들 중 1/3이 기아로 고스란히 죽고 있어요. 이곳에 모인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이, 작지만 정성으로 모아온 천 원, 이천 원이 너무 귀해요.”
그는 우리를 한 번 쭉 보더니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가 2주간 영양죽을 먹으면 살아날 수 있어요. 그렇게 아이를 살리는데 드는 비용은 만 원 정도. 혹 여러분이 만 원을 모금했다면 아이 한 명을 살린 것입니다. 벼랑 끝 아이들을 살려낸 여러분. 정말 이 자리에 있는 한 명 한 명에게 너무도 감사하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한비야 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후회되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기아체험에 참여하기 전 나도 주변사람들에게 후원금 모금을 했지만, 이런 귀한 내용들은 쏙 빼놓고 했다. 거의 강탈수준이었다. 조금 더 성의있게 이런 귀한 의미를, 도움의 손길의 가치를 설명할 것을. 그리고 정말 고맙다고 말할 것을….   

이렇게 하나 둘 마음에 불평을 내려놓으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즐거워졌다. 물론 몸은 여전히 괴로웠지만 배고픔도, 더위도, 무료함도 불평이 아닌 그냥 느낄 뿐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기아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훼민파이퍼들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들 피곤한 빛이 역력했다. 남자들은 낮에 쳐놓은 천막, 여자들은 학교 지하 주차장이 오늘 묵을 숙소였다. 퀴퀴한 냄새 나는  지하주차장에는 얇게 깔린 스펀지가 전부였지만, 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탕! 탕!” 지구촌에 소외는 가라

6일 아침 8시, 기아체험을 시작한 지 15시간 째다. 이날 역시 날이 뜨거웠다. 하지만 마음이 달라져서인지, 사뭇 즐겁게 하루를 열 수 있었다. 게다가 어제와 달리 공동체 게임, 손도장 찍기, 페이스 페인팅 등 다양한 행사가 매시간 곳곳에서 즐겁게 진행됐다.

어제부터 한 배를 탄 조원들과 함께 나도 공동체 놀이에 쏙∼ 빠졌다. 즐겁게 게임을 하다 보니 배고픈 것도 까맣게 잊혔다. 오히려 ‘하루 굶은 사람 맞아?’라는 말이 나올 만큼, 다들 젊음을 내뿜는 술렁임과 흥겨움의 시간이었다. 특히 우리 팀의 경우, 더욱 역동적으로 게임에 임했다. 그 결과 6종목 중 한 게임만 빼고 다 이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 멀뚱멀뚱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한 발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여러 게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바이벌 사격게임.

“다들 참을 만해요? 5시간 남았습니다. 힘내세요! 여기서는 지구촌에 질병, 가난, 소외를 없애고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사격을 하려고 해요. 저기 앞에 놓인 상자들을 보면 질병, 배고픔, 전쟁, 재해, 소외, 폭력, 차별, 에이즈 등의 단어가 적혀 있는데, 자신이 퇴치하고 싶을 향해 쏴 보세요.”

가짜든 진짜든 총이라 겁이 났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바라는 고통이 사라진다면…. 총부리를 ‘소외’라는 단어를 향했다. 전쟁이든 배고픔이든, 차별이든 모든 것이 소외로부터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탕! 탕! 맞았는지 확인은 안됐지만, 정말 이 땅에 소외가 사라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았다.

오후 12시 반. 세 시간 남짓 즐겁게 배고픔을 잊었지만, 한바탕 뛰고 났더니, 배에서 또다시 요동을 쳤다. 그러자 우리 팀 이정아(20·경희대) 조장은 “얘들아 이제 다섯 시간만 참으면 돼. 조금만 힘내자! 알았지? 우리 어제 배운 구호 한 번 해볼까?”라며 격려를 한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여기저기 푹푹 솟아나는 한숨과 신음 소리. 3시쯤 되자 금세 가뭄에 탄 어린 모처럼 축 늘어졌다. 밝던 아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예 맨땅바닥에 드러누운 친구들도 있었다.

결국 마지막 3시간을 앞두고 우리 팀 남학생 11명이 모두 짐을 쌌다. 한 반 학생들이 전부 참석했는데, 아이들이 힘들어하자, 담임교사와 아이들이 회의를 통해 집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단다.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힘들어도 함께 한 이들이 있어 버텼는데…. 순간 나도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하물며 중학교 1학년인 누리와 연경이 마음은 어땠을까. 이들도 집에 가고 싶은 눈치다. 이렇듯 힘들어서 중간에 탈락한 아이들은 약 300여 명.

연경이와 누리에게 힘이 될까. 많이 웃어주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대신 부채질을 열심히 해줬다. 비빔밥이 가장 먹고 싶다는 연경이(14)는 엄마한테 계속 전화를 했다. 

“엄마, 나 피자 먹고 싶어. 치킨도. 우리 6시쯤 끝나거든, 미리 시켜 놔. 알았지?”
문득, 이 아이들은 이렇게 투정이라도 부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폐막 10분 전.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내며 참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레였다. 10, 9, 8…” 1에 가까울수록 아이들의 목소리도 점점 발악을 했다. 이틀동안 힘듦을 꾹꾹 눌러 더니, 나도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내년에도 많은 훼민파이터들 참여했으면…

배고프다는 것, 먹을 것이 없다는 것. 고작 하루 만에 얼마나 느꼈을까. 하지만 풍족하게만 지냈던 나에게는 사뭇 고달픈 하루였다. 무척 배가 고팠고, 더운 날씨에 자꾸만 짜증이 돋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그만 불편하나 견뎌내지 못하고, 마음으로 나누지 못하는 모습이 스스로 안타까웠다. 나의 고충은 일시적이지만, 천 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 아이들에게는 삶이고 일상일 텐데…. 살다 보면 이런 것들을 자꾸 잊는다.

기아체험을 끝내고 나오면서 내심 감사했다. 비록 하루뿐이지만, 조금이나마 배고픔을 공감할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마이다. 그리고 간절히 소망해 봤다. 내년에도 많은 훼민파이터들이 참여해 굶주린 아이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글/김은미 기자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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