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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걱정 우리만 믿어요”무료급식, 도시락 배달, 세탁 도우미로 활동하며 늘그막 새 삶 충전해가는 어르신들
김은미 기자 | 승인 2005.09.07 10:35


늘어가는 빨랫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독거노인 김모씨는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어야 하는 옷가지를 놓고 고민이 많다. 쉽게 마르지도 않을뿐더러, 힘이 달려 혼자서 세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렇게 속만 태우던 김씨에게 한여름 소나기처럼 희소식이 찾아왔다. 하얀푸르미봉사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 무료 세탁봉사를 하고 나선 이들. 부랴부랴 밀린 빨랫감을 들고 푸르미 봉사단이 있다는 신림종합사회복지관(관장 최성숙)으로 그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반가운 미소 하나면 지친 몸도 거뜬

“어서 오세요. 말끔히 빨아서 건조까지 해드릴 테니 마음 푹 놓으세요. 건조까지 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복지관 한바퀴 돌아보시는 것도 좋아요.”

푸르미 봉사단 장행초(72)씨가 빨랫감을 받아들더니, 흰색 빨래와 색이 있는 빨래를 구분해 복지관 지하 1층 세탁실로 향했다. 이윽고 묵은 때를 벗겨 내듯 세탁기가 시원한 소리를 내뿜으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또 다른 세탁 의뢰자의 옷감을 받아들고 내려오는 장씨. 일흔이 넘은 나이가 무색해 보일 정도로 건강해 보인다. 세탁이 다 됐다는 신호가 울리자 젖은 빨래를 건져내고, 대형 건조기 앞에 옮기는 모습이 마치 동네 세탁소 주인처럼 여간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그가 이렇게 세탁 봉사를 하게 된 것은 3년 전 하얀푸르미봉사단(이하 푸르미)으로 활동하면서 부터다. 신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원봉사 학교를 거쳐 발족된 이 푸르미 단원들은 세탁봉사뿐 아니라 도시락 배달, 경로식당 무료 급식 도우미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푸르미 권순원(69)부단장은 “푸르미는 모두 32명이에요.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도시락 배달을 하죠. 뿐만 아니라 경로식당에서 급식을 도와주거나 세탁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권씨는 독거노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푸르미다. 손수레에 도시락을 싣고 가파르고 좁은 비탈길을 오르기가 힘들기도 할 텐데, 그쯤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푸르미들이 돌아가면서 한 달에 두세 번  열네 집에 도시락 배달을 해요. 나이가 나이인 만큼 힘에 부치지만 배달이 끝나고 빈 수레를 끌고 내려오다 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삶의 활력을 되찾고 있는 걸요.”

푸르미가 발족했을 때부터 봉사를 시작했다는 김경자(67)씨. 그는 얼마 전 큰 수술로 잠시 봉사단 활동을 쉬게 됐다고. 그러나 몸이 회복되기 무섭게 다시 활동을 전개했다.

“주위 사람들이 아픈 몸으로 어떻게 활동하느냐고 해요. 하지만 봉사할 때만큼은 내가 환자라는 사실도 잊어요. 여기 나와 활동하니 건강해지는 것 같아 즐겁고, 또래 노인들과 어울리다 보니 재밌어요.”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푸르미로 활동하고 싶다는 김씨. 그는 도시락 수레를 끌고 비탈길을 오를 때도 그렇지만, 특히 눈비 오는 날에는 더욱 힘들다고 토로했다.

“한번은 눈이 엄청나게 내렸는데, 셋이서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몰라요. 수레는 눈에 파묻혀 아무리 끌어도 안 올라오지, 혹시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였죠. 소낙비도 우리에겐 힘든 장애물이죠. 하지만 도시락 받는 분들이 환한 미소로 반겨주면 힘이 절로 나요.”
요즘엔 도시락 수레 대신 들기 편하고 보기도 예쁜 도시락 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때문에 배달이 한결 수월해졌단다.

어느덧, 세탁물을 말끔하게 개켜 세탁의뢰자에게 건네고 있는 장행초 씨. 그는 혼자 세탁 봉사를 도맡고 있는데, 한 달에 약 70여 건의 세탁을 하고 있다. 장씨가 이렇게 세탁봉사를 하게 된 것은 여름철 도시락 배달을 하고 온 푸르미들이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세탁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다.
“땀에 젖은 몸으로 세탁 봉사까지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차라리 내가 나서서 도와주자 마음먹고 푸르미로 활동하게 됐죠. 가끔 혼자 사는 할아버지들이 빨래를 깨끗이 빨아줘 고맙다고 하면 기분까지 좋아져요. 건강하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삶으로 밀어주고, 끌어줘

신림종합사회복지관 기현주 사회복지사는 “푸르미들은 복지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봉사단이에요. 재가복지프로그램은 고정적 자원봉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든요. 그 역할을 우리 푸르미들이 하고 있죠. 사회활동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보람된 노후를 보내기 위해 나눔의 길을 선택한 하얀푸르미봉사단.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결같이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야 하는 손수레처럼 그들 또한 행복한 삶으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들의 활동이 가뭄에도 쉽게 타지 않는 푸른 소나무 마냥 오래도록 지속되길 소망해 본다.
글/표수진 기자 사진/복지관 제공

김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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